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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언론중재법 관련 8인 협의체를 구성해 개정안에 대해 논의한 뒤 오는 27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해당 법안 도입에 찬성하는 글을 이봉수 세명대저널리즘스쿨 교수가 보내왔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에 대한 반대 주장도 환영합니다.[편집자말]
미국의 노동운동사와 언론사를 읽다 보면 중복되는 지점에서 미국 언론이 노동운동을 대하는 태도의 뿌리가 발견된다. 미국 노동운동을 강타한 두 사건이 헤이마켓과 풀먼 파업 진압이다. 독점기업이 국가권력의 비호로 노동자를 착취하던 시절이었다.

1886년 시카고 헤이마켓 집회에서 노동자들이 주장한 것은 8시간 노동, 동일노동 동일임금, 유·청소년 노동 폐지 등 너무나 당연한 요구였다. 평화스러운 집회에 경찰이 발포해 6명이 숨지고 이튿날 항의집회에서 누군가 터뜨린 폭탄으로 경찰 7명이 사망하자 경찰이 구경꾼까지 사격해 사상자 200여명이 발생했다.

현지신문 <시카고트리뷴>은 '시카고가 유럽의 사회주의자, 무신론자, 알코올중독자의 집결지가 됐다'고 왜곡했고, <워싱턴포스트>는 '시카고가 폭도들의 화염 속에 있다'며 노동자를 매도했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우리 언론의 보도행태와 같다.

폭탄이 터졌을 때 1명 말고는 근처에 있지도 않은 파업주동자 5명이 '급진사상을 가졌다' 하여 처형됐다. 언론은 사형선고에 환호했다. 입만 벙긋하면 언론의 자유를 부르짖는 언론이 사상의 자유와 노동자의 인권을 탄압한 것이다.

노동조합 아닌 '길드'로 출발한 언론노조
 
8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관훈클럽, 대한언론인회, 한국기자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신문협회, 한국여기자협회, 한국인터넷신문협회 등 언론 7단체 언론중재법 강행처리 중단 촉구 기자회견에서 이의춘 한국인터넷신문협회 회장(왼쪽부터), 박기병 대한언론인회 회장, 서양원 한국신방송편집인협회 회장, 김수정 한국여기자협회 회장, 김용만 한국기자협회 본부장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8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관훈클럽, 대한언론인회, 한국기자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신문협회, 한국여기자협회, 한국인터넷신문협회 등 언론 7단체 언론중재법 강행처리 중단 촉구 기자회견에서 이의춘 한국인터넷신문협회 회장(왼쪽부터), 박기병 대한언론인회 회장, 서양원 한국신방송편집인협회 회장, 김수정 한국여기자협회 회장, 김용만 한국기자협회 본부장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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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노동운동이 주류 언론의 지지를 받은 사례는 거의 없다. 같은 노동자이면서 맨 나중에 노조를 만든 집단이 언론인이다. 1930년대 결성하기 시작한 미국 언론사 노조들은 스스로를 '노동조합'(Union) 대신 '길드'(Guild) 곧 '동업조합'이라 불렀다. 언론계의 동업자의식은 이토록 뿌리가 깊다. 문선공과 정판공 등 수많은 블루칼라가 함께 일하고 도심에 대형 공장을 갖춘 유일한 제조업체가 언론사였는데도, '구별 짓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노동운동에 관한 보도태도를 비교해보면, 보수언론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구축한 우리나라는 미국과 비슷하고 유럽과 판이하다. 세계에서 손꼽는 유럽 언론들을 일류로 만드는 데는 노조의 기여도 컸다. 언론사노조는 가입률이 높고 교섭력이 강해 사주와 자본, 정치권력의 압력을 막는 방패 구실을 한다.

