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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0월이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배상 판결을 확정한 지 3년이 된다. 하지만 지난 6월 7일과 8월 11일 서울지방법원은 연달아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의 판결을 하급심이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다.

법정에서의 패소와 더불어 존 마크 램지어 미국 하버드대 교수나 이영훈 서울대 명예교수 등은 지속적으로 강제징용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일본인 학자가 심도깊은 연구 끝에 발간한 〈조선인 강제연행〉은 읽을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책은 일제가 조선인들을 어떻게 강제로 연행하였는지 샅샅이 파헤칠 뿐만 아니라 현재로까지 그 문제의식을 이어나감으로써 조선인 강제연행의 해결이 곧 당면한 사회문제들의 해결과 맞닿아있다고 역설한다.

 
도노무라 마사루, 조선인 강제연행, 뿌리와이파리, 15000원.
 도노무라 마사루, 조선인 강제연행, 뿌리와이파리, 15000원.
ⓒ 뿌리와이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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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9월 이전에도 강제동원은 존재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었던 바와 달리, 조선인은 1944년 9월 전까지는 징용당하지 않았다. 즉 조선인이 징용당한 기간은 채 1년도 안 되는 기간이었다. 반면 일본인은 1939년 8월 이후로 징용되었다.

그렇다면 이전까지 조선인에 대한 강제적 노동이 없었나? 그렇지 않다. 1939년부터 실시된 노무동원계획과 1942년부터 실시된 국민동원계획에 기초해 조선인들은 일본 내지의 탄광이나 토건공사 현장에 끌려갔다. 이는 법적으로 징용이 아니었다.

노무동원이나 국민동원은 원래 희망자를 우선시하고 직업소개나 관(官)알선을 기반으로 행해지는 것이었지만 조선에서 그러한 규칙은 무너졌고 면장이나 면사무소 직원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거나 협박을 받아 울며 겨자먹기로 끌려가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렇다면 왜 조선인은 일본인에 비해 늦게 징용되었나? 징용이라 함은 곧 법적인 강제성을 띠고 있다. 국가가 구성원인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강제로 징용하는 만큼 국가는 징용자에 대해 최소한의 대우를 해줘야 했다. 가령 일본인 징용자의 경우 조선인이 주로 간 탄광이나 토건공사와 같이 험한 일터에 가지 않았고 대개 사는 곳 근처의 공장 등 일정한 편의를 봐주고 있었다. 또한 징용자의 부양가족에 대해서도 국가에서 원호비를 지급하는 등 복지체계가 갖추어 있었다.

그러나 조선에 대해서는 그러한 징용이 이루어질 이유가 없었다. 일제에게 조선인은 국민으로서 최소한의 대우조차 해 줄 의무가 없는 존재였다. 즉 조선인은 동시기 일본인에 비해 더 심한 강제연행을 당했음에도 일본인이 받는 혜택의 일부조차 받지 못했다.

악명높은 조선총독부도 반대... 결국 단 한 명도 보상받지 못했다

조선총독부는 일본 내지의 이러한 시책에 반대하는 경향이 강했다. 물론 이는 조선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안정적인 조선통치를 위한 것이었다. 이미 조선 내부에서도 농촌 인원들의 상당수를 만주나 한반도 북부 지방으로 이주시켰는데 더 많은 인원을 일본으로 연행한다면 조선의 식량사정에 큰 무리가 갈 것이라는 조선총독분의 반대 이유였다. 게다가 최소한의 복지도 없는 강제연행은 남은 가족들의 분노를 자아내 폭동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조선인은 징용의 대상에서 벗어난 채로 법망의 구멍에서 강제로 연행되었다.

그러나 전쟁이 말기로 치닫자 어떻게든 조선인 인력을 확보하고자 안달이 난 일제는 결국 패전 1년 전, 조선에도 징용을 허락하였다. 즉 조선인이 강제적으로 동원되었음을 법적으로 인정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 따른 대우나 복지에 관해서도 내부적인 논의가 나왔지만 논의는 논의만 한 채 끝을 맺었고 실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결국 일제의 강제연행으로 인한 보상을 받은 조선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저자는 책 말미에 조선인의 강제연행이 과거의 사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대입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주장한다.

일제는 일본인이 기피하는 탄광이나 토건업에 조선인을 강제연행하면서 동시에 그들이 일본 사회에 동화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조선인이라는 불량 집단이 순수한 일본 사회를 어지럽히지는 않을까하는 두려움이었다. 자신들이 꺼려하는 일들을 대신해주는 만큼 더 대우해줄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학대했다. 어차피 조선에서 데려올 수 있는 노동자들은 얼마든지 있으니 일터의 안전이나 환경을 개선하려는 의지도 없었다.

그러나 탄광과 토건업이 모두 조선인으로 꾸려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일본인 하층민들이 더 많았다. 즉 조선인이라는 대체인력의 대우를 낮게 해주었기에 그만큼 일본인 하층민들 역시 피해가 컸다.

오늘날의 3D 업종과 비슷하지 않을까. 외국인 불법체류 노동자들과 조선인 강제연행자들의 처지와 사회가 바라보는 시선은 사뭇 닮지 않았는가. 물론 전자가 후자에 비해 강제성도 없고 더 나은 환경임은 사실이지만 본질적 차원에서 둘의 문제가 얼마나 다르다고 할 수 있겠는가. 최저의 노동자라는 집단을 설정함으로써 그 밖의 노동자들 역시 피해를 입고 사회 전체가 병드는 모습은 똑같지 않은가.

한국 사회도 강제연행을 단순히 일제강점기 시대의 참혹한 과거로 생각하지 말고 이처럼 우리가 직면한 여러 문제들과 맞닿아 사고한다면 그 인식과 해결이 좀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조선인 강제연행

도노무라 마사루 지음, 김철 옮김, 뿌리와이파리(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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