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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부는 8월의 마지막 주말. 무더운 여름 한복판에 시작한 <정치-력: 우리동네 공약만들기> 프로그램도 어느덧 절반이 지났다. 8월 28일, 오진아 소셜디자이너 두잉(Doing) 대표가 진행한 '우리동네 갈등 해결하기' 워크숍을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여우야, 수프를 꼭 접시에 내왔어야 했니

여우와 두루미 우화가 있다. 여우가 두루미를 집에 초대해서 넓적한 그릇에 수프를 담아 주었고, 긴 부리로 수프를 먹을 수 없었던 두루미가 며칠 후 여우를 초대해 좁고 긴 호리병에 수프를 담아 줘 혼쭐을 냈다는 이야기다.

이날 모임은 이 우화를 다시 생각해 보는 작업으로 시작했다. 여우는 왜 수프를 접시에 담아 두루미에게 줬을까? 서너 명씩 조를 이뤄 이야기하자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설마 초대까지 했는데 악의는 없었을 것이라는 '여우 옹호론'부터 가장 좋은 그릇으로 손님을 대접하는 여우의 극진한 초대 문화가 낳은 오해라는 '비교문화적 접근'까지 말이다. 어쨌든 여우가 한 번쯤 두루미 입장에서 생각해 봤으면 좋았으리라는 데에는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정치발전소 '정치-력: 우리동네 공약만들기' 중 갈등관리 관련 강연. 오진아 소셜디자이너 Doing 대표가 진행한 강연은 여우와 두루미 우화를 재구성하며 시작됐다.
 정치발전소 "정치-력: 우리동네 공약만들기" 중 갈등관리 관련 강연. 오진아 소셜디자이너 Doing 대표가 진행한 강연은 여우와 두루미 우화를 재구성하며 시작됐다.
ⓒ 소셜디자이너 두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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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화가 그저 두 동물의 '빈정 상한' 이야기로 끝나지 않도록 새로운 결말을 상상해 보기로 했다. 각자의 필요에 맞는 다양한 그릇을 함께 모여 만들어 보는 그릇공방 클래스를 열자는 제안이 흥미로웠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릇을 공유 주방에 놓고 성대한 만찬을 여는 '마을공동체 엔딩'이 제안되자 참여자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놀라웠다, 이솝우화에서 마을공동체 사업의 가능성을 찾아내다니!

찬성, 반대는 입장일 뿐... 타협의 열쇠는 숨겨진 '욕구'에 있다

오진아 대표는 사회의 다양한 갈등이 바로 각기 다른 입장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했다. 누군가에게 선하고 좋은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해되지도 않고 동의할 수도 없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기에 사회의 갈등을 풀어나가려면 우선 다양한 입장들이 공평하게 다뤄지고 협상돼야 한다.

우리는 역할극을 하나 해 보기로 했다. 우리 사는 동네 빈 공터에 놀이터를 만든다면, 거기에는 어떤 이해당사자들이 존재할지를 생각해 보고 하나씩 역할을 맡아 보기로 했다. 불과 3분만에 구의원과 노인회장과 노숙인, 해병대전우회장과 신혼부부와 배드민턴 동호회 회장 등이 참여한 간담회가 만들어졌다.
 
정치발전소 '정치-력: 우리동네 공약만들기' 중 갈등관리 관련 강연이 8월28일 진행됐다. 오진아 소셜디자이너 두잉 대표는 강연에서 사회에서 마주치는 갈등이 마치 바다 위 빙산과 같다며 그 아래 '욕구'를 들여다보자고 했다.
 정치발전소 "정치-력: 우리동네 공약만들기" 중 갈등관리 관련 강연이 8월28일 진행됐다. 오진아 소셜디자이너 두잉 대표는 강연에서 사회에서 마주치는 갈등이 마치 바다 위 빙산과 같다며 그 아래 "욕구"를 들여다보자고 했다.
ⓒ 소셜디자이너 두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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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자기 이름으로 돼 있던 대화명을 역할명으로 바꿨을 뿐인데, 고도로 몰입한 참여자들 덕분에 줌(zoom)에서 실시간 정치드라마 한 편이 만들어졌다. '전 구의원인데, 이러이러해서 반댑니다' '전 신혼부부인데요. 왜 놀이터를 이렇게 싫어하시는지 모르겠어요' '배드민턴 동호회장입니다. 이곳을 놀이터 말고 주민을 위한 체육시설로 조성하면...' 등등 재치 넘치는 발언들이었다. 

