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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500명 넘는 무용인들이 한자리에 모인 축제(서울무용제)의 경선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올해는 예술적 완성도를 높인 작품에게만 지급된다는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예술성과 흥행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이 작품은 코로나19로 얼어붙은 공연계를 뚫고 우리 곁을 다시 찾아왔다.

2020년 서울무용제에서 첫 선을 보인 이후 1년 가까이 환골탈태를 거듭한 이 작품은 아르코예술기록원이 공연 영상화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하는 '아르코 온라인 극장(ARKO Online Theatre)'의 선정작 <집속의 집>(모헤르댄스프로젝트 제작)이다.

제목이 독특하다. 어디서 들어봤을까. 인형을 열면 안에 작은 인형이 나오고, 그 안에는 더 작은 인형이 있는 러시아의 전통인형 '마트료시카(Matryoshka)'를 닮았다. 아마도 거듭된 양파 껍질을 벗기는 듯, 겉과 다른 또 다른 내면이 공개될 거 같은 기대감을 부풀게 만든다.

'집'에서 찾는 위로 
 
극장 입구에 걸린 '집속의 집_두 번째 이야기' 포스터
 극장 입구에 걸린 "집속의 집_두 번째 이야기" 포스터
ⓒ 이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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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제작한 서연수 안무가에 따르면, 이 공연은 "집에 대한 그리움을 시각작품으로 표현한 서도호 작가로부터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영등포역에 있는 타임스퀘어에 가면,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사람의 머리 위에 다른 머리가 연이어 쌓아올린 대형작품(작품명: 카르마) 말이다. 그런데 모티프로 직접 언급된 것은 정작 따로 있다. 미국과 영국 등 타지에서 오래 생활한 서도호 작가가 한국 전통집을 생각하며 만든 작품이란다.

여기엔 '집'이라는 단어가 무려 다섯 번이나 반복된다. '집속의 집속의 집속의 집속의 집'. 거대한 사각형 테두리 안에 실크로 만든 서양 집이 있는데, 다시 그 안에 그가 그리워했던 고유의 전통 집을 숨겨놓은 것이다. 국내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비슷한 부류의 작품을 꾸준하게 선보인 서도호 작가에게 '집속의 집'이란, 타지 생활에서 겪었던 공허함을 우리 고유의 집으로 위로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의미다. 

다시 서연수 안무의 <집속의 집>으로 돌아가 보자. 이것은 서도호 작가의 방식과 유사하지만 "집속의 집은 내게 가장 큰 위로"라고 말한 것처럼 '공간에 대한 기억'에 집중했단다. 하지만 분명히 다른 점은 물체보다는 인간의 내면에 담긴 삶의 이야기를 표현한 것이다.

누구나 꿈꾸는 가장 큰 공간인 집 속에는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삶과 표정이 존재한다. 자신이 바랐던 공간의 기억 속에서 슬픔, 분노, 억눌림, 아쉬움이 존재하는데, 사람들은 자신만의 집에서 위로를 찾는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여기서 'House'라는 유형의 집에서 'Home'이라는 정신적 안식을 꾀하는 중의적 시도가 돋보인다. 한 마디로 "가장 작지만 가장 넓은 자신만의 집을 갈구하는 현대인의 바람"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서연수 안무가의 <집속의 집> 공연장면
 서연수 안무가의 <집속의 집> 공연장면
ⓒ 옥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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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오후 4시,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영상촬영을 위한 사전 공연이라 그런지 관객보다는 스태프와 관계자들만 있어 대체로 한산했다. 공연이 펼치진 곳은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공연장으로 손꼽히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다. 무려 3층으로 구성된 이곳은 3000석이라는 규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우라가 대단하다.

대개 "무용수의 세밀한 근육을 보려면 무대와 가까워야 하지 않을까?"라는 선입견 때문에 처음엔 의아스러웠다. 아니 우려와 걱정이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뒷자리에선 무용수들의 동작이 보이지 않을텐데. 객석에 앉아 막이 오르기 전까진 이 모든 게 낯설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알고 있던 공연 사용 설명서에서 벗어난다면, 이것은 완벽한 기우였다고 느낄 것이다. 한 마디로 이 작품을 보기 위해선 일반적인 관람팁을 전부 포맷해야 한다. 

