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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공개적 흡연은 작은 문화적 저항

나는 담배 냄새를 아주 싫어한다. 담배 냄새가 조금만 나도 속이 미식거리고 숨쉬기 힘들 정도라 담배라면 질색한다. 그렇지만 담배 피우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더욱 참기 어렵다.

성인 남성의 흡연은 아무런 이야깃거리도 되지 않고, 흡연과 도덕성이 연결되지 않는다. 여성과 미성년자만 흡연으로 도덕성에 타격을 받는다. 상대적으로 여성 흡연에 대한 편견이 과거보다는 나아졌지만, 음주와 마찬가지로 흡연은 여성을 더욱 검열하게 만든다. 여성의 음주와 흡연을 통제하는 나름 합리적인 이유로 '임신할 몸'을 강조한다. 여성은 언제나 재생산을 위해 제 자신의 즐거움을 포기해야 할 몸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그림과 사진 속에는 담배 피우는 여성의 모습이 꽤 자주 등장한다. 스웨덴 화가 안데르스 소른(Anders Zorn)의 <담배 피우는 소녀>(1892)는 한 손에 담배를 든 젊은 여성의 상큼한 표정이 인상적이다. 

한편 여성 작가들은 담배와 여성의 관계를 조금 더 저돌적으로 표현한다. 예를 들어 사진작가 게르마이네 크룰(Germaine Krul)의 <담배와 카메라가 있는 자화상>(1925)은 제목 그대로 크룰 자신이 한 손에 담배를 들고 카메라 렌즈에 눈을 맞춘 모습이다.

담배와 카메라 모두 여성에게는 부적절하게 여겨졌던 시절이었다. 비슷한 시기 파리에서 활동했던 호주 작가 아그네스 노이어 굿써(Agnes Noyes Goodsir)의 <담배를 들고 있는 소녀>(1925)에는 작가와 함께 살았던 레이첼 듄이 담배를 들고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이처럼 소위 '신여성'들이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던 당시에 미술 속에서 여성들은 담배를 피우며 작은 문화적 저항을 했다. 치료제로 인식되던 담배는 19세기가 되어서야 대중적인 기호품으로 사용되었으나 이 '기호품'을 누구나 편견 없이 소비할 수는 없었다. 여성이 담배를 공개적으로 소비하게 되면서 담배라는 소비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경계화된 성별 이미지는 허물어진다.

나는 나를 기쁘게 할 권리가 있다

흡연 여성을 담은 여러 그림 중에서 특히 핀란드 작가 엘린 다니엘손 감보기(Elin Danielson-Gambogi)의 작품이 가장 통쾌한 장면을 선사한다. <아침 식사 후>(1890)는 작가 자신의 모습으로, 아침 식사 후 너저분한 식탁을 치우지도 않은 채 여유 있게 한 대 피우는 모습이다.

식탁의 흔적으로 보면 적어도 다른 식구가 한 명 더 있었다. 마치 '아, 이제 밥 먹고 다들 나갔으니 내 시간이다'라며 휴식을 즐기는 신호탄을 쏘듯이 입에서 담배 연기를 뿜는다. 록산 게이는 몸의 허기에 대한 자전 에세이 <헝거>에서 담배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데, 아침에 일어나 피우는 담배, 자기 전에 피우는 담배와 함께 역시 '밥 먹고 피우는 담배'의 기쁨을 강조한다. 흡연자의 디저트일까.
 
 엘린 다니엘손 감보기 <아침식사 후 After Breakfast> 67x94cm, 캔버스에 유채, 1890
 엘린 다니엘손 감보기 <아침식사 후 After Breakfast> 67x94cm, 캔버스에 유채, 1890
ⓒ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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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누르마르쿠에서 태어난 엘린 다니엘손은 헬싱키에서 미술 공부를 시작해 파리에서 공부한 후 누르마르쿠로 돌아와 개인 작업실을 열고 몇몇 미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제도적 미술 교육을 받은 핀란드의 첫 세대 여성 화가로 그가 활동하던 시기는 핀란드 미술의 황금기(1880~1910)라 불린다.

1895년 이탈리아에서 화가 라파엘로 감보기를 만나 결혼하여 그의 성은 다니엘손 감보기가 되었다. 1919년 폐렴으로 죽을 때까지 핀란드, 프랑스, 이탈리아를 오가며 활동했으나 사후에 핀란드에서는 거의 잊혀졌었다.

그가 다루는 주제는 당시에 종종 비판받았다. 예를 들어 <발다 숙모의 오락>(1886)이 대표적이다. 카드가 펼쳐진 테이블을 골똘히 바라보는 발다 숙모의 오른손에는 카드 세 장이 들려 있고, 왼손에는 담배가 들려 있다. 집 안의 모습이나 여성의 차림새로 볼 때 품위 유지가 중요한 중산층으로 보인다.

아이를 돌보거나 집안일을 하는 어머니, 남편과 함께 나들이 중인 아내의 모습이 아닌, 설사 여가를 즐기더라도 여성들끼리 우아하게 차를 마시는 정숙한 사교의 모습이 아닌 카드놀이라니. 그것도 담배까지 피우면서! 유흥을 즐기는 이 모습은 사회적으로 권장하는 여성의 모습이 전혀 아니다. 노동자에게 여가의 개념이 낯설었듯이, 여성은 유흥의 주체가 될 수 없었다. 스스로를 즐겁게 하는 행위는 남성에게만 허락되었다.
  
 엘린 다니엘손 감보기 <발다 숙모의 오락 Aunt Balda's Pastime> 44x53cm, 캔버스에 유채, 1886
 엘린 다니엘손 감보기 <발다 숙모의 오락 Aunt Balda"s Pastime> 44x53cm, 캔버스에 유채, 1886
ⓒ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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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 이후 근대 교육을 받은 신여성들 사이에서 흡연 증가의 의미를 분석한 논문 '일제시대 여성흡연에 대한 담론분석'➊은 조선 말기에 이미 많은 여성들이 흡연을 했다는 사실을 전해준다. 1894년 서울에 있었던 한 독일인은 많은 여성들이 담배를 피우는 조선의 모습을 보며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조선 여인들은 노예보다 나을 게 없다. 말하자면 남자들은 노예를 얻기 위해 결혼을 하는 것이다. 여자들은 이름도 없이 무시당하고 법이란 자체는 여자들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이 여인들을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친구는 아마도 담뱃대인 것 같다." 

그의 관점이 틀리지 않을 것이다. 담배 한 개비의 기쁨만큼도 위안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➊ 고한나, 「일제시대 여성흡연에 대한 담론분석 : 1920-30년대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3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라영 님은 예술사회학 연구자로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 『타락한 저항』 등을 썼습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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