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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윤의 근본 없는 이장 일기'는 귀농 3년차이자 함평군 대각리 오두마을의 최연소 이장으로,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유쾌한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27살 한대윤 시민기자의 특별한 귀농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소방대원과 오두마을 이장이 함께 소방안전점검에 참여하고 있다.
▲ 오두마을 소방안전점검 소방대원과 오두마을 이장이 함께 소방안전점검에 참여하고 있다.
ⓒ 한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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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기사 : 스물일곱 귀농 3년차, "살만하냐?" 물음에 답합니다

"근본 없는 X", "넌 이장할 깜이 못 돼!"

이장을 하기 전, 내가 들었던 말이다. 우리나라 현직 이장 중에 이 말을 동시에 들어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나도 '이장'이라고 하면 장화를 신고 초록색 새마을운동모자를 쓰고 집에 트랙터 한 대쯤은 가지고 있는 농민 혹은 아저씨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만큼 근본이 뚜렷하고 뿌리가 튼실한 지역 토박이들이 이장직을 맡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함평군 오두마을 주민들은 들어온 지 갓 1년 지난 26살 청년을 이장으로 세웠다.

오두마을 이장이라 소개할 때면 다음과 같은 말을 듣는다. "진짜 이장이여?", "올해 몇이여?". 그러면 나는 "네 이장입니다, 올해 27살입니다"라고 답한다. 이장과 27살, 전혀 연관성 없어 보이는 조합에 더 많은 질문들이 이어진다. "어떻게 이장이 됐나?", "텃세가 심한 마을도 많은데 그쪽 마을은 텃세가 없나?" 보통 이런 질문들에 충분히 답할 시간들이 없어 짧게 답하고 넘어가곤 했다. 오두마을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장 선거 파행

내가 귀농을 하고 나서, 오두마을 주민들이 날마다 '이장이 32년 동안 같은 사람이라니, 너무 오래 했다. 바꿔야 한다. 그런데 젊은 사람도 없고 해서 너무 답답하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당시 전 이장님도 "나도 새로 할 사람만 있으면 언제든지 내려놓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전 이장님과 주민들의 대화는 항상 이런 '폭탄 주고 받기'로 이어졌다.

"이장 별 것 없으니까 네가 해."
"나는 못 해요. 형님이 좀 하쇼!"
"나는 몸도 아프고 해서 한 살이라도 어린 네가 해야지."


결국 "할 사람이 없다면 어쩔 수 없지"로 마무리되는 대화. 이런 지난한 대화를 1년 정도 들을 무렵 새로 오두마을로 이사 온 40대 귀향 주민을 차기 이장 후보로 응원하는 주민들이 점차 생겨났다.

그런데 새로운 인물에 대한 지지가 생겨나자, 상황이 달라졌다. 일각에선 "어떻게 전임에 대해 상의도 하지 않고 후임 결정할 수 있느냐?"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지난해 2월, 이장 임기가 바뀌는 선거날이 가까워지자 마을에선 전 이장에 대한 교체 여론과 유지 여론이 팽팽하게 맞섰다. 결국 전 이장님 부인과 40대 귀향 주민이 경선을 하게 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이장 임기는 2년으로 정해져 있고 다른 인물이 없는 경우에 연임이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이장 선거는 파행이 됐다. 이장 선거 당일, 함평군 작은 시골마을은 발칵 뒤집혔고, 이 일은 지역신문에도 소개되었다. 한 사람이 32년 동안 이장을 했기 때문이었을까? 전 이장 부인이 차기 이장 자리를 넘겨받겠다고 출마해서였을까? 아니다. 이장 선거날 본 적 없던 사람들이 잔뜩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마을에 주소지가 있으나 실거주민으로 보기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그 얘기를 듣자 자리에 있던 절반가량의 주민들은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하지만 투표는 진행됐고, 전 이장님 부인이 당선됐다. 

이런 과정에 문제의식을 느낀 주민들은 결국 이장 임명권자인 면장을 마을에 소환했다. 면에서 온 공무원들이 사정을 청취한 뒤 내놓은 답변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마을 주민이 누구인지는 면에서 결정할 수 없으니 마을에서 알아서 결정해 주시라.'

그러면서 전 이장님은 '나는 분명 안 한다고 했다'는 말을 남겼고 전 이장님 부인도 '할 사람이 있으면 나도 안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40대 귀향주민이 이장을 하는 것에 대해선 부정적이라는 입장을 덧붙였다. 당사자인 40대 귀향주민도 '이렇게 갈등이 커진 상황에서 계속 출마를 하긴 어렵다'고 의견을 밝혔다. 

