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책 '적절한 균형'
 책 "적절한 균형"
ⓒ 도서출판 아시아

관련사진보기

 
*이 서평에는 <적절한 균형>의 주요 줄거리와 결말 부분의 내용이 일부 소개되어 있습니다. 

인도 사회는 수많은 경계로 이루어져 있다. 정부와 의회, 도시와 시골, 힌두교와 이슬람교, 남자와 여자, 브라만과 달릿, 기업주와 노동자, 부모와 자녀... 한 사람은 날줄씨줄로 얽히고설킨 관계망과 경계선 속에서 제 위치와 정체성을 갖고 살아간다. 그 모든 구조가 조화와 균형을 이룬다면 세상은 별 탈 없이 톱니바퀴처럼 굴러갈 것이다.

문제는 경계선 자체가 모호하거나 시대 변화에 따라 재설정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 정도가 심하면 큰 사회 혼란과 충돌, 갈등에 따른 많은 희생자가 속출하게 마련이다. 다시금 어느 정도 회복과 균형을 이루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할 수도 있다. 다소 진통을 겪더라도 사회가 이전보다 더 진보한다면 다행한 일이다. 하나 예전과 비슷하거나 더 악화된 수렁에 자꾸만 빠져든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할 것이다.

국가비상사태, 네 사람의 운명 

소설 <적절한 균형>은 인도의 '국가비상사태'(1975. 6~1977. 3) 기간을 배경으로 봄베이의 한 서민 아파트의 '대안 가족' 이야기를 다룬다. 그 중에 아파트 주인 디나 달랄(42세)은 결혼 3년 만에 뜻밖의 사고로 남편을 잃고 오빠 누스완에게서 독립해 살고자 애면글면하는 여성이다. 이시바(40세)와 그의 조카 옴므라카시(17세)는 무두장이 계급 차마르 공동체 출신의 '재봉사'이고, 마넥(17세)은 북부 국경지대 청량음료와 잡화점을 파는 집 아들로 봄베이 어느 대학에서 냉장고와 에어컨을 공부하는 학생이다.

이들 네 사람은 1975년 6월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된 뒤 우여곡절 끝에 몇 달간 한 가족처럼 디나의 아파트에서 함께 산다. 디나는 두 재봉사를 고용해 자신의 집에서 의류공장 하청 납품 작업으로 받는 돈과 마넥의 하숙비 등으로 빠듯한 생활을 꾸려간다.

두 재봉사 이시바와 옴은 부지런히 일해서 번 돈으로 고향에 돌아가 결혼도 하고 작은 재봉 가게를 차리는 게 꿈이다. 이에 비해 마넥은 부모에게 등 떠밀려 이틀이나 걸리는 먼 거리의 봄베이로 와서 냉장고와 에어컨을 공부하지만 딱히 자신의 전공에는 별 흥미가 없다. 그는 출세나 성공보다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함께 지내는 일에 훨씬 더 관심이 많다.

네 사람 중에 마넥만이 늘 앞날을 비관적으로 전망한다. 가령 그는 재봉사 이시바가 그의 조카 옴의 결혼 문제로 깊이 고민할 무렵 "옴이 결혼하든 안 하든 상황은 나빠질 거예요. 모든 게 나쁘게 끝나니까요. 그게 우주의 법칙이거든요"라고 말한다.

실제로 마넥의 이 말처럼 지독한 가난과 신분의 굴레를 벗고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려 힘쓴 세 사람의 생활은 더욱 악화되고 만다. 마넥도 일자리를 얻어 중동 두바이로 떠나 8년 동안 생활하지만 그의 삶은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물론 좋았던 시절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디나는 남편 러스텀과의 삼 년의 신혼생활이 최고의 황금기였고, 재봉사 이시바와 옴은 이슬람교도 아시라프 가게에서 재봉 일을 배우며 일할 때가 행복하였다.

마넥은 기숙학교에 진학하기 전, 부모님 집에서 살 무렵 정원사 딸 수리아와 함께 놀며 자랄 때가 가장 즐거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인도의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척될수록 네 사람의 삶은 전보다 나아지기는커녕 차츰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마냥 갈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치닫는다. 그 주변 사람 대부분도 마찬가지다.

