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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 여럿이 함께 각자 읽는 분위기가 너무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 여럿이 함께 각자 읽는 분위기가 너무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 황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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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밑줄 치는 것을 좋아한다. 중독 수준이다. 책 읽다가 밑줄 칠 부분이 나왔는데 당장 연필이 없으면 똥 마려운 강아지가 된다. 이 습관 때문에 나는 책과 연필이 세트로 갖춰야 한다. '손가락 10개 중에 하나는 연필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상상을 한 적도 있다. 차라리 손가락을 깨물어서 혈서로라도 빨간 줄을 긋고 싶은 심정. 요즘은 스마트폰의 여러 기능을 이용해 기억해두었다가 지나서라도 밑줄을 긋지만, 바로 무릎을 치는 그 타격감과 줄을 이어 긋는 감성의 콜라보가 있어야 짜릿하다. 

원체 책을 빨리 읽지도 못한다. 중학생 때인가 심지어 몇 글자 없고 그림이 한가득인 만화마저도 읽는 속도가 친구들의 서너 배는 되었다. '고 몇 글자를 여적 읽냐'고 묻는, 돌려 읽기 다음 순서의 친구 말에 나는 대답했었다. "아니, 글자만 읽냐? 그림을 어떻게 막 넘기냐?" 그랬다. 나는 만화마저 그림을 읽느라 느렸다.

나는 읽는 것만 느린 게 아니다.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밑줄 친 부분을 노트에 필사를 한다. 독서노트를 작성하지 않으면 뭔가 덜 개운하다. 어깨가 아프고부터 독서노트를 컴퓨터로 작성을 하다 보니 연필 독서노트와 컴퓨터 파일을 어떻게 잘 동기화하여 데이터베이스화 할지가 또 고민이다.

어쨌든 밑줄과 느리게 읽는 습관 때문에 도서 대출은 할 수가 없다. 만약 대출이라도 하게 되면 아주 흐리게 연필로 밑줄을 긋고는 반납할 때 비싼 질 좋은 지우개로 깨끗이 지우는 게 일이다. 그리하여 많은 독서 권수를 자랑하지는 못하지만 잘 차곡차곡 쌓이는 독서노트가 재산이 되었다.

다독과 정독의 그 중간 적정선을 나름 찾다 보니 한 달에 두 권 정도를 읽는 것 같다. 나한테 적당한 독서법과 독서량을 찾아가는 과정도 중요했다. 스마트폰을 안 보기 위해서라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작정하고 읽는 것도 좋지만 수시로 짬짬이 읽는 것도 좋아한다.

거실로 출근하는 프리랜서이다 보니 일 중간중간에 거실 장판에서 배 깔고 누워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본격적인 필기가 필요할 때는 주방 식탁이 적당하다. 잠들 때와 아침에 눈 떠서도 읽으려니 침대에도 책이 널브러져 있다. 화장실 변기 위에서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한다.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며 차 안에서 읽을 수도 있다.

몰입이 필요한 책을 메인으로 정해서 거실과 부엌에서 읽고, 짬짬이 독서로 차 안과 침대에서는 긴 호흡이 필요하지 않도록 구성된 책을 읽기로 했다. 화장실이 가장 취약한데, 여전히 스마트폰을 보게 되겠지만 그래도 시집을 가져다 놓긴 했다. 물론 연필도 끈으로 매달아 놓았다.

책과 관련 행사가 있으면 어지간하면 참석하려고 하는 편이다. 작가 강연회는 물론 독서회나 낭독회, 중고책 거래장터도 참 좋아한다. 그냥 서점에서 이 책 저 책 뒤적이는 것도 가끔 해줘야 한다. 비타민 챙겨 먹듯이 말이다. 한때 온라인으로 책을 구매한 적이 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동네 서점을 이용한다. 서점은 책만 사는 곳이 아니란 것을 알고부터다.

특히 내가 사는 동네, 군산 한길문고에서의 행사를 다녀보면, 군산시민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독서 저변 인구를 늘리려는 노력을 느낄 수 있다. 지역사회가 정서적으로 건강해지는 데에 지역 서점이 책과 독서와 글쓰기로 꽤 일조를 하지 않나 싶다.

그 행사 중 하나인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에 다녀왔다. 한 시간 동안 잠자코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각자 가져온 책을 읽는 것이 미션이고 마치면 상품권을 받을 수 있다. 시작과 함께 참가자들의 책장 넘기는 소리가 좋았고 처음 보는 옆사람이 하는 필기 소리가 좋았다. 여럿이 함께 각자 읽는 분위기가 너무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나는 시집과 산문집을 가져갔지만 20~30분 지났으려나 했는데 끝나버려서 다른 한 권은 펴보지도 못했다.

역시 독서는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집에서 고양이들과 함께 한 시간을 책만 본다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밀려오는 잠은 또 어쩌란 말인가?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서 나를 유혹하는 리모컨과 스마트폰을 외면하기란 어렵다. 중동처럼 나도 냉장고 문에 자물쇠를 달아야 하나 싶고 청테이프로라도 둘둘 감던가 할 판이다. 여하튼 내 집은 온갖 지뢰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한 장 한 장을 읽어간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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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은퇴 후, 돈 안 되는 텃밭농사꾼. 최소한의 벌이만을 위해 노동하는 백수형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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