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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로부터 글을 청탁받은 적이 있다. 저출생 대책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에세이로 풀어 달라는 요청이었다. 네 아이를 기르며 스스로는 상당히 만족스런 삶을 꾸리고 있지만 누구에게도 출산을 강권하지 못하는 나는, 흔쾌히 청탁에 응했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 청탁을 받고 쉽게 쓸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글 청탁을 받고 쉽게 쓸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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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탁 쪽지를 읽으며 쉽게 글의 방향이 정해진 것은 이전에 유사한 글을 작성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볍게 생각한 나는 그 글을 살짝 다듬고 출산율 저하에 대한 나의 생각을 슬쩍 올리면 될 거라 생각했다. 맞다. 나도 모르게 우려먹겠다는 생각을 했다. 창작은 환희 이전에 고통을 수반하니까... 라고 변명해보지만 면목 없다.

그런데 글은 어떤 국물 요리에나 사용할 수 있는 육수가 아니었다. 이 국에 넣으니 느끼하고 저 국에 넣으니 못 먹을 맛이 났다. 어떻게든 맞춰 나가려다 보니 문장 구조는 뒤틀리고 표현은 어색해졌다. 총체적 난국. 정신없는 난장판이 눈앞에 펼쳐진 것을 보고, 이게 아니다 싶었다. 날로 먹으려다 배탈이 날 게 뻔해 보였다.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떡하든 끼어 맞추려고 안간힘을 썼던 탓인지 부끄러웠던 탓인지, 날로 먹으려던 마음이 그 화끈거림에 조금씩 익기 시작했다. 그리고 화끈거림이 진정되었을 때, 잘 익은 마음을 다시 먹었다.

"처음부터 다시 쓰자!"

하얀 백지가 눈앞에 놓이니 뭔가 막막하면서도 허무했다. 그런데 오묘한 것이, 거기엔 신선함과 가벼움이 묻어 있어 한편으론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했다. 무슨 백지 한 장 보는데도 오만 감정이 다 쏟아진다. 이쯤 되니 감성은 이미 작가를 추월했고 따라 오지 못하는 글만 문제로 남는다. 비록 문제가 좀 크긴 하지만.
   
하얀 백지에 개요를 다시 적는다. 언제나처럼 개요에만 맞춰 횡설수설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다행히 백지 위에서 떠는 수다는 글로 내려앉는다. 잘 거둬 씻기고 줄 맞춰 놓으니 그나마 읽을 수 있는 글 한편이 되었다. 짜 맞추려고 했던 글에 덕지덕지 붙어 있던 군더더기 대신에 나름의 담백함이 묻어났다(오로지 내 생각).

고백하건대 글이 쓰기 싫어 잔머리를 굴린 것은 아니었다. 쪽지를 읽고 대략의 내용을 생각하며 답장을 적고 보니 글의 개략이 이전에 쓴 글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누군가에게 OK 확인을 받은 나름 검증받은 글이었기에, 안전빵(?)을 선택했던 것 같다. 평소 빵을 좋아했다지만 좀 지나쳤나 보다.

이렇게 경험하고 나니 알 것 같았다.

'역시 글은 백지에 써야 제 맛이구나.'

글을 채우는 것들
 
글쓰기는 원래 글 반 한숨 반이지요.
▲ 쉽지 않은 글쓰기 글쓰기는 원래 글 반 한숨 반이지요.
ⓒ 남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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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새롭고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글감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라 가끔씩 이런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하지만 모든 글에는 나름의 질서가 있고, 특히 이미 완성된 글은 그것 나름대로의 치밀함과 정교함이 있다. 다른 생각을 끼워 넣거나 뒤틀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나는 어설퍼 보이는 내 글에 다졌던 나름의 탄탄함을 너무 과소평가했다. 짜깁기의 실패가 약간의 뿌듯함이 된 순간이다.

어쩌다 보니 청탁받아 글을 쓰는 영광을 누리고 있지만 여전히 쉽지 않고 삐걱거리고 있다. 아마도 아직은 맞춰가는 중이리라. 계속해서 쓰다 보면, 그러니까 자꾸 갈고 닦다 보면 삐걱거리던 부분이 딱! 하고 맞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런 희망에 기대 삐걱대는 이 과정을 고집스럽게 이어가 볼 요량이다.

백지가 조금씩 채워진다. 듬성듬성 채워지는 글의 빈 공간엔 무엇이 있을까. 무엇을 채워나갈지 고민하며 방황하던 눈동자의 떨림과 문장마다 마주친 벽에 방향을 잃은 손가락의 멈칫거림, 그리고 답답함의 만 분의 일만 '흠' 하고 내뱉었던 코의 한숨이 있지 않을까.

적은 글이 있다고 해서 다음 글이 쉬워지지 않는 것처럼, 많은 것이 쌓인다고 다음이 쉽지는 않을 테다. 언제나 시작은 어렵고 과정은 힘들다. 하지만 그럼에도 백지를 마주하고 마는 나는 조금씩 용기를 얻어간다. 그것은 백지를 과감히 더럽힐 수 있는 용기이고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용기다.

그 용기로 이렇게 조심스럽게 백지를 더럽혔다. 자,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하는데... 수습이 안 된다. 하하. 역시, 아직 부족한가 보다. 아직은, 떨림과 멈칫거림과 '흠'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해야 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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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렀지만 넌 또 모르잖아"라는 생각으로 내일의 나에게 글을 남깁니다. 풍족하지 않아도 우아하게 살아가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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