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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품고 시작한 직장 생활, 그리고 그 '꿈'을 이루고자 선택한 자영업, 그러나 현실은 무한경쟁에서 밀려난 '사오정(4050)'. 그러나 아직도 그 '꿈'을 못 버리고 경영자와 시급제 근로자를 병행하며 체험하고 있는 자영업자와 노동자의 이야기를 전합니다.[편집자말]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촉발된 '자영업 위기'와 관련된 언론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가운데 '위기의 직장인'에 관한 기사도 종종 눈에 띈다. 그리고 그 기사 제목 대다수는 '사오정'으로 시작한다.

'사오정'이란 단어는 누구나 알 듯 중국의 고전소설 <서유기>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지만, 외환위기(IMF)가 도래했던 1997년 대규모 구조조정 속에 직장인들이 40대 중반(45세 정년)에 일터에서 쫓겨나는 현상을 지칭하는 단어로 변형되어 유행어가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난 '사오정'이다. 나이 사십이 되던 해, 15년을 몸담았던 회사가 무척이나 어려워지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떠나야 했고 인생 2막인 '자영업'에 뛰어들었다.

유행어에서 관용어가 된 '사오정'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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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한국은 경제 활동 인구, 그러니까 취업자 중 자영업 비중이 상당히 높은 국가로 알려져 있다. 실제 2018년 통계자료를 기준으로 한국의 자영업 비중은 25.1%로 OECD 회원국(38개국) 기준으로 전체 7위이며 G7 국가를 기준으로 하면 전체 1위라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왜 이렇게 자영업 비중이 높은 걸까?

통계청 자료(2017년 기준)에 따르면 50대 자영업자가 208만 명으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많았고(2011년부터 부동의 1위였다), 60대와 40대가 그 뒤를 이었다. 이 자료를 통해 정년퇴직과 명예퇴직(명퇴)을 포함한 퇴직자들이 우리 경제 활동 인구에서 자영업자의 비중을 높이는 데 일조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추정이 억측이 아님을 주변 사례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회사원에서 자영업자로 옷을 갈아입은 지 2년여가 흐른 어느 날, 이제 막 어리바리 초보 창업자의 티를 벗은 나에게 동갑내기 친구 A가 찾아왔다. 그는 당시 외국계 IT 기업의 팀장이었다. 그가 날 찾아온 이유는 위로금까지 제시한 회사의 명퇴 종용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다. 회사는 '당신의 연봉이면 혈기왕성한 신입 두어 명은 고용 가능하니 이제는 그만 그들을 위해 자리를 양보해 달라'라는 논리로 설득했다고 한다. 친구는 이미 퇴직을 결심한 듯 내게 구체적인 창업 계획까지 늘어놓으며 의견을 물었다.

당시 난 겨우 2년 차 자영업자였지만 "회사 안은 전쟁터라고? 밖은 지옥이다"라는 드라마 <미생>(2014)의 대사를 뼈저리게 실감하는 중이었다. 그런 나로선 그에게 쉽게 자영업을 권할 수는 없었다. 난 딱 한 마디로 그의 퇴직을 말렸다.

"젖은 낙엽 정신 알지? 버텨 그게 최선이야."

그렇게 A는 내 만류에 회사의 위로금까지 거절하고 버티기에 들어갔다.

5년 전 연말, 예전 회사 퇴직자 모임에서 선배 B는 최근 다니던 회사에서 '명퇴'를 했다는 소식을 전한 후, 자영업자로서 대선배인 내게 조언을 구하겠다며 창업에 대해 이것저것을 물었다. 난 당연히(?) A가 내게 찾아왔을 때처럼 치열한 자영업 현실을 역설하며 창업을 말렸으나 그는 이런 말로 내 충고를 무력화시켰다.

"나 아직 환갑도 안 되었어. 집 대출금에 취준생(취업준비생) 자식에 돈 들어갈 곳이 너무 많아. 뭐라도 해야 하잖아."
 

그리고 2년 전, 이제 막 오십에 접어든 후배 C는 이번에 취임한 사장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20여 년 다닌 회사에서 퇴직을 당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수많은 직장인이 다양한 이유로 정년을 채우기도 전에 명퇴를 당하며 이제는 오십세 퇴직이 지극히 당연시되고 있다.

