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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윤의 근본 없는 이장 일기'는 귀농 3년차이자 함평군 대각리 오두마을의 최연소 이장으로,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유쾌한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27살 한대윤 시민기자의 특별한 귀농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나는 '가짜 농사꾼'이었다 

대학에 다니던 중, 농활(농촌학생연대활동)을 할 때면 농촌 지역 형님들을 많이 만났었다. 농사짓는 분들에게서 농촌에 대한 환상을 갖지 말라는 말씀을 많이 들었다. 그중 인상 깊었던 말씀은 이런 거였다.

"자급자족을 하겠다고 내려오는 사람들은 많지만 도시나 농촌이나 자급자족이란 건 없어. 다 거짓부렁이야."

그 말씀을 처음 들었을 때는 "자급자족이 당장은 쉽지 않으니 농사를 한참 크게 지어야 한다는 의미일까?"라고 생각했다. 함평에 내려온 직후에도 이 말씀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 직접 농사를 시작해 보니 그 뜻을 점차 알게 되었다.
 
오두마을에 위치한 굼벵이 사육장은 사무실로도 아이들의 놀이터로도 이용된다.
▲ 오두마을 굼벵이 사육장 오두마을에 위치한 굼벵이 사육장은 사무실로도 아이들의 놀이터로도 이용된다.
ⓒ 한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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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함평에 내려온 직후엔 아는 형님과 굼벵이 사육장에서 일했다. 굼벵이 사육장 사무실에선 형님께서 지인 분들과 다양한 모임을 하셨다. 나도 사육장에 수시로 들락거리다 보니 여러 모임을 알게 되었다. 그 중 '청년창업농' 모임이 있었다. 청년창업농이란 청년(사업 신청기준 만40세 미만) 초보농사꾼들의 영농정착을 지원하는 사업의 이름이다.

나는 함평에 내려오고 난 뒤, "농사를 짓겠다" 말만 하고 농사는 안 짓는 가짜 농사꾼이었다. 반면 같이 귀향하신 형님은 농사 3년차인 진짜 초보농사꾼이었다. 굼벵이 사육장 사무실에서 초보농사꾼들의 모임을 진행하는 터라 나도 자연스럽게 농사꾼 형님들을 종종 만나 뵈었다. 모임의 평균 나이 약 40세로 내가 지금까지 만난 함평 내 단체 중 가장 젊은 모임이었다.

형님들을 따라다니면서 농촌의 생활, 농사의 현실적인 고민들을 주워들을 수 있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대윤이 너도 이제 농사 시작해야지"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전까지 나는 눈치만 보다가 좋은 때가 되면 한번 농사를 해 봐야겠다는 생각만 있었다. 그런데 2019년, 마침 그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첫 농사로 도전한 민들레... 그런데 

농사를 시작하기 위해선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농사 지을 땅 구하기, 농기계(농기구) 준비, 작물 정하기, 판로(판매경로) 확보하기 등이다. 이 중 가장 어려워하던 땅을 구할 기회가 생겼다. 마을에서 건축업을 하시는 분께서 제주로 1년 동안 출장을 다녀오신다고 했다.

"1년 동안 집을 비우니 밭 관리 좀 해줘요. 밭을 어떻게 가꾸든 마음대로 하시고요."

내 소유는 아니지만 200평(한 마지기) 조금 안 되는 땅을 무상으로 임대한 것과 다름없게 되었다.

그 다음엔 농기계(농기구) 구하기였다. 농기구는 원래 밭주인께서 쓰시던 걸 쓸 수 있었지만 밭을 괭이로 갈려고 하니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이런 사정을 들으신 형님들께서 밭은 갈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며 경운기를 끌고 밭을 갈아주신다 하셨다.

경운기는 마을 주민분께서 쓰시던 걸 빌려 썼는데 워낙에 연식이 오래된 경운기라 그런지 경운기가 시동이 안 걸릴 뿐 아니라 자주 고장이 나고 생각처럼 잘 굴러가지 않았다. 간신히 밭을 갈고 나선 경운기 주인분께 "경운기를 엉망으로 썼다"며 혼나기도 했다. 경운기 하나 작동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알았다. 경운기 빌려주신 분께는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니 너그럽게 사과를 받아주셨다.

