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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말, 여러 외신은 튀니지가 민주주의에 제동이 걸릴 위험에 처했다고 보도했다. 카이스 사이에드 튀니지 대통령이 국무총리를 해임하고 의회의 기능을 정지시켰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나라에서는 사건이 벌어진 후 약 2주까지의 시간 동안만 짧게 보도하고 그쳤지만, 미국은 특집 기사들을 보도하며 튀니지의 정치적 국면에 대해 심도 있게 다뤘다. 그들은 튀니지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다시 독재 국가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데 염려를 표했다.

하지만 튀니지의 현 상황은 표면상으로 보이는 것보다 더 복잡한 요소들을 안고 있다. 튀니지 국민들은 오히려 사이에드를 응원한다. 물론 그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의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권한 강화를 응원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튀니지 사태는 민주주의 국가의 발전 과정과 제 3세계로 일컬어지는 아프리카 및 중동 국가의 고질적인 문제의 원인에 대해 알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재스민 혁명과 아랍의 봄
 
지난 2011년 1월 24일 튀니지 수도 튀니스에서 시위대가 벤 알리 전 대통령의 사진을 불태우고 있다.
 지난 2011년 1월 24일 튀니지 수도 튀니스에서 시위대가 벤 알리 전 대통령의 사진을 불태우고 있다.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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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의 봄'은 2011년 북아프리카 및 중동 국가에서 독재정권에 대항하여 일어난 아랍의 민주화 운동이다. 이 혁명은 2011년 1월 튀니지에서 일어난 '재스민 혁명'(튀니지의 국화)을 시작으로 주변 국가인 리비아와 이집트, 예멘 등의 나라로 확장되었다. 억압적 분위기의 아랍권 국가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올 것이라는 기대감과 달리 아랍의 봄 혁명에서 유일하게 민주주의 국가로 진입한 국가는 튀니지가 유일했고, 나머지 국가들은 독재정치를 청산하기는 하였으나, 아직까지 무정부 상태나 과도기 정부 상태 아래서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다.

튀니지의 민주화 전개 과정은 다음과 같다. 2010년 12월, 수레에서 과일과 채소를 팔던 한 청년이 분신을 한다. 폭등한 물가에 비해 턱없이 적은 임금과 그로 인한 극심한 생활고, 청년실업과 어마어마한 빈부 격차 등 튀니지는 많은 문제들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지속 되어 온 독재와 정치 엘리트들의 부패는 튀니지의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었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일자리가 없었던 모하메드 부아지지는 행상을 하며 돈을 벌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경찰들의 단속에 빼앗겼다. 부아지지는 분신함으로써 이에 투쟁했다.

당시 튀니지에서 23년간 집권하고 있던 벤 알리 대통령은 유화책과 강경책(각각의 예로서, 식료품값 인하와 학교 폐쇄 등)을 통해 민심을 정비하려고 하였으나, 부아지지가 병원에서 죽자 2011년 1월 대규모 시위가 시작되었다. 1월 14일 벤 알리 대통령이 사우디 아라비아로 망명하고, 독재정권은 막을 내렸으며, 같은 해 10월 자유선거를 통해 이슬람주의 정당이 집권당이 된다.

흥미로운 점은, 튀니지에서 일어난 '재스민 혁명'이 우리나라의 노동 운동 전개 양상과 굉장히 유사하다는 점이다. 방직공장에서 일하던 청년 전태일은 하루 14시간의 노동에도 불구하고 결코 공장에서 빠져나올 수도 없고, 빠져나온다고 하더라도 결코 다른 살아날 구멍이 없는 암담한 현실에 저항하여 분신하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독재정권의 치하에 있었고, 많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을 위해, 나라를 위해 소위 갈려 나가고 있었다. 그의 죽음으로 노동환경에 대한 경각심이 우리나라에 깊이 뿌리 내리게 되었고, 유명무실했던 근로기준법이 점진적으로 보장받게 되었다.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억압이라는 어둠 속에서 결국 누군가의 발화를 통해 개진의 빛이 지펴지는 것 같다.

