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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하나면 10분도 안 돼서 계좌를 개설하고, 언제 어디서든 전 세계의 주식을 살 수 있는 시대다.
 스마트폰 하나면 10분도 안 돼서 계좌를 개설하고, 언제 어디서든 전 세계의 주식을 살 수 있는 시대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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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을 넘어 자본계발로

주식투자 인구가 800만이라든지, 그 중 절반이 2030세대라든지 하는 식의 떠들썩한 통계와 수치는 사실상 그렇게 놀랍지 않다. 스마트폰 하나면 10분도 안 돼서 계좌를 개설하고, 클릭 한 번에 매수·매도가 초 단위로 이뤄지고, 언제 어디서든 전 세계의 모든 주식을 살 수 있다. 설령 여유 자금이 없더라도 소수 여섯 번째 자리까지 나눠 매수할 수 있도록 한 규제 완화와 기술 덕분에 단돈 1000원으로 미국 증시에 상장된 대형 우량주에 투자할 수 있다. 

금융이 희망으로 여겨진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IMF 위기 이후 발전주의의 약속이 제대로 먹히지 않자 금융은 새로운 지평으로 제시됐다. 부동산과 증시 호황은 인위적으로 조성됐고, 가계대출과 소비자 신용 규제가 체계적으로 이뤄졌다. 일상생활의 금융화는 삶을 투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유도했다.

이러한 흐름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2000년대 후반 일련의 법 개정과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다.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육성하기 위한 명목으로 2009년부터 자본시장법 개정이 있었다. 2019년에는 금융 투자업에 관한 진입장벽을 낮춤으로써 IT 업계도 대형 증권사로 변모했다. 법 제도의 변화에는 MTS(모바일 거래 시스템, Mobile Trading System)를 가능케 한 눈부신 기술 성장이 있었다. 

'돈이 돈을 벌게 하라'는 존 리➊의 투자 설교는 투자하기 쉬운 인프라를 통해 효과를 드러낸다. 2000년대 중반, 이미 투자 열풍이 있었다. 이때는 노력하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처럼 여겨졌다. 주식으로 '부자 되기 신드롬'은 통했고, 펀드는 각광받는 투자 상품이 되었다. 가만히 있는 행위 자체를 손실로 느끼도록 만드는 구조 아래에서 손실 감각이 투자를 추동한다. 이러한 감정의 역학을 잘 충족시켜줄 인프라도 매끄럽게 구축되었다. 

'자, 이제 자기계발을 넘어 자본계발을 해보자!'

주식시장=투기판

열쇠를 꽂기만 하면 금방이라도 몰 수 있는 차처럼 대중은 투자하기 전부터 이미 준비된 투자자이다. 주식시장은 이 상황을 유용하게 활용했다. 여기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손실을 보전하기 위한 행위는 정치 참여, 돌봄, 투쟁, 자산가치 등 다양하게 배분될 수 있다. 그러나 자산가치 중 특히, 주식시장은 대중의 방향성을 과점했다. 

흔히들 주식시장은 내재적 가치에 따라 합리적 판단이 이뤄지는 곳으로 여긴다. 그러나 주식시장만큼 '집합적 믿음'으로 투자가 이뤄지는 곳도 없다. 금융시장은 단순히 시장 외부에서 독립적으로 결정되어 시장 가격으로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입소문이나 움직이는 지수처럼 시장 참여자들에 의해 수행적으로 구성된다.➋ 이러한 자기참조적 구조는 금융화 자체의 불확정성으로부터 기인한다.➌ 

금융화는 특정 시점을 정하여 시간을 혼합하지만, 이는 정작 실시간으로 거래되는 시간을 예측하지 못한다. 가령, 과거 30일 동안의 주가 변동성은 알 수 있지만, 오늘의 변동성이 얼마인지는 답할 수 없다. 금융화가 가속화될수록 이 현상은 필연적이다. 따라서 투자자는 다른 투자자들 혹은 시장 자체가 무엇을 믿고 생각하는가에 대한 투기·추측(speculation)에 기반해 투자한다. 이러한 상호 추측은 시장을 또다시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금융시장의 자기참조적 구조는 공식적으로 부인된다. 이를 인정한다는 것은 합리적 투자와 비합리적 투기의 구별 자체가 불가능해지고, 금융시장이 합리적 선택과는 거리가 먼 근본적으로 불안정한 구조에 기반해 있음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투자자가 느낄만한 합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은 점점 더 희박해진다. 투자자는 어떤 것도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것이 없으므로 '운'이야말로 운명을 바꿀 희망이라고 인식한다. 현재와 미래가 불가해한 힘에 지배된다는 느낌을 받을수록 투자자는 수직적인 행운에 자신을 맡기는 만큼 도박자와 겹쳐진다.➍    

자본주의와 서핑(surfing)하기 

투자자는 투자를 통해 주식시장의 불확실성을 체험하는 동시에 주식시장을 구성한다. 주식투자를 한다는 것은 단지 매수·매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돈의 향방에 따라 투자 위치를 끊임없이 조정하는 과정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투자자는 언제, 어떻게 가격이 결정되는지 알기 위해 수시로 장을 확인해야 하고, 여론에 무척 신경 쓰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투자자를 기진맥진하게 만들고 피로감을 누적시키며, 수익률 변동에 따른 극도의 불안감을 조성한다.

