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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완도군 근현대사 데이터베이스에 보관된 1967년 3월 1일에 촬영된 박정희 대통령과 지역유지들의 사진(사진 1).과 이어 완도 주민들이 거리에 한 줄로 서서 대통령이 탄 차량을 연호하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사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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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과 악수하는 이는 청해여관의 둘째 동생인 최복렬 씨이며, 박 대통령 앞에 머리가 벗겨진 이는 김현제 씨, 황권태 씨, 박열지 씨, 김성만 씨, 김주식 씨, 중앙정보부장이었던 이후락의 모습도 보인다.

대통령은 무슨 일 때문에 머나 먼 최남단 완도까지 오게 됐을까?

박정희 대통령의 완도 방문은 여러 이야기가 전하는데 원동다리 준공식 때인 1969년도 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419 혁명 이후 군사 쿠테타를 일으키면서 목포를 시찰하다가 완도를 방문해 지역유지들이 완도 철교를 건의해 완도와 해남의 연륙교가 부산 영도다리에 이어 전국 최초로 연륙교가 가설되는 계기가 됐다는 등 여러 후일담이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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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수협에 입사했다고 밝힌 정영래 전 문화원장은 "지역 내 건설업자였던 차윤일 씨는 완도의 명망 높은 유지였는데. 그 양반들이 송호림 전남도지사를 찾아가 완도철교의 건립을 건의했으며, 박정희 대통령은 완도철교가 한창 건립되고 있던 1967년도 그 시기에 방문했다"고 전했다.

그러며 "폭이 4.5미터에 이르렀던 완도철교는 해방 이후 첫 번째로 건립된 철교 다리 1호이며, 본래는 기차가 다니던 한강 철교가 홍수로 못 쓰게 되자 다시 양주로 가 인도교로 쓰이다가 한국전쟁 이후 이곳 완도로 오게 됐다"고. 이어 "다리를 가져올 때, 연결 볼트가 없어 인천의 한 고물상에서 구해왔다"고 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완도에 오게 된 이유에 대해, 정 전 원장은 "그 당시 전국에서 가장 부자 동네로는 오징어 잡이로 유명한 강원도와 일본에 김수출로 한창 호황기를 맞던 완도였다"고 했다.

또 "사진에서 보면 박정희 대통령 앞에 키가 크고 머리가 벗겨진 인물은 1960년대 완도군 번영회장이었던 김현제 회장으로 그는 완도보통학교 1회 졸업생인 김상석 씨의 아들로 김 씨는 일제 때 김 장사로 돈을 어마어마하게 벌었던 인물이다"고 전했다. 

더불어 "국가 재건을 위해 돈이 필요했던 박 대통령은 완도에서 어떻게 외화를 벌여 들이고 있는지, 일본 사정은 어떠한지 등 그것이 궁금해 일부러 방문한 것이다"고 밝혔다.

그 당시 완도엔 삼성의 이병철 회장까지 왔다갔다고 풍문이 돌았는데, 이병철 회장 또한 일본에 김 장사를 해서 삼성의 경제 기반을  닦은 사람이고 효성 물산과 대한 조선 등 모두 김 수출로 재계의 발판을 마련했는데 김수출은 70년대 들어 쇠퇴하기 시작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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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 사진은 1927년 11월 20일 촬영된 완도공립보통학교(현 완도초등학교) 보수과 학생들이 김 말리기 실습과 1960년경 백열등을 켜고 겨울 찬 새벽에 김을 뜨고 있는 부부의 모습(사진 5)이 김으로 부강했던 완도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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