작물은 민들레를 심기로 했다. 민들레는 잘 자라고 가볍고 특색 있으면서 낯설지 않은 작물이라는 게 장점이다. 한마디로 저비용으로 쉽게 기를 수 있을 것 같아서 고른 것이다. 민들레를 심으려 보니 주변에 민들레 홀씨를 파는 곳이 없었다. 홀씨는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채집했다.

그 모습이 재밌어 보였는지 마을에 사는 7살 아이가 같이 하고 싶다며 졸졸 따라왔다. 마을 돌아다니다 마주친 어르신께선 제초제 뿌린 곳과 안 뿌린 곳을 알려주시며 조심하란 말씀을 해 주셨다. 마을 아이와 같이 채집한 홀씨를 스프링클러를 틀어놓고 빈 밭에 뿌려 심었다.
 
필자와 오두마을 어린이가 민들레 홀씨를 모으고 있다.
▲ 민들레 홀씨 모으기 필자와 오두마을 어린이가 민들레 홀씨를 모으고 있다.
ⓒ 한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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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격적으로 밭을 가꾼다고 하니 금방 마을에 소문이 났다. 얘기를 들으신 형님어머님께서 풀을 뽑으러 와주셨다. 한사코 거절해도 해가 질 때가 다 되어서야 같이 밭을 떠나셨다. 절대 밭에 풀(잡초)을 자라게 해선 안 된다며 당부 또 당부하셨다.

하나부터 열까지 도움을 안 받은 일이 없었다. 나는 농사 경험도 거의 없고 내가 가진 땅 한 평도 없었다. 그래도 마을에서 1년을 산 덕인지 마을분들께서 농사할 땅도 맡기시고 어떤 작물을 심어야 할지 많이 알려주셨다. 또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풀을 매는 일까지 도움을 주셨다.
 
오두마을에 민들레가 자라고 있다.
▲ 오두마을 민들레 밭 오두마을에 민들레가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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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작물을 잘 수확하고 잘 판매했을까. 그랬다면 이 이야기의 완벽한 결말을 만들 수 있었겠지만, 민들레는 수확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오랜만에 제주에서 마을로 올라오신 땅주인 분께 전화가 왔다. "오랜만에 밭을 봤는데 무슨 잡초가 이렇게 많은지 한참 정리했다"는 말씀이었다. 불안함이 엄습했다.

그렇다. 민들레는 농민들에게 논밭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피어나는 '잡초'인 것이다. 밭 주인분께서는 내가 작물로 키운 민들레를 잘 뽑아서 '버려'주셨다. 밭 주인분과 농사 과정을 잘 소통했어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던 내 탓이 컸다. 농사는 정말 혼자 짓는 게 아니었다.

농촌에 자급자족은 없다, 실로 그렇다 

2019년, 그렇게 허무하게 첫 농사를 마치고 나니 아직도 농사를 시작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 혼자서 잘 해 보겠단 마음도 너무 욕심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지금은 형님이나 마을 분들 일을, 때로는 마을을 벗어나 일당을 받고 농사일을 한다. 내가 내 농사는 짓지 않지만 기회가 있을 때면 함께 농사일을 하곤 한다. 여전히 농촌사회에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농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첫 농사는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없지만 내가 잘 몰랐던 농촌사회에 한 발 더 가까워졌단 생각이 든다. 예전에 들었던, "자급자족은 다 거짓부렁"이라는 말도 이제는 좀 더 와닿는다. 농촌은 무엇 하나 혼자 해나가는 법이 없단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리고 무인도에 살지 않는 이상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농사를 많이 짓는 사람도 농사를 적게 짓는 사람도, 나처럼 농사꾼이 아닌 사람도 모두 자급자족하는 사람은 없다. 농사를 해도 공무원을 해도 농기계를 고치거나 버스 택시를 운전하거나 장사를 하거나 예술을 하거나 모두 자급자족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도시나 농촌이나 모두 사회라는 틀에서 더불어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특히 농촌은 무슨 일이든 직접 얼굴을 맞대고 손에 손잡고 만들어나가는 곳이다. 피지 못한 민들레 대신 내가 얻어간 깨달음이었다.
 
오두마을 여겨저기에서 쉽게 민들레를 볼 수 있다.
▲ 오두마을 민들레 오두마을 여겨저기에서 쉽게 민들레를 볼 수 있다.
ⓒ 한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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