주민들은 다급함을 느꼈다. 대체 누가 이장을 해야 하나. 3일 동안 모여 대책을 논의했다. 그때 내린 결론이 바로 나였다. "마을에 들어온 지 1년이 넘었고, 20살은 넘은 대윤이가 해야겠다." 그렇게 오두마을에선 26살이던 나를 이장으로 선출했다.

어부지리 
 
오두마을 이장이 마을 어르신들께 핸드폰 사용방법을 알려드리고 있다.
▲ 오두마을 핸드폰 교육 오두마을 이장이 마을 어르신들께 핸드폰 사용방법을 알려드리고 있다.
ⓒ 한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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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얘길 듣고 누군가에게 '어부지리로 당선된 거 아니냐'는 말을 들었었다. 부정할 수는 없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럼에도 감사한 것은 어부지리라도 마을의 미래를 맡길 만큼은 주민들이 나를 신뢰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2018년 9월부터 1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마을에 정착하기로 노력한 부분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셨던 것 같다. 혹시라도 1년 만에 이장을 하고 싶은 사람이나 마을에 잘 정착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다음과 같은 경험을 이야기해 주고 싶다.

나는 마을에 유입된 인구로서 마을에 깊이 뿌리내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농활을 갔던 경험을 살려 주민들을 자주 찾아뵙고 밥도 같이 먹고 이야기 나누고 농사나 잡다한 일을 종종 돕기도 해왔다. 또한 마을 청소년들 공부를 봐주기도 하고 마을 공익사업을 같이 해 나가기도 했다.

또한 농촌사회는 좀 더 유교문화가 강한 사회라서 젊은이들이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생각을 나도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이장을 하기 전부터 항상 봉사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정착하는 데에 도움이 됐다.

특별히 마을 어르신들과 친해질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밥'이다. 남자 어르신들께서 식사에 자주 불러주셨던 것이었다. 아침에 밭을 일구고 돌아오는 길이면 항상 아재 분들이 점심 식사를 겸해 야외에서 고기와 약주를 드시고 계셨다. 그리고 어김없이 내 이름이 불려졌다. "얼른 와서 한 점 해!"

그곳에 가면 아재 분들의 수다가 이어진다. 마을에서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주민들 각각의 사이가 좋은지 나쁜지... 마을의 역사를 줄줄 들을 수 있는 자리였다. 점심 때 이어진 자리는 보통 저녁도 먹고 밤이 돼서야 마무리되었다. 그때 '어르신들을 정말 하고 싶은 말씀이 많으신 것 같다'고 느꼈다. 끝까지 얘기를 다 듣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모습을 보고 흡족해하셨던 것 같다.
 
오두마을 이장이 마을 주민과 마을표석 설치 후 관리를 하고 있다.
▲ 오두마을 표석 관리 오두마을 이장이 마을 주민과 마을표석 설치 후 관리를 하고 있다.
ⓒ 한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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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이 되고 나서는 '우리 마을을 어떤 모습으로 가꾸어 나갈까' 고민했다. 이장에겐 봉사, 신뢰, 성실 이런 자질이 모두 중요하지만, 특별히 오두마을 이장으로 내게 중요한 자질은 '공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이장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들은 공정하지 않은 이장들이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뉴스에서 이장이나 이장 지인들이 마을 지원 물품과 돈을 횡령한 사건들이 보도될 때면 "나는 절대 저런 사건에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다"고 다짐하곤 했다. 

기본적으로 농촌사회가 연고주의가 강하고, 폐쇄적인 부분이 있다.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이런 특성들이 비위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마을 사업의 내용은 행정과 이장 말고는 잘 알기 어렵다. 이장은 사업을 행정에 보고하고 행정은 이를 검토하여 사업의 투명성을 이뤄 나간다.

하지만 행정은 현장에서 일을 하는 역할이 적기 때문에 현장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 게다가 이장이 현장 상황을 임의로 보고한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현실적인 한계라고 하지만, 사업의 공정성이나 투명성을 개인의 양심에 의지해 생겨나는 사각지대다. 

나는 '근본 없는 이장'으로서 공정성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장점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연고가 적기 때문에 모든 주민들과 이해관계가 아주 적게 얽혀 있다. 또한 주민들을 10년 20년 봐온 게 아니라서, 이들의 부정한 일을 공유할 만큼(?) 신뢰관계가 높지도 않다. 더불어 마을에 혈연관계가 없기 때문에 내 주변 인물들의 관계와 상관없이 개인과 개인, 1대1의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이처럼 마을의 새로 들어온 사람이라도 이장으로서 역할을 잘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기존에 해오던 방식 외에도 새로운 시도들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시도들이 제한되지 않을 때 공동체가 더 건전하게 운영될 것이라 확신한다.

이장을 이제 갓 1년 반밖에 해 오지 않았지만 좋은 선례를 만들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고 싶다. 앞으로 다른 곳에서도 우리 오두마을처럼 '근본 없는 이장'들이 많이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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