도무지 타협이 불가능할 것만 같은 참가자들을 '원래의 나'로 되돌려보낸 오 대표는, 사회에서 마주치는 갈등이 마치 바다 위 빙산과 같다고 설명했다. 같은 찬성, 같은 반대라 하더라도 그건 물 위에 떠 있는 일각일 뿐이고, 물밑에는 훨씬 큰 얼음덩어리가 숨겨져 있다. 수면 윗부분이 '입장'이라면 수면 아래 부분은 '욕구'다. 보이는 입장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고, 물에 잠겨 보이지 않는 이해관계자들의 욕구가 무엇인지까지 이해해야 갈등을 풀어낼 수 있다.

놀이터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바가 다 다르듯, 서로의 욕구를 두루 절충할 수 있다면 결코 좁혀질 수 없을 것 같았던 입장 차이도 누그러뜨릴 수 있을지 모른다.

반려동물도 주민도 행복한 '어떤 공원'

워크샵의 마지막 순서는 '반려동물 전용 공원 만들기'로 꾸며졌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공원에 동물을 데려오는 통에 산책하고 쉴 수가 없다는 볼멘소리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렇다면 반려동물 전용 공원을 만든다면 어떨까? 반려인구의 필요를 만족시키면서 동네 주민들의 반발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대안이 있을지 조별로 이야기해 보기로 했다.

역시나 다양한 정책 아이디어가 솟구쳐 나왔다. 연구용역을 통해 공원이 타당한지 객관적으로 파악하자는 의견, 완충녹지를 충분히 조성해서 소음문제를 해결하자는 대안이 나왔다. '펫+키지'를 만들자는 제안도 나왔다. 반려동물특화상가를 공원 옆에 조성하고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지역형 일자리를 만드는 한편, 반려동물 지역커뮤니티를 지원하여 지역공동체를 강화하자는 정책 패키지가 뚝딱 도출됐다.

처음에는 그저 반려동물 키우는 사람들만 좋은 계획처럼 보였는데, 이해당사자들이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속뜻을 이해해보려고 시도하니 보다 입체적인 방안이 만들어지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떤 선한 일을 도모하더라도 반대의 목소리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면, 반대하는 이유까지도 해소할 수 있는 큰 틀의 계획을 내놓는 쪽으로 가야 할 것이다.
 
워크샵의 마지막 순서는 '반려동물 전용 공원 만들기'로 꾸며졌다. 반려인구의 필요를 만족시키면서 동네 주민들의 반발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대안이 있을까?
 워크샵의 마지막 순서는 "반려동물 전용 공원 만들기"로 꾸며졌다. 반려인구의 필요를 만족시키면서 동네 주민들의 반발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대안이 있을까?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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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치인들의 공약이 거창하다고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공약이 그저 거창하기만 한지, 아니면 반대하는 이들의 욕구까지 포섭하기 위해 '거창해진' 것인지를 구분해낼 수 있다. 갈등은 일을 좌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소통과 공감을 낳는 촉매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

한편, 갈등의 본질을 이해하고 관리하는 데 역할극이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 얽힌 갈등을 풀지 못하고 얼굴 붉히는 이들에게, 이 갈등을 풀어보려 골몰하는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차 한 잔과 5분의 짧은 역할극을 권하고 싶다. 십수 번 공청회를 해도 깊어지기만 하던 입장들을 슥 맞바꿔 보는 것만으로도 꼬일대로 꼬인 갈등이 조금 느슨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시작하기 전에 일단 이것 하나만 기억하자. "왜 여우는 수프를 접시에 내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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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인 겸 청년마을활동가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말은 "그럴 수 있지"와 "오히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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