우리나라도 한때는 기자협회와 언론노조가 언론 자유 수호의 선봉에 섰고 민주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언론사주와 독재정권에 맞서 언론 자유를 지키려다 수많은 언론인이 실업자가 됐다. 1987년 6월항쟁의 기폭제가 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때는 <동아>와 <중앙>의 활약으로 국민 누구나 언론 자유의 소중함을 공유했다. 두 신문이 민주화운동의 공로자라면 직후에 태어난 <한겨레>는 수혜자였다. 그러나 언론은 자유의 신장에 걸맞은 책임의식을 동반하지 못했다.

미국은 수정헌법 1조에 언론의 자유를 불가침의 권리로 올려놓았지만, 징벌적 배상제를 언론에도 적용해 책임도 강조한다. 우리 헌법은 수많은 자유권을 열거한 뒤 21조에 언론의 자유를 집어넣었다. ④항에는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규정해 놓았다. 그러나 언론 자유에 경도된 법원의 보수성 때문에 실질적인 배상에는 이르지 못했다. 우리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행태는 이런 역사적 배경과 입법미비에도 원인이 있다.

'보수' 언론단체들이 주도하는 징벌제 반대

정부가 할 일을 안 하는 사이 180석이 된 여당이 헌법과 국민의 뜻을 받들어 피해구제를 강화하는 법을 만들려 하자 보수동맹이 언론 자유를 앞세워 반대하고 나섰다. 언론노조는 이제 임금협상 때 잠깐 회사 쪽과 대립할 뿐 진정한 언론 자유와 국민의 피해구제에는 함께 반대노선을 걷고 있다. 직능단체인 '동업조합'이 연상된다. 맨 앞에 선 집단이 언론단체와 언론학계인데, 학계와 외신기자단의 문제는 다음 편에 적시하기로 하고 언론단체의 문제부터 살펴보자.

사주나 발행인 단체들은 거의 다 보수언론 간부들이 주도한다. 한국신문협회는 <조선> 발행인이 회장이고 <중앙> 출신이 사무총장이다. 신문방송편집인협회는 <매경> 전무가 회장이고 산하 언론자유수호위원장은 <조선> 편집국장이다. 중견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의 회장 격인 총무는 <동아> 소속이다.

신문협회와 편집인협회는 원래 사주나 언론사의 이해관계에 복무하는 거라 치부하더라도 일선기자와 노동자를 대변하는 한국기자협회와 전국언론노조가 이번 언론중재법 개정안 반대의 선두에 선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기자협회장은 <한겨레>, 언론노조위원장은 SBS 소속이다.

일선기자 보호조항마저 삭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김기현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8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현안관련 긴급보고에서 '언론중재법'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김기현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8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현안관련 긴급보고에서 "언론중재법"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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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소속 언론사가 대개 보수편향인 점도 문제지만 현업단체들이 회원이나 노조원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생긴다. 기자협회 조사에 따르더라도 징벌적 배상제에 50.1%가 반대했고 34.4%는 찬성했는데, 반대 목소리만 전달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 응답의 다수는 보수∙수구성향이 대부분인 전국종합일간지와 종편보도채널에서 나왔다.

상당수 기자들이 '중과실 주의 의무'를 져야 하는데도 징벌적 배상제에 찬성한 것은 '기레기 소리 그만 듣고 존중받고 싶다'는 소망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 터이다. 실제로 내가 현업단체를 계속 비판하자 전∙현직기자와 PD들의 격려 전화와 메시지도 꽤 온다. 내가 "당신은 왜 소속단체에 항의하거나 글을 쓰지 않느냐"고 채근하면 "사내에서 찍힐까 봐 목소리를 못 낸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 법안에는 일선기자들이 신경 써야 할 것도 있지만, 그들을 보호하고 실질적인 언론 자유의 폭을 넓혀주는 조항도 많다. 포털이라는 가두리양식장에서 어뷰징 기사나 가짜기사를 남발하는 신세를 면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는데 기자들이 왜 환영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징벌적 배상을 하게 된 언론사가 기자 등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경우 요건을 까다롭게 해 놓았던 조항도 언론노조 등의 반대로 삭제된 것으로 아는데, 노조원들에게 불리하게 고쳐진 이유를 모르겠다. 취재원 보호를 할 수 없게 된다는 지적도 하는데, 그것은 법원에서 수명(受命)법관이나 수탁판사 제도를 적용해 그 법관만 진술을 듣고 기밀을 봉인하면 얼마든지 취재원을 보호할 수 있다.