투자자는 불안감을 상쇄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펼친다. 그중 하나가 장기투자로의 선회이다. 장기투자는 투자자산을 오랫동안 보유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주로 안정성, 성장성, 수익성이 높은 기업의 주식을 사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투자는 거대하고, 누구나 알기에 기존가치가 부가가치를 생산해줄 것으로 믿는 '가치 투자'이다.

장기투자는 글로벌 자본주의 하에서 대마불사(大馬不死)➎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는 선에서 가능하다. 투자자가 삼성전자, 카카오 등 '슈퍼스타 기업(Superstar Firms)'에 투자하는 이유이다.➏ 슈퍼스타 기업과 함께라면 요지부동 주식시장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고 수익률을 예상할 수 있다는 믿음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주가가 폭락해도 문제없다. 자본주의의 흐름에 따라 슈퍼스타 기업은 망하지 않고 '언젠가'는 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하락장은 오히려 저렴한 가격에 주식을 구매할 기회로 인식된다. 투자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믿음과 기다림뿐이다. 서퍼가 파도를 타듯이 투자자는 자본주의의 흐름을 타면 된다. 주식시장은 이 '언젠가'를 기다리는 이들과 미래로 지연되는 돈들로 넘쳐난다.

'존버'➐는 이런 방식을 통해 형성된다. 오히려 버티는 것이야말로 투자자를 살 수 있게 하는 힘인지 모른다. 수익을 확정 짓는 순간, 다시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는 총체적 난국에 직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은 잠재적인 보상을 반복적으로 제공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즐거움을 준다. 수익을 확정 짓기 전까지 주식시장 안에서 보상에 대한 상상이 반복되므로 투자는 일종의 게임처럼 작동한다.

주식투자 '열풍'이 가리는 것들

이 게임은 어쩌면 일론 머스크가 화성을 가야지만 끝날지 모른다. 그간 주식투자 열풍이 많은 것을 가린 것처럼, 또한 많은 것을 가릴 것이다. 열풍은 열풍으로 인식되기 위해서 투자하기 편리하도록 구축된 인프라를 가린다.

열풍은 금융화가 고도화될수록 주식시장이 상품의 내재적 가치와는 별로 상관없는 불안정한 도박판을 구성한다는 사실 역시 가린다. 열풍은 현실의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꿈과 환상의 장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는 많은 사람의 일상과 삶의 이야기를 감춘다. 

주식투자 열풍에 힘이 있다면, 그것은 단 하나의 미래만이 가능하다는 암시를 통해 자신을 재생산한다는 데에 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열풍이기 위해 감춰졌던 것들을 역사화하고 들춰내는 작업이 요청되지 않을까. 이를 통해 적어도 주식시장의 투기적 효과를 재고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지점에서야말로 정치 참여, 돌봄, 투쟁 등 살만한 삶을 위한 다른 가능성에 투자해볼 만하다는 믿음이 사회적으로 공유되리라 믿는다.  

➊ 현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이사. 강연과 방송,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한국 대중에 주식, 펀드 투자를 독려한 인물
➋ Muniesa. F. (2014). The Provoked Economy: Economic Reality and the Performative Turn. Routledge.
➌ Lee. B. (2020). Volatility. In The Routlegde Handbook Of Critical Finance Studies. 46-72.
➍ 이승철. (2018). "도박자"의 인류학을 위한 연구 노트. 문학과 사회. 31(2). 311-326.
➎ '큰 말은 쉽게 죽지 않는다'는 뜻의 바둑 용어. 파산 위기에 처한 대형 금융기관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경우를 가리키는 시사용어로 쓰이기도 함 
➏ Autor. D. et al, (2020). The Fall of the Labor Share and the Rise of Superstar Firms. The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135(2). 645–709.
➐ 'X나 버티기'를 줄여 부르는 속어. 주식이나 가상화폐 투자에서 가격이 내려가도 다시 오를 때까지 최대한 팔지 않고 버티는 걸 말함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류태광님은 대중투자문화 연구자입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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