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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건강검진 결과 

3년 전, 남편의 43살 건강검진이 있었다. 늘 해 오던 일이니 남편은 별스럽지 않게 건강검진을 했고, 숙제를 끝냈으니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제까지와 다른 통지표를 받게 되었다. 고혈압 2차 검진이 필요하다는 통보.

요즘 회사일로 스트레스가 많아서 일시적인 수치겠거니 생각했다. 2차 검진을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남편도 불안했는지 매일 사무실 건물에 있는 내과에 들러 혈압을 측정했다. 끝을 모르고 올라가는 혈압. 120/ 80이라는 혈압의 공식 같은 정상 범주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180, 190이라는 숫자는 공포스럽게 다가왔다. 

검색을 하고 또 해서 고혈압에 좋다는 영양제 3총사를 먹이기 시작했다. 영양제를 먹기 시작하면서부터 남편은 눈이 덜 아프다, 정신이 드는 것 같다, 덜 피곤하다며 이제 다 나은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혈압계는 괜찮지 않았다.
 
 이미 남편의?번아웃을 알고 있었다.
 이미 남편의 번아웃을 알고 있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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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건강검진 결과가 아니더라고 20년 가까이 함께 산 사람으로 이미 남편의 번아웃을 알고 있었다. 남편의 얼굴 절반까지 내려온 다크 서클은 원래 얼굴이 까만 건지 다크 서클인지도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였고, 눈 밑에는 저승사자급의 짙고 검은 테두리까지 2중 다크 서클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 남편의 건강이 늘 걱정이긴 했다. 막내가 5세, 아직 육아 휴직이 가능한 기간이라서 육아휴직을 벌써 3년째 권하고 있었지만 네 식구 생계를 책임지는 외벌이 남편의 귀에는 철 모르는 아내의 투정 어린 염려 정도로 들리는 듯했다. 

그즈음 남편은 퇴근 후 저녁을 먹고 나면 바로 잠이 들었다. 하루 평균 12시간의 잠을 자고 주말에는 2박 3일을 내리 잠만 자기도 했지만 남편의 피로는 전혀 회복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아직 왕성한 시기이다 보니 어쩌다 하루 끌려가듯 나들이를 나가도 멍한 표정으로 좋은 것을 보아도 좋은지도 몰랐고 맛있는 것들을 먹어도 맛있는지 몰랐다.

어깨와 등은 점점 더 넓은 부위로 딱딱해졌고, 배는 늘 가스로 가득 차 돌처럼 단단해서 소화도 잘 안 되었으며 먹고 싶은 것도 없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돈 버는 기계'가 바로 우리 집에 있었다. "이러다 당신 죽을 것 같아". 진심이었다. 그러나 나의 이런 진심은 남편의 오른쪽 귀도 채 통과하지 못하고 튕겨 나왔다.

40대 남성들은 자기 몸이 나이가 드는 걸 외면하거나 혹은 자각하지 못해서 20대만큼의 체력이 있는 줄 안다. 40~50대 남자들 중에, 과로와 과음 스트레스 때문에 사망하는 경우도 있지만, 늘 하던 양만큼 운동을한 후 돌아와 잠들었다가 돌연사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지인 중에도, 수많은 커뮤니티 글에도, 유명인사들의 뉴스에서도 가끔 이런 돌연사 소식을 접했다. 이를 남편에게 보여주며 경각심을 주려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응..."

이제 말로는 안 되겠다 싶어졌다. 남편을 계속 이대로 써먹다가는 어느 날 아침 숨을 쉬지 못하는 남편을 발견하고 말 테니까.

외벌이 남편 퇴사시키기

남편과 마주 앉기만 하면 육아휴직과 퇴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런 나의 제안을 남편이 '어림도 없다'고 여긴 덴 이유가 있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 아들과 5살 딸을 둔 우리 집은 남편의 월급만으로 생활비와 남은 집 대출금을 갚고 있었다. 때문에 통장에 남아있는 여유돈이 10만 원도 없었다. 그렇다고 남편의 월급이 그렇게 적지는 않았다. 전원생활에 가까운 곳에서 사교육 없이 사는 우리 가족은 남편이 벌어오는 월 600만 원 정도의 수입으로 부족함 없이 살고 있었다.

월평균 400만 원의 생활비를 지출했고, 200만 원 정도는 꼬박꼬박 대출금을 갚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성비 좋은 우리 집의 시세는 2억. 남은 대출금은 4000만 원. 이런 상황에서 육아휴직이며 퇴사라는 말이 말 같이 들리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내가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 15년 전 아들을 낳기 직전까지 나는 월 400만 원을 벌 수 있는 직업군을 가지고 있었고, 다행스럽게도 다시 재취업이 가능하며, 어쩌면 그때보다 더 나은 수입을 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맞벌이라는 아주 쉽고 간단한 방법은 선택하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첫 아이를 낳으며 철저한 손익 계산을 거친 후 당시 400만 원을 벌던 내가 전업주부가 되고, 200만 원을 벌던 남편이 주 수입원이 되는 아주 무식할 정도로 용감한 외벌이를 선택했다.

그 후로 우리 부부는 그 선택을 후회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앞으로도 맞벌이는 고려하고 있지 않았다. 때문에 역할을 바꾸는 정도로는 이 사태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 없었다. 맞벌이를 하는 방법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15년간 육아에만 몰두하던 나는 이제 '남편 퇴사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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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업주부로만 살다가 남편의 퇴사를 위해 디지털 노마드가 되었고, 남편의 퇴사하면서 시작된 새로운 일상에 하루 하루 놀라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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