그들이 자영업에 밀려드는 이유
 
 코로나19 사회적거리두기 4단계가 연장된 6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중심상권 일대 폐업한 일부 가게들이 임대 현수막을 내걸고 있다.
 코로나19 사회적거리두기 4단계가 연장된 지난 8월 6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중심상권 일대 폐업한 일부 가게들에 임대 현수막이 내걸렸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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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들은 왜 재취업을 선택하지 않고 자영업으로 고개를 돌리는 걸까? 일각에서는 자영업을 향한 이들의 불나방과 같은 돌진을 '게으름', '섣부름', '체면' 등의 단어로 속단하지만, 개인 경험으로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본다. 앞서 언급한 사례처럼 불현듯 다가오는 명퇴는 그 개인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사오십 대에 명퇴를 당하면 그야말로 벼랑 끝에 몰렸다는 느낌을 실감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연령대의 최대 화두는 대출(주택)과 교육비(대학)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즉, 가장 지출이 많을 연령대라는 것이다. 혹자는 퇴직금과 실업급여를 거론하지만, 이 연령대의 명퇴자들이 가정에서 받는 무언의 압박을 직관적으로 표현하면 '마리아나 해구'(바다 중 수심이 가장 깊은 곳)에서 받는 수압에 비견된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어찌 해야겠는가? 회사라는 사회에서 나름 치열하게 생존한 그들은 게으르고 섣불러서가 아니고 서두르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그러니 가장 빨리, 쉽게 할 수 있는 것(대표적으로 외식 프랜차이즈)을 선택하게 된다. 진입장벽이 높은 직업(종)을 – 전문 기술이나 자격증이 요구되는 – 선택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에 더해 '체면'이란 요소가 작용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흔히 '공장이라도 가'라는 말이 그들에게 쉽지 않은 이유를 모른다면 그건 정말 '인간'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고 본다.

현대 사회에선 수십 년 다니던 직장에서 잘리면, 그게 누구든지 '산송장'이 된다. 그가 쌓았던 모든 경력은 순식간에 게임처럼 가장 낮은 최초 레벨로 돌아가고 그동안 자신의 직급에서 받았던 존중과 존경은 아침 이슬처럼 부질없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낯선 업종에서 낯선 업무를 사회 초년생 취급받아야 하는 상황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날 이후

그렇게 내게 '명퇴 고민'을 상담했던 사람들은 이후 어찌 되었을까? 내 만류로 회사의 위로금까지 포기하며 5년을 더 버텼던 A는 회사의 지속적인 압박과 회유에 결국, 명퇴를 선택했고 내게 또 창업을 상담했지만... 다행히도 다니던 회사와 프리랜서 형태의 계약직으로 다시 일할 수 있었다(물론 급여는 삭감되었다).

가게 창업을 선택했던 회사 선배 B는 그 뒤 나는 물론 다른 이와도 연락이 닿지 않아 후일담을 알 수 없다(무소식이 희소식이길 바랄 뿐이다). 후배 C는 인맥을 통해 재취업에 성공했지만 이전의 기술직은 포기해야 했고 기술영업직으로 근무 중이다. 이렇게 A와 C는 이전의 일을 이어갈 수 있는 기회를 잡았지만 문제는 이제 한 고비를 넘겼을 뿐, 실직과 퇴직의 위험은 여전하다는 사실이다. 

그럼 이 글을 쓰는 나는 어찌 되었을까? 10년 동안 한 번의 전업을 거쳐 이어가던 자영업을 여러 사정으로 5년 전 그만두었다. 그 후 다시는 자영업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심 후, 세 번의 재취업 도전 끝에 현재 작은 협동조합의 상근직으로 근무 중이지만 '코로나19'라는 된서리에 투잡까지 하며 쉽지 않은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다음 회차 글에서는 재취업을 위해 십수 년 만에, 베테랑에서 인턴 엔지니어로 현장으로 돌아갔던 경험과 요즘 젊은이들의 선망 대상이라는 '스타트업'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쉽지 않은 '중년 재취업'의 환경을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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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으로 시작한 회사생활, 그러나 '이전투구'의 현실에 염증을 느끼고 퇴사 후 자영업에 도전하여 그동안 꿈꾸던 '이상'을 실험해 봄, 비록 무한경쟁과 자본의 싸움에서 밀려나긴 했으나 그 '가능성'을 맞 봄, 이후 재취업에 도전하며 스타트업 부터 동네 가게 배달기사까지, 노동자와 관리자로 오가며 체험한 요지경 세상의 '우리들' 이야기를 글로 쓰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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