내가 8인협의체 참여를 거절한 이유

결국 여당이 박병석 국회의장과 이철희 정무수석의 중재로 한 달 간 숙의기간을 두기로 했는데, 아주 잘못된 결정이다. 지금도 징벌적 배상제의 하한선 등 핵심조항이 삭제돼 입법효과가 의심스러운 판에 뭘 더 양보하라는 건가? 개혁입법은 김영삼 대통령처럼 속도감 있게 해야지 뜸을 들이면 개혁대상의 반발만 커지고 입법환경이 악화할 수밖에 없다. 나한테도 8인협의체 참여를 요청했지만 처음부터 거절했다. 내가 그 안에서 말싸움밖에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이런 글을 쓰는 손발이 묶이기 때문이다.

협치는 원래 내각제와 다당제를 바탕으로 하는 유럽에서 발달해온 정치 행태로 협치를 안 하면 내각 구성조차 못하는 때가 많다. 협치의 요건은 상대방을 인정하고 대안을 내놓아야 하는데, 언론중재법 개정 과정에서 국민의힘은 "머리 속에 있다"고만 할 뿐 대안을 내놓은 적이 없다. 원천 저지에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현업단체들은 언론 탄압의 역사가 화려한 보수야당으로 달려가 힘을 합치고 있다. 그들은 언론개혁을 염원하는 시민들과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동아일보> 출신인 이낙연 국무총리와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으로 라인업을 짰을 때부터 나는 '언론개혁 물 건너 갔다'는 얘기를 해왔고 내 예측대로 돼왔다. 박병석 현 국회의장은 <중앙일보> 출신이다. 진보적이지 않은 인사들에게 친정을 겨냥한 언론개혁의 결단을 기대할 수 있을까?

자율규제 실패 되풀이… 국민만 보고 가야

개혁의 대상을 개혁의 동반자로 끌어들여 성공한 개혁은 전례를 찾기 힘들다. 검찰개혁도 처음에는 검찰에 맡겼으나 적폐세력과 유착해 저항하는 바람에 여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일부 언론학자와 언론단체들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 위원회'를 사회적 합의기구로 제안했는데 기구 이름 자체에 언론과 표현의 자유만 들어가 있다. 그런 위원회나 자율규제기구에서 언론계 스스로 가죽을 벗기는 '개혁'(改革)안이 나올까?

신문광고시장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신문사와 광고주들이 만든 자율기구인 한국ABC협회의 파탄이 답을 보여준다. 수많은 자율기구가 명멸했지만 상업주의로 치닫는 우리 언론에 제동을 걸지 못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재와 인센티브 없이 언론사와 언론인이 움직일까? '생사가 걸린 상업주의' 앞에 '언론이 이러면 안 된다'는 도덕주의는 백전백패다.

가짜뉴스까지 동원한 기성언론의 파상공세 속에서도 징벌적 배상제 찬성 여론은 여전히 높다. <조선>은 8월 30일 '북한 빼곤 모두 걱정하는 언론징벌법, 그래도 강행할 건가'라는 사설을 썼다. 징벌법에 찬성하는 과반의 국민은 북한 주민인가? <조선>은 2일 '일부 일탈에 전체 규제하는 입법 횡포, 언제까지 계속할 건가'라는 사설도 썼다. 법은 원래 일부 일탈을 막기 위해 만드는 것 아닌가? 강도를 막기 위해 형법에 엄벌 조항을 두는 것처럼.

언론개혁은 언론단체의 목소리를 경청하되 선동하는 뉴스에 흔들리면 안 된다. 국민을 위한 피해구제책은 오로지 국민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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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는 조선일보 기자, 한겨레 경제부장,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초대원장(2008~2019)을 역임한 언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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