튀니지의 민주주의, 희망과 절망

2013년 결성된 튀니지 국민 4자 대화기구(Tunisian National Dialogue Quartet)는 튀니지의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에 크게 기여한 공로로 2015년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대화를 통해 독재정권에서 민주주의 정권으로 이양한 만큼, 튀니지의 대화기구와 민주화는 가장 이상적인 정치 모델 중 하나로 평가된다.

튀니지가 아랍의 봄 혁명을 함께 한 다른 국가들과 달리 민주주의 체제로 안전하게 진입할 수 있었던 것에는 국민 4자 대화기구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다. 튀니지의 국민 4자 대화기구는 노동계와 산업계, 시민단체, 법조계 4개 영역이 모여 결성한 단체이다. 독재정권이 막을 내린 후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서 튀니지에는 새로운 헌법 체계가 필요했다. 국민 4자 대화기구는 정부와의 대화를 통해 평화적 대안을 제안하고, 정치와 종교의 자유, 기본권의 보장 등을 헌법에 포함시키며 튀니지가 민주주의 국가로 넘어갈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했다.

민주화에 성공한 지 10년이 된 지금, 튀니지는 어떠한 상황일까? 사이에드 대통령의 총리 해임과 의회 기능 정지는 분명 민주주의에 좋지 않은 신호이다. 그럼에도 튀니지 국민들은 대통령의 행동에 어떠한 반감도 표출하지 않았다. 사이에드의 공포 이후, 거리에는 시위를 하는 그 누구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반정부 시위를 통해 민주주의를 획득한 튀니지 국민들은 여전히 빈곤에 허덕이느라 10년 전 간신히 짜내었던 그 한 발을 다시 내딛기가 힘들다. 튀니지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7.5달러로 10년 전과 동일한 수준이다. 하지만 물가는 그사이 폭등했다. 하루를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이들은 시위를 위해 하루를 내던질 수가 없다. 당장의 내일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둘째, 민주화 이후 의회와 정당의 이권 다툼은 튀니지를 경제적으로 더 어렵게 만들었다. 국민들을 위해 일해줄 것이라고 기대한 의회와 정치인들이 이권 다툼에만 집중하였기 때문에 튀니지인들은 민주화로 오히려 싸움과 폭압의 주체들만 늘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였다.

따라서 사이에드 대통령의 총리 해임과 의회 마비는 오히려 튀니지 국민들을 위한 하나의 과업으로서 행해졌다고 자국 내에서는 평가받고 있다. 법학과 교수였던 그는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고 헌법을 개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민주주의에 적신호로 보이는 그의 행보를 독재의 시발점으로 평가하기에는 조심스러운 것도 여기에 있다.

애초에 튀니지의 헌법이 수립될 때 튀니지 의회는 많은 권한을 가져갔고 이를 바탕으로 집권당과 정치 엘리트들은 자신들만의 리그를 공고히 했다. 이에 대해 국민들의 반감이 계속해서 커지고 있던 상황에서 사이에드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개혁을 단행한 것이다. 대선 출마를 거부하던 그가 2019년 출마하여 당선된 것에 대해 그 자신은 '하나의 종교적 소명'이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튀니지인들은 사이에드의 정치적 결단에 오히려 민주주의와 경제 부흥이라는 소망을 걸고 있다.