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걸까? 인디라 간디 정부의 '국가비상사태' 선포와 '국가보안법'이 사회를 망가뜨린 직접적인 배경이긴 하다. 정부는 저항하는 수많은 노조원과 학생, 시민을 영장도 없이 체포·구금하고 잔인한 고문을 가거나 죽이기까지 하였다. 빈민가를 무자비하게 철거하고 빈민들을 정치집회에 마구 동원하였으며 거리 노숙인들을 잡아다가 강제 노역을 시키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다. 인구 증가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대대적인 불임 수술을 강요하였다. 인도인들은 그렇지 않아도 지독한 카스트 제도에 따른 차별과 폭력의 일상화로 고달픈 삶을 살고 있었다. 한데 국가비상사태 선포 이후, 법률의 정당한 보호조차 받기 힘든 생지옥 같은 처지로 내몰렸다.

비슷한 시기 한국도 박정희 유신독재 체제를 경험하였다. 국가가 경찰과 군대 같은 폭력 조직을 활용해 시민들을 제 멋대로 통제하고 저항하는 자들은 마구 붙잡아 가두고 고문을 가하던 혹독한 겨울공화국이었다.

집회만이 아니라 노래도 맘 놓고 부르지 못하였고 젊은 여성들은 짧은 치마조차 입을 수 없었다. 국가의 산업화와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서 거쳐야 하였던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말하긴 힘들다. 북유럽 복지국가들처럼 사회 민주화와 산업 발전을 동시에 이룬 사례들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돌진만 하는 기차, 희망을 잃는 사람들 

소설 <적절한 균형>의 서두와 끝맺음은 모두 열차 사고가 나온다. 달리는 급행열차에 몸을 던져 자살한 사람들 때문 기차는 멈춰 섰다. 작가는 왜 급행열차를 멈춰 세운 사고 장면을 위와 아래 뚜껑처럼 배치하였을까.

여기에는 그가 작품 전체로 말하고픈 상징과 은유가 담겨 있는 거 같다. 근대 문명을 상징하는 급행열차는 함께 탄 사람들이 대화할 겨를도 좀체 주지 않은 채 앞만 향해 질주한다. 이는 무서운 속도로 날아가는 '시간'의 화살과도 같다.

그 종착역은 희망의 땅 낙원이라기보다는 생지옥 같은 무법천지 광란의 도시였다. 열차가 무쇠 칸막이로 나뉘어 있듯 인도 사회는 카스트의 불문율로 등급이 정해져 자유 이동을 금기시한다.

이런 봉쇄 담장을 활짝 열고 똑같은 존엄한 인간으로 함께 맘 터놓고 어울리며 사는 대안 공동체를 만드는 일은 한낱 환상에 불과할까? 작가는 온 몸을 던져 급행열차를 멈춰 세운 마넥 같은 사람들이 바로 그런 질문을 던지면서 희생제물 역할을 계속한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거 같다.

이 소설이 말하는 '국가비상사태'는 비단 1975년 인도의 특수상황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오늘날도 지구촌 어느 사회에서든 진행 중이라고 볼 수 있다. 소설 <적절한 균형>에 따르면 미래를 낙관하며 주변 어려운 이웃을 외면한 채 앞만 향해 돌진한다면 전진하기는커녕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무한반복하게 된다. 나아가 이 위험사회는 급기야 다들 그토록 찾던 행복도 순식간 앗아갈 수 있다.

소설 <적절한 균형>에서 갑작스레 교통사고로 사망한 '러스텀, 샨카, 마넥'의 사례가 이 같은 사실을 암시한다. 그들 죽음은 지옥행 급행열차를 잠시 멈추고 생각해 보라고 작가가 군데군데 설치한 안내판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뉴스>에도 싣습니다.


적절한 균형

로힌턴 미스트리 (지은이), 손석주 (옮긴이), 도서출판 아시아(2020)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