대극장을 가득 채우는 실루엣 

6~7미터가 됐을까. 천장에 닿을 정도의 높이를 자랑하는 대형 오브제들이 대극장 무대를 장악했다. 사각형 프레임에 실크 같은 소재의 반투명한 천으로 뒤덮인 10개의 조형물. 마치 공사 현장에 가면 볼 수 있을법한 '비계'와 닮았다. 이 오브제는 우리가 꿈꾸는 '집'을 형상화한 도구다. 16명의 여자 무용수와 8명의 남자 무용수는 집을 사이에 두고 때로는 안에서 때로는 밖에서 자신의 감정을 분출한다.

공연은 이전까지 선보였던 작품들과 다르게 '두 번째 이야기'라는 타이틀이 붙었는데, 그것은 전작과 다르게 상당한 부분이 개선됐다는 뜻이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우선 오브제 세트에 홀로그램 영상 기법을 활용한 것이 눈에 띈다. 무용수의 자잘한 근육을 직접 눈으로 보기 힘들 때에는 조명에 반사된 무용수들의 과장된 몸짓을 보면 된다. 오히려 이전과 다르게 출연자의 표현력에 보는 이의 상상력을 더해서 감정의 깊이는 더욱 풍부해진다.
 
서연수 안무가의 <집속의 집> 공연장면
 서연수 안무가의 <집속의 집> 공연장면
ⓒ 옥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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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수 안무가의 <집속의 집> 공연장면
 서연수 안무가의 <집속의 집> 공연장면
ⓒ 옥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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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와 실루엣으로 채워진 무용수는 육안으로 보는 것과 다르게 대극장을 빈틈없이 채우고도 남는다. 무대의 백판을 서너 명의 무용수만으로도 충분히 채운 비결은 바로 원근법을 활용한 절묘한 동작과 세밀한 빛이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자잘한 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몸동작의 표현을 다채롭게 만든 안무가의 세심한 고민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무용수의 몸동작에 결을 맞춘 배경 음악과 음향 효과는 더 이상 주연을 부각시키는 조연이 아니다. 공연의 첫 장면, 남자 무용수가 등장한 후 정적에 싸인 채 객석을 바라본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번민과 고통에 휩싸인 채 격렬하게 절규한다. 이후 열 개의 구조물 사이로 여자 무용수들이 원을 돌며 공연의 시작을 알린다.

군무의 움직임은 심장을 죄어오는 것처럼 비트에 맞춰 서서히 몸을 달군다. 10개의 구조물에서 총 25명의 무용수들이 날개짓 한다. 몸동작은 점차 가열되며 모든 일들을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몸동작을 감상할 때, 한 명씩보다는 전체적으로 조화되는 느낌을 이해하는 게 편할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뿜어내는 무용수의 심리에 빠져든다면 60분이라는 러닝 타임은 생각보다 길지 않을 정도다.

냉탕과 온탕을 뛰어넘는 움직임은 강렬한 비트에 맞춰 관객의 숨소리를 멈추게 만든다. 세트, 의상, 조명 등 공연에 더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을 안무에 부합될 수 있도록 디테일에 신경 썼다. 60분은 여러 이야기가 흐름을 탈 수 있도록 몇 번의 장면 전환을 보여준다.

긴장과 분노, 아쉬움, 절규 등 현대인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무용수들이 빼곡하게 채우는데 이번 공연의 묘미는 우리가 알고 있던 몸동작에 포커싱을 맞춘 정통 무용이라기보다는 스토리가 풍부한 한 편의 영화를 본 거 같은 느낌을 받았다. 대사가 없어도 충분한 내용을 이해한 것처럼.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 영상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아르코 온라인 극장'의 선정작으로 진행된 공연을 관람한 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온라인 홈페이지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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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재단 홍보IT팀장과 문화예술 시사 월간지 <문화+서울>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한겨레 신문에 매주 금요일 마다 볼만한 공연과 전시를 소개해주는 '주간추천 전시/공연'과 문화예술계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를 인터뷰하는 '사람in예술' 코너의 글을 쓰고 있다. sortir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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