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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경주의 가을  자연도, 도시도, 사람도 본연의 아름다움은 그대로 지켜지길.
▲ 아름다운 경주의 가을  자연도, 도시도, 사람도 본연의 아름다움은 그대로 지켜지길.
ⓒ 조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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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는 황리단길이라는 곳이 있다. 옛날 왕들의 무덤 옆에 유니크한 감각의 크고 작은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다. 절친이 경주에 살고 있어 친구집에 갈 때마다 이 길을 종종 들르곤 한다. 전통의 고풍스러움과 트렌디한 감각이 잘 어우러져 처음엔 색다르다고 느꼈는데 이젠 거의 상업지로 바뀌어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경주 사람들은 이 길을 '효도길'이라고 부른다. 이곳에 집이 있는 어르신들의 자제들이 전에 없던 효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황리단길 열풍으로 이곳의 땅 값과 임대료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이번 휴가 때 친구를 만나 황리단길에 갔다. 가보고 싶었던 책방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참 만에 간 황리단길은 우후죽순 늘어난 가게와 숱한 관광객들 탓에 더욱 정신없게 느껴졌다.

책방에도 사람이 많아서 10분 채 머물지 못하고 나와 버렸다. 오랜만에 접하는 많은 인파 탓에 현기증이 나고 목이 바짝바짝 탔다. 조용한 곳에 가서 시원한 차나 한잔 마시자고 했다. 친구는 마침 떠오르는 곳이 있다며 나를 그곳으로 안내했다.

유레카! 친구가 데리고 간 곳은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핫플이고 뭐고 사람이 없으니 살 것 같다고 우리는 웃으며 안도했다. 조용한 공간에서 시원한 음료를 꿀꺽꿀꺽 마시고 숨을 몇 번 고르니 금세 원래의 컨디션으로 돌아왔다.

핫플 카페인데, 왜 손님이 없을까 

마음이 안정되자 가게의 이모저모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뒷짐을 지고 여기저기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불과 몇 미터 근처에 미어터지던 사람들이 이곳에 왜 한 명도 없는지 궁금했다. 나의 주특기인 남 걱정이 시작됐다. 황리단길에서 약간 비켜있긴 하지만 목이 좋은 축에 속하는 곳이다. 그런데 왜 손님이 우리뿐인 것일까?

찬찬히 둘러보니 가게는 애매한 구석이 많았다. 외관은 훌륭한 한옥인데 내부 인테리어가 많이 조잡했다. 수려한 가게 얼굴에 유행이 한참 지난 화장을 해 놓은 것 같았다. 차라리 민낯이 훨씬 나았을 것 같았다. 눈이 휙휙 돌아가는 삐까뻔쩍한 가게들이 사방에 천지다. 음료 가격이 비슷하다면 굳이 이 곳을 찾을 이유가 없어보였다.

그런데 친구가 이 집의 오랜 단골이라고 해서 좀 놀랐다. 경주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웬만한 핫플을 전부 꿰고 있는 친구이기에 더욱 의외였다. 이런 취향인지 몰랐다고 농을 던지자 친구가 말했다.  

"지금은 좀 그런데, 옛날엔 한옥 느낌 그대로 살려서 전통차만 팔았을 때가 있었거든. 그때 느낌 쥑여 줬었는데.. 손님도 꽤 있었고... 그런데 갑자기 이 집 아들이 커피도 팔고 요즘 스타일로 바꿔야 한다고 여기저기 뜯어고치더니만... 쩝... 그래도 자세히 보면 옛날 느낌이 좀 남아있지? 그게 좋아서 애들이랑 가끔 와."  

어쩐지... 하얀 행주치마를 입은 머리 희끗한 여사장님의 취향이라기엔 곳곳의 인테리어와 소품들이 어울리지 않게 가벼워 보였다. 좀 더 자세히보니 친구가 말한 '쥑여주는' 옛날 느낌이란 게 뭔지도 금방 알 수 있었다.

우아한 곡선의 기와지붕과 반질반질 윤이나는 커다란 나무 기둥, 쩍쩍 갈라진 목재의 문턱, 가게 주변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오래된 나무들... '아, 더 보고 싶다' '더 느끼고 싶다' 할 때쯤 내 시야엔 이케아 필수템 가구와 오늘의 집 베스트 소품들이 눈에 들어와 버렸다. '낡은 곳은 낡은 대로 두지', '오래된 멋을 좀 더 강조하지', '흔한 것들을 여기저기 섞지 말지' 보면 볼수록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본연의 가치를 몰라본 대가란 바로 이런 것일까? 아무도 찾지 않는다는 무거운 형벌을 받고 있는 이 가게를 보고 있자니 문득 내가 가진 본연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됐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나의 모습이 왠지 애매한 이 가게의 모습과 닮은 것 같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본연의 아름다움을 되찾기 

누구든 힘들이지 않고 소유한 것의 가치를 알아보기란 힘든 일이다. 아마 가게 주인의 아들도 이 고택의 아름다움에 감동한 시간보다, 지루하고 불편하게 느낀 시간이 더 많았을 것이다. 나도 내 안의 아름다움을 찾기 보다 모나고 울퉁불퉁한 부분들을 늘 못마땅하게 여기며 살아왔다.

어떻게든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내가 썼던 방법은 주인집 아들과 같았다. 주변과 비슷하게 흉내 내는 것이다. 좋아 보이는 성격, 예뻐 보이는 스타일, 남들이 좋다고 하는 글들... 나와 잘 어울리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덕지덕지 유행에 따른 치장만 해온 건 아닌지 돌이켜 보았다.  

선선해진 요즘, 자신의 이모저모를 살피기 딱 좋은 때다. 나는 올 가을 내부 수리를 해볼까 한다. 집 말고 '나'라는 인간의 내부수리 말이다. 거추장스러운 것을 모두 걷어내고 나면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아름다움이 눈에 띌지도 모른다. 남들과 비슷해지기 위해 흉내 낸 것이 아니라 나로서 행복할 수 있는 본질의 기쁨들을 매의 눈으로 찾고 싶다. 

찾게 된다면 그것들에 반질반질 윤을 내보겠다. 감추고 싶은 흠도 멋스럽게 강조해보겠다. 어쭙잖게 치장하기보다 본연의 멋을 당당히 드러내 보겠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라는 존재에 호기심을 가지고 누구든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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