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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게 시작한 공부가 더 뜨겁고 간절했다.
 늦게 시작한 공부가 더 뜨겁고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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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는 40세에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작인 <나목>으로 등단했다. 작가님은 엄마가 글을 쓴다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져 아이들이 학교에 가 있을 때나 식구들이 다들 잠든 한밤중에 글을 썼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40대의 주부가 소설을 써서 등단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기에 작가님에게는 언제나 '늦깎이 신인 작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그러나 박완서 작가님의 집필 기간은 돌아가실 때까지 40년 동안 지속되었고,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박완서 작가님에게 글쓰기는 단순히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도전의 의미만은 아니었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다섯 아이를 키우는 주부로 살다가 자신의 삶 속에서 무언가 풀어내고 써내야만 할 것 같은 그 마음을 붙잡고 매일 조금씩 써내려간 건, 어쩌면 단순히 작가가 되고 싶다는 바람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보다는,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절박함과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파리에서 도시락을 파는 여자>라는 책의 저자로 알려진 켈리 최는 '켈리델리'라는 요식업체로 유럽을 평정한 사업가로 유명하다. 그녀의 도시락 사업은 숱한 좌절과 실패 이후, 마흔이 넘어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한 도전이었다.

더 이상 버릴 것도, 내려갈 곳도 없는 순간에 시작한 만큼 그녀는 자신의 모든 열정과 에너지를 바쳤고, 도움을 구할 수 있는 모든 곳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녀의 여러 가지 성공 요인 중 하나는 어쩌면 많은 일들을 겪을 만큼 겪고 난 뒤, 그 연륜에서 오는 치열한 마음가짐이 아니었을까.

중년만 느낄 수 있는 도전의 즐거움 

20대의 선택으로 평생 직장이 결정되어 살아가는 시대는 지났다. 나의 경우만 해도 40대가 되어서도 새롭게 배우고 싶고 하고 싶은 일들이 참 많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아도 마흔 이후 자신의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하며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기업에 다니던 친구 A는 오랫동안 몸담았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며 공부를 하고, 자신이 직장을 다니며 생각했던 일들을 글로 써내고 있다. 미술을 전공한 친구 B는 최근 아로마테라피를 기초부터 공부하여 국제 자격증을 따고 새롭게 창업을 했다.

회사를 다니다 사업에 도전을 한 경우나 이직을 하는 경우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경험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생각보다 불안해하거나 조급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야 내가 원하는 것을 찾은 것 같다'라고 말하며 상기된 표정으로,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즐거움을 누리는 듯 여겨졌다.

결혼 후 두 아이를 낳고 나서 대학원에 들어갔다. 학부 때 전공과는 전혀 다른 분야인 상담을 공부하기 위함이었다. 30대 중반이었던 나는 그 때, 갓 대학을 졸업하고 온 20대의 친구들과 함께 공부를 하며 내가 너무 늦었다는 생각으로 한없이 초조했다.

그런데 상담 관련 자격증 시험을 보러 가거나 워크샵을 들으러 다니면 40대, 50대로 보이는 분들이 상당수였다. 그분들은 하나같이 참 열심히 수업을 듣고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자세를 보여주셨다. 50세에 상담대학원에 입학하여 석사, 박사 과정을 모두 하시고 60에 대학교에 강의를 나가는 교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 시절 그분들의 나이가 된 지금 돌아보니, 그때 그분들이 내뿜던 치열한 에너지와 열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갓 대학을 졸업한 20대의 친구들은 체력이나 암기력, 영어실력 등은 우수할지 몰라도, 학문에 대한 진지한 자세나 이해력의 깊이는 늦깎이 학생들이 가진 강점이었다. 그분들은 젊은 친구들의 고민을 품어주고 학업을 이끌어주는 역할을 해주시기도 했다.

나의 경우에도 뒤늦게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찾아서 시작한 만큼 공부에 대한 마음가짐이 20대에 대학을 다녔던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두 아이를 키우다 들어갔기 때문에 체력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너무나 여유가 없었는데, 그만큼 학교에 가고,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고, 밤잠을 줄여가며 과제를 하고...

