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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석주관 전경
 구례 석주관 전경
ⓒ 임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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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명량대첩축제가 코로나19로 9월 3일부터 5일까지 온라인으로 개최되어 개막일을 앞둔 어제(2일) 명량대첩 승리의 초석이 되었던 구례의 이순신 유적지인 석주관에 다녀왔습니다.

백의종군 중이던 이순신 장군은 권율 장군 진영으로 가기 위해 석주관을 지나 하동으로 가셨고 8월 3일 조선의 수군을 재건하기 위해 다시 석주관을 지나 구례로 들어오셨습니다.
 
구례 석주관 전몰의병 추념비, 지위비 그리고 지위단
 구례 석주관 전몰의병 추념비, 지위비 그리고 지위단
ⓒ 임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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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관 칠의사 지위단을 바라보는 답사객
 석주관 칠의사 지위단을 바라보는 답사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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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이 수군 재건을 위해 곡성으로 떠난 후 왜군은 하동을 지나 석주관을 거쳐 구례로 입성했습니다. 8월 6일 구례를 함락한 왜군은 8월 16일 남원 함락, 8월 25일 전주 함락 등 파죽지세로 북진했습니다.

8월 4일 구례를 출발해 고난의 길에 선 이순신 장군은 곡성, 순천을 지나며 무기와 군사를 모았고 보성에서 군량미를 모았습니다.

회룡포에서 칠천량해전에서 살아남은 배설의 판옥선 12척을 인수한 이순신 장군은 왜군의 서해바다로의 진출을 막기 위해 최후의 방어선을 진도와 해남의 울돌목에서 수백 척의 왜선을 맞아 싸웠습니다.

8월 3일 구례를 출발해 조선의 수군을 재건한 이순신 장군은 호남 백성들의 뜨거운 응원에 힘입어 9월 16일 위대한 전투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끄셨습니다.

구례 통제영에서 출발한지 단 44일 만입니다. 구례에서의 결의가 명량대첩 승리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명량대첩 승리로 파죽지세로 북진했던 왜군은 다시 남하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전주, 남원, 구례 등은 왜군에 초토화되었고 이에 분개한 구례의 왕득인 의병은 석주관에서 의병항쟁을 벌이다 순절했습니다.

이후 그의 아들인 왕의성 의병은 구례의 젊은 선비들, 화엄사 승병과 함께 대를 이어 의병항쟁을 벌이다 순절했습니다.

석주관 의병항쟁은 구례 지역의 선비들과 하인, 피난민, 승려들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모두 힘을 합쳤다는 점에서 의미가 매우 큽니다.

외부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대규모의 왜군들과 전투를 벌였고 싸우다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석주관으로 올라간 것입니다. 석주관 의병항쟁은 두 차례의 대규모 전투에서 대부분 순절했다는 점에서도 다른 의병전투와 차이점이 있습니다.
  
석주관 칠의사와 일반의병, 화엄사 승병의 위패를 모신 사당
▲ 구례 석주관 칠의사 석주관 칠의사와 일반의병, 화엄사 승병의 위패를 모신 사당
ⓒ 임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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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석주관 성곽
 구례 석주관 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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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구례 석주관 의병의 숭고한 뜻과 기개, 그리고 전투의 처절함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고 있습니다. 구례의병과 석주관전투를 널리 알리고 나라 사랑의 표본으로 삼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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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를 읽어주는 윤서아빠 임세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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