우리는 왜 저 멀리 아프리카와 중동의 난민 문제에 신경 써야하는가
 
한국정부에 협력한 아프가니스탄 조력자와 가족들을 한국으로 데려오기 위한 작전이 시작된 가운데, 카불공항 부근에 한국 등 해외로 탈출하려는 아프간인들이 모여 있다.
 한국정부에 협력한 아프가니스탄 조력자와 가족들을 한국으로 데려오기 위한 작전이 시작된 가운데, 카불공항 부근에 한국 등 해외로 탈출하려는 아프간인들이 모여 있다.
ⓒ 외교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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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와 중동 국가를 생각하면 언제나 황폐화된 토양과 물, 식료품의 부족, 전무한 인프라 등이 떠올랐다. 언론 매체에 주로 다뤄지는 것이 그러한 모습들이고, 기아와 빈곤은 '절대적으로 먹을 것이 부족'해서라는 생각에 기인한 것 같다. 하지만 놀랍게도,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은 절대적 빈곤을 겪고 있지 않다. 오히려 많은 경우 풍부한 천연자원과 농산물을 산출하기에 충분한 토질을 소유하고 있다. 튀니지의 경우, 많은 지역이 사막이거나 사막과 인접하여 메마른 지역이지만 오아시스와 남부의 마자르다강 주변에서는 농업지대 형성이 가능하다. 또한 인산염 광물과 원유, 천연가스가 대량으로 매장되어 있다.

죽은 땅이 결코 아님에도 튀니지를 비롯한 아프리카 국가가 빈곤 국가에 머물러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 이유를 하나로 집어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피식민지로 살았던 경험과 자국의 오랜 독재 통치일 것이다. 실제로 튀니지는 오랜 기간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 아래 있었고, 프랑스와 영국이 지배권을 다투던 무대였다. 1956년 프랑스의 지배가 끝나기 전까지 오랜 시간 식민 통치 아래에 있으면서 정치와 경제에 대한 자체적 능력을 상실한 것이 현재의 무능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또한,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이 독재정권 아래에 있는데, 독재정권 아래서 많은 정치 엘리트들은 부패했고, 국가의 정치적 발전은 물론 경제적 발전까지도 멈춰져 국가의 수준이 퇴보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아프리카 국가에서 많은 난민이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어려움으로부터 도망쳐 유럽 국가로 향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프리카의 난민 문제는 이렇게만 보면 아직도 남의 나라 문제이다. 얼마 전 이준석 국민의 힘 대표는 대한민국의 야당 대표로서 난민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들의 입국이 의심스럽다. 난민과 이민을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기술을 가진 이민자들에게는 허용적일 것이다. 하지만 난민에 대해서는 그들이 굳이 우리나라에 오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대답하며 난민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동아시아권은 난민 문제를 겪고 있는 아프리카와 중동, 유럽권과 지리적으로도 역사적으로 동떨어진 곳이다. 우리가 그들과 적극적으로 엮일 이유는 충분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난민 문제를 생각해야 하는가.

그것은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들의 나라에도 전태일이 있기 때문이다. 외면당했던 경험에 아파봤던 국가가 그와 같은 상황에 있는 또 다른 국가를 외면하는 것은 인륜에 반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그들의 불행과 우리의 행복을 격리시켜 놓을 수가 없다. 코로나 시대 백신의 개발이 또 다른 변이 바이러스에 좌절되는 것을 보며, 우리는 내가 살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상대방도 살아야 함을 보게 되었다. 독재와 빈곤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정치적, 경제적 문제도 전염병과 같아서 모두 함께 면역이 되든가 다 같이 질병에 노출되든가 양자택일의 문제이다. 따라서 우리는 소위 '남의 나라'의 문제에 신경 쓸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참고자료

"Trouble in Tunisia", The Daily(Radio Program), The New York Times, 2021.08.04
Vivian Yee, "‘You Just Think About Eating’: Why Tunisians Backed a Presidential Power Grab", The New York Times, 2021.08.05
https://www.nytimes.com/2021/08/05/world/africa/tunisia-democracy-president-support.html
Vivian Yee, "Populist Hero or Demagogue: Who is Tunisia’s President?", The New York Times, 2021.08.26
https://www.nytimes.com/2021/08/26/world/middleeast/tunisia-president-kais-saied.html
조성제 ( Sung Je Cho ) and 박현희 ( Hyun Hee Park ). “연구논문 : 경제,경영 영역 ; 한,튀니지 국제농업협력사업의 평가와 향후 전망.” 유라시아연구 6.2 (2009):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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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종교학을 전공하고 '사람'에 관심이 많은 새내기 인문학도입니다. 비합리를 통해 합리를 뒷받침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강아지를 키우고 있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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