그 모든 순간이 너무나 힘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달콤한 꿀같은 희열이 있었다. 마음을 다해 진지하게 공부하고 싶었고 정말 잘하고 싶었다. 20대부터 공부를 한 친구들에 비해 혹시 늦은 건 아닐까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한 것은, 그 공부가 너무 재미있었다는 것이다.

해야만 해서 공부를 했던, 20대까지의 공부나 취업 준비와는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공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공부, 내 전공'이라는 느낌으로, 자석에 끌리듯 치열하게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공부를 하면서 느끼는 점은, 나이가 들수록 좀 더 이해의 폭이 깊어지고 사고의 틀이 더 유연해지는 부분이 분명 있다는 것이다.

꼭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더 도전해도 괜찮다.
 더 도전해도 괜찮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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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내가 쌓아올린 나의 세계를 허물고 새로운 성을 짓는 도전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러나 인생의 반환점 즈음 새롭게 만난 두 번째 꿈은 내 삶의 선택지와 가능성을 확장시켜 주었고, 그 시도는 나의 우주를 넓혀주었다. 어쩌면, 오히려 조금 늦게 시작한 일이기에 느끼는 장점과 성취감도 있었다.

상담을 하며 자주 생각한다. 내가 지금보다 좀 더 어리다면, 사회 경험과 관계에 대한 이해가 지금보다 부족하다면 좋은 치료사가 될 수 있었을까? 그동안 내가 살아온 삶의 궤적과 경험치만큼 내 일에 대한 자신감도, 이해도 확장이 되는 것은 확실했다.

어릴 적 꿈꾸던 장래희망과 마흔 살 이후 내가 원하는 일에 대한 마음가짐은 다르다. 인정받고 성공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계산은 줄어들고, 삶의 후반부에 평생 동안 놓지 않고 할 수 있는 일, 결과보다는 그 과정을 즐기며 꾸준히 해나갈 수 있는 일에 집중하게 된다.

어릴 때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직업을 선택하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잘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방황이 너무 많았다. 가능성과 기회는 많았을지도 모르지만 수많은 선택지들 중에서 상황과 현실이 이끄는 대로 사회생활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40대가 되니 비로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 더 명확하게 보이는 기분이다.

사실 40대에 생겨난 꿈이나 바람은 '반드시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생각이나, '어떤 분야에서든 최고가 되겠다'는 마음과는 조금 다르다. 내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내가 무엇을 할 때 비로소 진지하고 행복해지는 마음인지를 조금 더 잘 이해하는 나이가 되고 보니 내가 바라는 일이 조금 더 또렷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생겨난 새로운 꿈에 대한 내 자세는 훨씬 더 진지하고 더 뜨거울 수밖에 없다.

몇 년 동안 온라인을 통해 함께 글쓰기 모임을 하는 글벗들이 있다. 전공도, 하던 일도 모두 제각각이고 다양한 곳에서 모인 사람들이 매일 글을 쓰고 공유하며 정보를 나눈다. 대부분의 글벗들이 육아와 직장일, 학업 등을 병행하며 글을 쓴다. 글쓰기 자체가 좋아서 쓰는 분도 있고 함께 글을 쓰다 정식으로 책을 출간한 분들도 있다.

나는 우리가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을 갖고 함께 나아가는 이 순간이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삶의 중반부에 내가 원하고 바라는 빛을 하나 붙잡을 수 있는 것은 그 자체로 축복이 아닐까. 꼭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나의 존재를 확인해줄 수 있는 의미를 찾는 것은 중년에 꼭 이루어야 하는 과업 중 하나일 테니까.

40대를 불혹(不惑)이라 해서, 세상 일에 쉽게 유혹되지 않는 나이라고 한다. 그러나 요즘의 40대는 아직 좀 더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을 가져도 되는 나이인 것 같다. 아니, 오히려 10대의 에너지로, 20대의 도전정신으로 원하는 일에 도전이 가능한 나이가 요즘 시대의 40대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group낀40대 http://omn.kr/group/forty
40대가 된 X세대입니다.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애쓰며 사는 지금 40대의 고민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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