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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는 장애인이 없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다양한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20대에 영국에 먼저 다녀왔던 친구가 그랬다. 영국에 유난히 장애인이 많은 건지, 우리나라의 장애인이 거리를 다니지 못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또 다른 친구는 자신이 장애아를 키우고 있다면 영국으로의 이민을 심각하게 고려해보겠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학창 시절 장애친구와 한 반을 했던 경험이 거의 없다. 하지만 영국 공립학교에는 신체의 장애는 아니어도 특수교육(SEND, Special educational needs and disabilities)이 필요한 친구들이 반에 꼭 한두 명은 있는 것 같다.

영국에서 이런 모습들을 흔히 볼 수 있는 이유가 뭘까?

이걸 보고 놀란 내 눈이 부끄러웠다

영국 방송 프로그램 중엔 비글튼(Biggleton)이라는 어린이 역할극이 있다. 어린이들이 한 마을에서 살며 겪는 에피소드를 다루는 방송이다. 마을 세트를 꾸며놓고 아이들이 뉴스 앵커, 소방관, 경찰관, 베이커, 건설노동자, 꽃집 사장 등 어른의 역할을 한다. 매 에피소드마다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고 해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까지는 그냥 키자니아 정도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꽃집 아가씨는 지체장애를 지녀 휠체어를 탄 꼬마 소녀였다. 처음 본 순간, 그것이 새롭고 놀랍다고 느꼈던 내 눈이 부끄러웠다.

왜 이 모습이 낯설어야 할까? 내 눈과 뇌는 왜 이 장면에 익숙하지 않은 걸까? 왜 나는 흔히 보통 사람이라고 규정짓거나 심지어 예쁜 사람이 아니면 잘 나오지도 않았던 TV 화면을 왜 의심하지 않았던 걸까? 의식이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물론, 이 프로그램에는 장애아이가 나오는 것만이 아니라 다양한 민족이 나오고 아주 두꺼운 원시 안경을 쓴 아이도 나온다. 우리도 아이들이 흔히 보는 인기 TV 프로그램에 다양한 이들이 등장해준다면 '이런 모습은 특별한 것이 아니야'라는 은근하면서도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받을 수 있을 텐데… 어쩌면 아이를 키우며 생각보다 흔히 생기는 이런저런 모난 것들을, 사회적 시각이 앞장서서 두드러지지 않는 것으로 인식을 만들어 준다면 부모 된 입장에서 작고 큰 근심들을 크게 덜고 가겠구나 싶었다.
 
▲ CBeebies Songs | Biggleton Song Compilation 13+ Minutes
ⓒ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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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는 일상적 언어

그러던 어느날, 아이가 어느 날은 수화를 해 보여서 너무 놀랐다. 알고 보니 <미스터 텀블(Mr.Tumble)>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보고 자연스럽게 익힌 것이었다. 주인공인 더스틴 플레쳐(Justin Fletcher) 아저씨는 아이들계의 미스터 빈(Mr Bin)이랄까? <미스터 텀블>에서 뿐 아니라 캡틴 어도라블(Captain Adorable) 등 기타 많은 이름으로 여러 역할을 소화하고 있는 우리의 뽀식이 아저씨 같은 인물인데, 굉장한 만능인이다.

수롭지 않게 보았는데, 알고 보니 그는 연기하는 간간이 수화를 율동처럼 곁들였다. 마치 영국에서 영어에 자연스럽게 노출되어 익히듯, 수화도 그렇게 자연스레 노출되어 익혔던 것이었다. 아마 아이는 들을 수 없는 분들을 만나면 부끄럽거나 어색해하지 않고 간단한 인사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특별한 것이 아니라 늘 숨 쉬듯 평범한 일상일 뿐이니까.
 
▲ CBeebies: Mr Tumble Sings 'Happy Birthday' - Something Special
ⓒ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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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움의 연속 CBeebies, 그 평평한 세상

그 이후 내 수준 영어 딱 맞던 채널 씨비비스(CBeebies)를 아이와 함께 섭렵하기 시작했는데,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한국에선 스포츠 중계나 특별한 경우에만 수화가 동반되고 아이들 프로그램에서 수화를 보긴 어렵다. 그런데 영국에선 주말이 되면 아이들 프로그램에 박진감 넘치는 온갖 표정과 몸짓을 보여주는 수화가 어김없이 병행되었다.
수화도 연기가 되는구나!
저렇게까지 다이나믹하구나!
수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내용이 느껴져!

입을 떡 벌리며 수화를 보는 재미로 티비를 보게 되는 진기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이러한 취지의 정점에 있는 프로그램은 매직 핸즈(Magic Hands)였다. 바람직하다 못해 아름답다고 느낄 지경이었다.  

그 무엇보다 감동받았던 프로그램 Melody

영국의 인프라나 여러 시스템들은 개도국도 울고 갈 형편이지만, 문화예술적 선진성만큼은 인정해야겠다며 박수를 '쩍-쩍-쩍-' 치게된 건 이 어린이 음악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시각장애가 있는 주인공이 엄마와 함께 악기를 주제로 음악 탐방을 떠난다. 음악 학교에서 피아노, 첼로, 섹소폰 등 악기 전문 연주자들을 만나고, 음악 감상을 해보고, 또래 아이들과 둘러앉아 음악의 각 부분에서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이야기해 본다.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그저 그렇고 그런 교육프로그램 같지만, 아이들이 상상으로 풀어낸 이야기에 주인공을 캐릭터로 만든 애니메이션을 연출함으로써 아이들 시각에서 음악을 해석해낸 데다 아이들에게 시청각적 측면에서 흥미롭고 직감적으로 전달하였다. 장애가 없는 아이들 뿐 아니라, 듣지 못하는 아이들은 시각으로, 보지 못하는 아이들도 청각으로 음악을 느낄 수 있는 다중적 전달 방식도 놀라웠다. 또 프로그램의 주인공을 장애아로 설정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임에 틀림없다. 
 
