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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익희가 마지막 머물렀던 종로구 효자동 가옥
 신익희가 마지막 머물렀던 종로구 효자동 가옥
ⓒ 유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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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익희는 환국 직후 임시정부요인 환국준비위원회가 마련한 한미호텔의 방 하나를 배정받아 지냈다. 이곳에는 조소앙ㆍ김원봉ㆍ유림ㆍ조완구ㆍ성주식ㆍ조경환ㆍ조완구ㆍ김성숙 등  임정요인들도 함께하였다. 그러던 중 임시정부 내무부에서 차용한 종로 6가에 있는 낙산장에 정치공작대 사무실이 들어서면서 이곳으로 이사하였다. 임시정부 의정원의원을 역임한 조성환도 환국하여 국내에 남아 있던 부인과 함께 여기서 거처하였다. 

정치공작대가 해체되면서 낙산장을 떠나 묘동의 장씨가(張氏家)에서 전세를 살았다. 그즈음 경기도청 미국인 고문관이던 앤더슨이 귀국 인사차 신익희를 방문했다가 독립운동 투사의 거처가 너무 협소한 것을 보고 자기가 사용했던 적안가옥인 삼청동 집을 신익희에게 불하권을 인계하고 입주를 권해왔다. 이에 따라 1947년 4월부터 현 국무총리 공관인 이곳에서 살게 되었다.

1년여 뒤 국회의장에 취임하면서 이 집을 국회의장 공관으로 사용하였다. 남들은 권력을 잡으면 없던 재산도 만드는 판에 외국인이 넘겨준 집을 의장공관으로 삼고 명의를 국가에 넘긴 것이다. 

"내가 해외에서 망명생활을 할 때에는 살아서 고국에 돌아가기조차 기약할 수 없는 극한상황의 연속이었소. 설사 생명이 보존되어 환국하게 되더라도 이렇게 큰 집에서 살리라고는 꿈도 꿔본 적이 없어요. 생활이 조금 나아졌다 하더라도 예전의 고생을 다 잊고 호사한 생활에 빠져서야 되겠소."

부인이 오랜 셋방 생활에서 풀려나 모처럼 내집이다 싶었는데, 남편의 '국가헌납'에 "우리가 따로 집이 있다면 몰라도 일정한 거처도 없는 터에 어쩌려고 이러십니까? 의장직에서 물러나면 당장 어디로 가실려고요?" 따져 물었다. 

남편은 단호했다.

"독립운동가가 무슨 집이 필요하겠소. 거적이라도 깔고 우리 둘이 자면 그 당장 추위를 막을테고, 임자가 먹을 갈아 내가 글 쓰며 여유 갖고 살면 되었지 뭘 더 바라겠소." (주석 6)
 
해공 신익희 선생 대표어록을 적어놓은 비석. 해공 선생 생가 앞에 위치해있다.
 해공 신익희 선생 대표어록을 적어놓은 비석. 해공 선생 생가 앞에 위치해있다.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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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신익희는 초대 1, 2기와 2대 1, 2기의 국회의장을 역임한 뒤 삼청동 공관을 나와 효자동에서 사글세를 살았다. 1956년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호남선 열차에서 숨질 때까지 사글세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가 서거 당시에 살았던 종로구 효자동 164-2 고택(대지 73평, 건평 35평 한옥)은 해공 신익희 기념사업회가 2003년 3월 모금, 국가보훈처와 종로구청의 보조금으로 매입하여, 현재 서울특별시의 지정문화재(제23호)로 지정되었다.  

그는 대단히 청렴했다. 공사생활이 청렴결백했다. 찾아오는 공무원들에게 '염생위(廉生威)' 세 글자를 써 주거나 당부하였다. 바르고 곧은 관리가 되라는 당부였다. 

우리는 지금 건국 초창기에 더욱이 민주주의 국가로 발족하여 국가 공무원은 국민의 공복이라는 위치에 있으면서 정부 재정을 범포내기를 식은 죽 먹듯 하고 관계 업자로부터 뇌물 받기를 항다반사(恒茶飯事)로 하는 탐관과 오리가 낮바대기에 강철판을 뒤집어 쓰고 횡행천하하니 이 어찌 한심한 일이 아니겠느냐 말이오.

관리로서 청렴하지 못하면 일반 국민으로부터 도적놈이라는 지목을 받게 되고 면대해서는 직접 말하지 않지만 되돌아서서는 더럽다고 꾸짖고 나무랄 것이니,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이겠는가. 맑고 깨끗하면 여러 국민으로부터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존경을 받게 되고 칭송하는 말이 자자할 것이고 보면, 본인도 어깨를 넓게 펴고 얼굴을 번쩍 들고 다닐 수 있지 않겠소? 그리하여 자연히 위엄이 생기게 되지요. 이것을 일러 청렴하면 자연히 위엄이 생긴다는 '염생위(廉生威)'라는 것이라오.

그러니 국가 공무원 특히 신생 민주 국가 초창기의 공무원으로서 청렴결백을 마음에 새겨서 잊지 않아야 합니다. 이 점을 명심해서 임지에 가거든 일 잘해 주시오. (주석 7)

주석
6> 유치송, 앞의 책, 510쪽, 발췌. 
7> 신창현, 앞의 책, 375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해공 신익희 평전] 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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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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