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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한 일상의 여러 가지 변화는 가족의 생활 모습도 바꾸어 놓았다. 온라인 수업과 재택근무가 많아지자 소리와 화면이 방해받지 않는 공간으로 각자 컴퓨터, 노트북, 패드와 휴대폰을 들고 들어가 버렸다.

분명 한 집에 있음에도 각자 시간표대로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을 따로 가졌고, 그나마 저녁이 돼서야 식구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감옥도 아닌데 각자 독방에 갇혀 생활하는 신세가 되었다. 아이들이 커지니 이러한 경향은 더 커졌다.

주말이 돼서야 서로 비는 시간을 맞출 수 있게 되었고, 그때가 되면 "오늘 뭐 하지? 몇 시까지 돼?"를 묻게 되었다.

8월 29일 일요일에 서로 공통분모의 시간이 세 시간가량 생겼다. 뭐 할까 하다가 마을 근처에 있는 산에 가기로 했다. 매일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운동 부족인지 오랜만에 오르는 산행에 얼마 못 가 다리가 풀리고, 무거워졌다. 그래도 즐거웠다.
 
도토리거위벌레가 자기째 떨어뜨린 졸참나무잎과 도토리
 도토리거위벌레가 자기째 떨어뜨린 졸참나무잎과 도토리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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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에는 도토리가 많이 떨어져 있었다. 얼마 전 내린 비에 그런 건지 아직 새파란 초록색 도토리들이 각두에서 떨어져 나와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참나무 잎들이 다발처럼 여러 개가 가지에 달린 채 후드득 떨어져 있었다. 졸참나무, 신갈나무, 상수리나무 잎과 열매들이었다.

사실 이건 해마다 이맘때면 벌어지는 도토리거위벌레 짓이다. 도토리거위벌레는 딱정벌레목 거위벌레과로 채 1cm도 안 되는 작은 곤충으로, 어두운 갈색의 딱딱한 몸을 가졌다. 새의 일종인 거위의 긴 목을 닮았다고 거위벌레라고 이름 지었는데, 다만 목이 긴 게 아니라 주둥이가 길다. 주둥이가 전체 몸길이의 반 가까이 되니 비율상 얼마나 긴지, 우리 몸으로 생각해보면 또 얼마나 웃긴지.

도토리와 관련이 깊어 도토리거위벌레란 이름이 붙었다. 도토리거위벌레는 도토리에 알을 낳는다. 긴 주둥이로 딱딱한 도토리열매 모자처럼 생긴 각두를 통과해 안에 싸여있는 도토리에 구멍을 뚫은 다음 산란관을 집어넣어 한두 개 알을 낳는다.

약 일주일 후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는 도토리 안을 파먹으며 자라 약 20일 정도 지나면 먹던 도토리를 뚫고 나와 땅속으로 들어가 흙집을 짓고 살며 겨울을 난다. 그리고는 이듬해 5월이 끝날 무렵 번데기가 되어 약 20일에서 한 달 정도 지내다가 어른벌레인 성충이 되어 다시 나무 위로 올라간다. 그리곤 짝을 만나 다시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한다.
 
도토리거위벌레 성충
 도토리거위벌레 성충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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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대부분을 도토리와 흙 속에서 지내기에 우리가 도토리거위벌레 애벌레를 자연에서 직접 보게 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다만 도토리거위벌레를 알 수 있는 건 여름 참나무가 많은 숲길에서 땅바닥에 툭툭 떨어진 참나무잎 뭉텅이를 보고서다.

참나무는 도토리가 달리는 떡갈, 신갈, 갈참, 졸참, 상수리, 굴참나무를 통칭해서 말하는 것이지 참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나무는 따로 없다. 때로는 그 잎 주변을 서성이는 어른벌레를 가끔 보기도 한다. 도토리거위벌레는 도토리에 알을 낳고는 도토리와 잎이 달린 가지를 주둥이로 잘라 땅으로 떨어뜨린다.

잘린 단면을 보면 우리가 가위나 칼로 자른 것처럼 아주 매끄럽다. 도구도 없이 오로지 주둥이로만 잘랐다는 것에 매우 놀랍다. 그런데 그 작은 도토리거위벌레가 1mm가 채 안 되는 가는 주둥이로 톱질하듯이 나뭇가지를 자르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이건 마치 우리가 지름이 30~40cm가 훌쩍 넘은 굵은 참나무 줄기를 쇠톱 같은 가는 톱으로 자르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필자라면 아마 온종일 땀을 뻘뻘 흘리며 잘라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도토리거위벌레는 20개가량 알을 낳기 위해서 구멍을 뚫고 가지자르기를 20번 가까이 반복한다. 왜 그러는 것일까?

그저 추측에 의한 가설일 수밖에 없지만, 도토리에 알을 낳는 건 그들이 선택한 진화의 과정 속 생존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도토리 속이 안전하고, 또 그 안에서 먹이까지 해결되니 애벌레에겐 부모가 남겨준 탁월한 선택이다.

그런데 나뭇가지는 왜 자르는 것일까? 만약 같은 도토리에 먼저 뚫린 구멍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또 알을 낳는다면, 애벌레들은 도토리 속에서 만나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가 알을 낳은 도토리라는 증표로 잘라서 떨어뜨린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 또한 애벌레 몸을 보면 꿈틀거릴 수 있어도 나비나 나방 애벌레처럼 기어 다니기에 적합하지 않은 운동성을 가졌다.
 
도토리각두에 뚫은 산란구멍
 도토리각두에 뚫은 산란구멍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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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만약 나뭇가지에 달린 도토리에서 나와 땅바닥까지 기어가려면 아주 험난한 여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더구나 통통하고 맛난 애벌레를 노리는 천적까지 있다면 목숨을 걸어야 할 판. 그러니 부모 입장에서 그 여정을 획기적이고 손쉽게 해결하는 방법은 아예 땅바닥으로 옮겨주는 것이다.

여기에 도토리만 똑 따서 떨어뜨릴 경우 나무에서 떨어지며 충격을 받을 것을 염려해 낙하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잎들이 달린 가지째 자른다는 가설까지. 이것을 사람들은 성충의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포장한다.

도토리거위벌레가 활동하는 시기는 이렇게 7월부터 9월까지 정상적인 도토리가 익어 떨어지기 전이다. 그러니 이때쯤 숲에서 떨어진 도토리를 주워 묵 해 먹겠다고 모아두면 곧 바글바글 애벌레들이 기어 나오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니 좀 더 기다리시라.

도토리거위벌레 몫으로 떨어지지 않고 남은 도토리가 잘 익어 가을에 제대로 떨어지면 그때 주워야 한다. 이때 명심해야 할 것은 절대로 욕심부리며 싹쓰리하지 않는 것이다. 도토리는 우리에게 맛있는 간식이지만 숲에 사는 수많은 동물들에는 절실한 식량이다. 그들만큼 절박하지 않은 우리가 양보하고 포기해야 함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글쓴이는 생태환경교육협동조합 숲과들 활동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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