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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EBS <당신의 문해력>이 방영된 이후로, 사회 전반에 '문해력'이 이슈가 되고 있다. 문해력에 대해 OECD는 '문장을 이해, 평가, 사용함으로써 사회 활동에 참여하고, 목표를 달성하며, 지식과 잠재력을 발전시키는 능력'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단순히 말해, 글을 제대로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다.

한국 학생들의 경우 대체로 세계적으로 읽기 능력 등이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최근에는 그 순위가 떨어지고 있을뿐더러, 학생들 간의 '문해력 격차'도 심화되고 있다고 한다. OECD에 따르면, 최근 한국 중학생의 15% 이상이 교과서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10여 년 전에만 하더라도 이 비율은 절반 정도였다.
 
또 하나 최근 문제가 되는 것으로 '디지털 문해력'이 있다. 일종의 스팸 메일, 피싱 사기를 구별하는 능력에 대한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의 경우 OECD에서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읽기 능력 자체는 준수하지만 글이 담긴 맥락에 대한 고도의 통찰력이나 이해능력은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문해력 자체가 뛰어냐냐, 부족하냐에 대한 논란은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글 자체에 담긴 의도를 보다 명확히 식별하고, 고차원적이거나 메타적인 맥락을 이해하는 종합적인 능력 자체는 부족해지고 있다는 건 사실로 봐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 단순히 '독서'가 부족해서라는 의견이 일반적이지만, 한국 온라인 세계에 폭넓게 퍼진 이분법적 대립 구조 자체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어 보인다. 청소년의 대부분이 이용하는 유튜브(youtube)만 하더라도, 유튜버들 간의 저격 영상 등이 매우 폭넓게 퍼져 있다.

이러한 저격 영상들이 하는 일은 대개 아군과 적군을 나누어, 상대편을 일반화하고, 프레임화시키면서, 악마로 규정하는 작업이다. 언뜻 보면, 통찰력을 발휘하여 공격할 대상의 의도를 파악하는 일처럼 보이지만, 이런 일의 핵심은 오히려 상대방의 의도를 '곡해'하는 데 있다. 어떻게든 공격할 만한 점들을 찾아내서 왜곡하고, 상대의 의도를 저격하는 이가 원하는 대로 조작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런 '지적 활동'의 핵심은 상대방의 의도를 가능한 한 정확하게 이해하는 게 아니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그의 맥락을 풍성하게 상상하면서, 그가 하는 말의 다차원적인 맥락을 고려하는 일이 아닌 것이다. 그보다는 저격하는 자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 의도하는 것, 원하는 것을 반복재생하는 나르시시즘적 행위에 가깝다.

있는 것은 오로지 '나의 의도' 뿐이며, '상대의 진정한 의도'는 이해할 필요가 없는 것이 된다. 따라서 아무리 온라인에서 다양한 영상들을 보고, 커뮤니티에서 학습하고, 여러 텍스트를 접하더라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보다는 공격할 대상으로 일반화, 규정화, 프레임화 하는 일만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문해력의 핵심은 내가 모르는 것을 새로이 받아들이고 상상하며 이해하는 능력에 있다. 그러나 타인을 규정화하는 문화에만 익숙해지면, 문해력의 핵심이 사실상 간과되는 결과가 일어나는 것이다. 실제로 이는 한국 사회의 각종 집단 갈등, 혐오, 차별에도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문해력 또는 이해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타인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이 없다는 뜻이다. 나아가 뇌가 그럴 '용기'를 학습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보다는 나르시시즘적으로 계속 자기 이해, 자기 입장, 자기에게 익숙한 방식에만 길들여져서 그에 갇혀버리는 폐쇄성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실 문해력에 관하여 거의 거론되지 않지만, 핵심적인 문제 중 하나는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콘텐츠의 범람이 있을 것이다. 인간의 이해력이라는 것이 가장 필요한 지점도 사실은 이분법 가운데 제3지대를 발견하는 데 있다. 적과 아군의 구별은 단세포생물도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고등동물일수록 이해에 기반을 둔 타협, 화해, 제3의 길로 나아갈 여지가 늘어난다.
 
문해력이란, 나와 타자가 속한 맥락을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바로 이런 능력 부족이 문제라면, 단순한 읽고 쓰기의 중요성을 넘어서서, 한국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문화'의 단순화와 극단화, 이분법적 성향을 먼저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아이들은 다채로운 입장과 맥락을 이해하기 이전에, 각종 자극적인 콘텐츠로부터 누군가를 규정짓고, 공격하고, 저격하는 일에 먼저 길들여지고 있다. 바로 그런 문화가 총체적인 '이해력'을 갉아먹으면서 그 연장선상에 있는 '문해력'의 위기 또한 불러오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정지우 문화평론가, 변호사(<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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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겸 변호사. <청춘인문학>,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너는 나의 시절이다> 등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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