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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72시간 동안 밀착 취재하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전국에 있는 시장 소식을 종종 방영하기에 관심을 두고 챙겨보고 있다. 

지난 7월 18일(일)에는 '단짠 인생'이라는 제목을 달고 '안동구시장 찜닭골목' 상인들의 치열한 삶의 현장이 방송을 탔다. 안동구시장은 1970년대 생닭을 팔던 닭전에서 시작하여 현재는 24곳의 찜닭집이 밀집해 영업 중이란다. 그 중 어머니가 건사하던 찜닭 가게를 이어받은 아들의 인터뷰 내용은 지금까지 기억할 만큼 인상 깊다. 

아들은 가게를 물려받고 1년도 안 돼서 친구한테 넘겼단다. 그러다 11년 전쯤 다시 찜닭 장사를 하게 됐는데, 처음엔 장사가 너무 안됐다고 한다. 월세 주고, 일하는 아주머니 월급 주고 나니 통장에 딱 70만 원이 남더란다. 노력한 것에 비해 결과가 너무 허탈해서 술 한 잔 먹고, "엄마, 나 인제 찜닭집 안 할래요"라고 어머니한테 말씀드렸더니, 이런 위로와 힘을 주셨다고 한다.

"우리 아들 누추한 가게에서 70만 원씩이나 벌었어. 적자 아니네~ 그리고 아들아, 3년만 해보고 그래도 장사(가) 되지 않으면, 그때 장사하는 건 미련한 짓이다. 그때 그만둬라."

어머님이 예지력이 있으셨는지 1년 6개월이 지나면서 다행히 손님이 늘기 시작했단다. 아들은 "어머니가 평소 하신 말씀을 모 방송에서 어떤 셰프가 똑같이 말해서 깜짝 놀랐다"라며 어머니의 장사 철학도 대신 전했다.

"정성을 들였는데 손님이 맛없다고 하면, 네 실력이(야) 노력하면 되는 건데.... 네가 정성 들이지 않은 음식을 손님이 맛없다고 하면 기분 나쁘지 않을까?"

수십 년 세파에 부딪히며 터득한 노하우를 미주알고주알 전수한 어머님은 작년 가을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다시는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는 장사 비법을 가슴에 새긴 아들은 가게를 찾는 단골 손님들께 감사하며 12년째 찜닭집을 꾸려오고 있단다.

공주오일장에서 만난 '리어카 아저씨'
 
공주오일장에 나온 손님이 5kg 포도 한 박스를 '리어카 아저씨'한테 사간다.
 공주오일장에 나온 손님이 5kg 포도 한 박스를 "리어카 아저씨"한테 사간다.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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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마지막 오일장이 선 26일(목), 공주산성시장에서 안동구시장 찜닭집 어머님 같은 고수를 만났다.

비수기가 끝날 시기임에도 코로나19의 여파는 여전해서 장터를 찾는 손님은 예년만 못하고, 기분 탓인지 한적한 시장 골목을 지키는 장꾼들마저도 활기를 잃은 듯 기운 없어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적막한 분위기를 한방에 날려 버리는 고함이 어디선가 들려왔다.

"포도요, 포도! 포도가 왔어요. 한 박스 23000원짜리가 15000원. 지금 아니면 두 번 다시는 못 사는 맛있는 포도~"

5kg짜리 포도 박스를 리어카(손수레)에 가득 실은 아저씨 한 분이 산성 5길에 등장해 골목이 떠나가라 호객 중이었다. 포도 한 박스를 사 들고 가는 손님이 있어 슬쩍 들여다보니, 포도알 크기도 잘지 않고 줄기 상태도 좋아 보였다.

23000원에 형성된 시중가보다 훨씬 싸기까지 하니 은근 욕심이 났다. 온몸으로 천상 장사꾼의 면모를 보이는 아저씨 또한 너무도 궁금하여 자연스레 발길은 포도 박스 가득 쌓인 손수레 쪽으로 향했다.
 
박스 채 포도를 사가지 못하는 손님들은 비닐 봉투에 담아 팔았다.
 박스 채 포도를 사가지 못하는 손님들은 비닐 봉투에 담아 팔았다.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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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아주머니 한 분이 다가와 맛보기 포도(?)를 찾다 안 보이니 아저씨께 물었다.

"하나 먹어봐도 되쥬?"
"안 돼유. 먹으면 무조건 사야 돼유. 아직까진 내 포도니까 내 맘유. 안 팔 거유."


'말 참, 무뚝뚝하게 한다.' 속으로 혀를 차는데, 막상 아주머니가 한 알 떼서 먹어도 말리기는커녕 타박 한 번을 안 한다.

"음, 맛있네"
"거 봐유. 맛있다고 했잖유."


기다렸다는 듯이 포도맛 칭찬에 으쓱해했다.
 
리어커에 실린 마지막 포도 박스는 오토바이를 타고 온 손님 짐칸에 실렸다.
 리어커에 실린 마지막 포도 박스는 오토바이를 타고 온 손님 짐칸에 실렸다.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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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파장한 난전이 많고, 장 보러 온 손님도 많지 않아서인지 오토바이를 탄 손님이 골목 안까지 들어와 마지막 남은 포도 한 박스를 싣고 떠났다. 떨이를 했으니 포도 장수 아저씨도 장사를 접는 줄로 알았다. 한데 팔 물건이 더 남았다며 창고에 들른다기에 묻고 싶은 게 줄줄이라 아저씨 뒤를 쫄래쫄래 따랐다. 

"장사 몇 년이나 하셨어요?"
"나유? 한 30년 넘게 했어유. 이 바닥에서 '리어카 아저씨' 모르면 간첩인데...."


말인즉슨 ○○상회라는 과일가게도 하고 있는데, 개조한 리어카를 끌고 오며 가며 장사를 오래 하니 시장 사람들이나 손님들이 자신을 '리어카 아저씨'로 부른다는 얘기다.

빠른 걸음을 못 따라가 헉헉 대가며, 궁금한 게 많아서 창고까지만 동행하겠노라, 양해를 구했다. 싫다고 해도 따라붙을 작정이었지만, 특별히 내치는 말이 없어 O.K. 사인으로 알고 뒤따르며 이것저것 여쭤봤다.

"여기(산성시장) 다닌 지가 오랜데 왜 한 번을 못 뵀을까요?"
"소매도 하지만, 주로 도매해서 그럴 거유."
"포도는 왜 그렇게 싸게 파세요?"
"산지 가서 사 오니까 싸쥬."
"코로나19로 장사에 차질은 없어 보이시네요?"

"그거 알아유? 장사가 안 된다는 사람은 욕심을 버려야 해유. 1000원짜리 사다가 만 원을 받으려니 장사가 안 돼쥬. 1100원 받아봐유. 장사가 왜 안 되겄나."

이날 공주오일장을 찾은 건 특별히 살 것이 있다거나 긴한 볼일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심란한 시국에 갈피 잃은 심사 좀 잡아보고자 들렀을 뿐인데.... 뭔 요행인지 리어카 아저씨네 손수레에 실렸던 포도만큼이나 실한 활력을 만땅으로 충전하고 왔다. 산성시장 명물 아저씨께 공짜 가르침까지 받았으니, 이만하면 안동구시장 찜닭집 아드님 부럽지 않게 '단짠 인생'의 진수를 맛본 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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