▲ CBeebies: Melody and the Butterfly Ball
ⓒ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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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에 호흡을 맞추다

영국에서 20년을 산 어떤 언니의 이야기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런던 시내로 체험학습을 가게 되어 오랜만에 따라갔고 거기서 목발을 짚은 아이를 봤다고 한다. 이 시점에서 생각해봤다. 한국에서라면 어땠을까? 아마 대다수 엄마는 다리가 불편한 아이를 택시자 자신의 차량에 태워 목적지에 갔을 것이다. 그리곤 최대한 행사 일정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서 애를 썼을 것이다. 그런데 영국의 풍경은 어땠을까? 그 언니의 다음 이야기가 이어지기 전 짧은 순간 상상해봤다. 
 
그 아이는 자기 부모랑 행렬의 마지막에 목발을 짚고
멀찍이 있는 아이들 무리를 따라잡으려고 애를 쓰겠지?

영국에 오래 산 언니가 그 이야기를 꺼낸 데는 이유가 있었다. 언니는 20년을 살았는데도 자기는 한국인인 것 같다며 말을 이어갔다. 그 아이는 무리의 중간에 섞이도록 배치되었고 선두 그룹이 그 아이의 속도를 보아가며 걷는 속도를 늦추거나 기다리면서 그 아이가 물에 떨어진 기름 한 방울처럼 분리되어 나오는 일이 없도록 했다는 것이었다. 작지만, 큰 차이, 그런 걸 더러 배려라고 하구나 싶었다. 

다름이 낯섦이 되지 않고, 그 낯섦이 어려움이 되지 않고, 어려움이 문제가 되지 않아, 다름이 자연스러움이 되는 선순환 문화의 한 장면이었다. 말할 수 없는 문화 충격과 신선함, 반성, 아름다움 등이 혼재된 감정이 밀려왔다. 

그 언니는 연이어 다른 시리즈를 들려주었다. 공개수업을 갔는데, 반마다 하나씩 있다는 SEND 친구가 수업 중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어 (한국인 입장에서) 수업이 말이 아니게 느껴졌다고 했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 학부모 공개수업을 할 수 있는 건지도 신기하지 않은가? 그런데 아이들은 그 아이를 바라보지도 않고 수업을 듣더라고 한다. 그래서 집에 온 아이에게 "수업에 방해되지 않아?"하고 물었더니 "걔는 아픈 애야~ 그냥 우리는 수업을 들으면 돼"라고 해서 어른으로서 부끄러웠단다. 그 말에 내 마음도 함께 붉어졌다. 그 의연함을 배우고 있는 아이들이 대견하고 존경스러웠다.

또 한 번의 놀라움

영국에서 UDL 업무 관련 교육을 자주 갔었다. Urban Design of London, 그저 평범한 공무원 교육기관이었다. '여느 교육과 다름없으려니' 하고 교육장에 들어섰는데, 앞에 두 사람이 교육생들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오늘은 웬일일까? 교육이 시작되자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열심히 수화를 했다. 가만 보니 그 앞에 청각장애인이 앉아 있었다. 한 15분이 지났을까, 이젠 다른 한 사람이 열심히 수화를 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모습을 상상이나 하겠는가? 그리고 또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이 '두 명'이라는 부분이었다. '수화통역사 한 명도 과분했을 한국'이라는 그 문제를 넘어, 한 사람이 3시간 동안 수화를 할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한 배려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아이가 영국 생활에서 가장 크게 얻은 것은 '그저 다른' 것을 '이상한 것'으로 보지 않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단지 장애와 비장애에 대한 의식은 그중 하나일 뿐이고 인종에 대해서는 더욱더 그런 눈을 갖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온 며칠 뒤 길거리를 가다 명백한 검은 머리 한국인을 보고 아이가 물었다.

"엄마, 저 사람은 한국인이야?"

내 속에 뭔가가 일었다. '와!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이 아이는 나랑 정말 다르네.' 그렇다. 영국에는 모두 영국인이지만 피부색, 머리색, 키, 체질 모두 다양했고, 백인이었지만 영국인이 아닌 경우도 수두룩하니 아이는 모든 사람을 평평하게 보는 눈을 갖게 된 것이었다. '이런 게 다문화 사회 환경에서 자란다는 것이구나', 싶기도 했다. 행복하고 건전한 사회를 위해 진정 필요한 조기교육은 이러한 인식과 눈을 갖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차별이 없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다른 것이 특별한 것이 되지 않게 하는 것.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https://brunch.co.kr/@scribblie/189)에 동시 기고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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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구청의 유일한 한국인 워킹맘이었습니다. 주한영국대사관 영국개황, 영국지방정부 저널 MJ에 기고했습니다. 살아봐야만 알 수 있었던, 영국 학교와 직장생활, 알송달송 영국문화와 제도, 런더너만의 여가생활, 미국인도 안쓰는 영국영어와 같은 주제의 글들이 25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브런치 작가입니다. http://brunch.co.kr/@scribbl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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