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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이 '2022 개정 국가교육과정에 노동교육 반영'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지난 23일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이 "2022 개정 국가교육과정에 노동교육 반영"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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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은 일을 하고 있다. 용돈이 부족해서 하든, 부모에게 손 벌릴 처지가 못되어 자신이 쓸 돈을 벌어야 하든, 본인이 가정 경제 중 일부를 담당해야 하든, 또는 무엇인가 사고 싶은 것이 있어서든, 청소년은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비율이 15.9%나 된다. 2020 청소년 백서의 통계처럼 24세까지 청소년의 범위를 확장하면 경제활동 참가율은 2019년 기준으로 48.9%까지 높아진다.

노동현장에서 청소년들이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가를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회가 얼마나 성숙한지 알기 위해서는 그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보면 된다. 노동의 영역도 마찬가지이다. 노동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 중 하나인 청소년의 노동 실태를 살펴보면 사회에서 노동자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2018년 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한 '서울학생 노동인권 실태조사'에 의하면, 아르바이트 도중 노동인권 침해를 경험했다는 비율이 47.8%로 나타났다. 거의 2명 중 1명은 노동인권 침해를 당했다는 것이다.

노동인권 침해의 내용은 다양하다. 임금을 제때 못 받거나 아예 받지 못한 경우가 15.1%, 최저임금 이하로 받은 경우가 12.4%, 초과근무수당을 못 받은 경우가 16.1%, 정해진 일 이외의 다른 일을 한 경우가 21.2%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사장이나 상사로부터 폭언이나 폭행을 당한 경우가 17.9%, 심지어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경우도 6.8%로 나타났다.

일을 시작할 때 작성해야 하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비율이 37.1%였으며,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더니, '몰라서 요구하지 않았다'가 50.4%로 가장 높았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고용주에게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소년도 노동자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이가 없었을 수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인권을 알려주거나 배울 수 있는 기회는 극히 적다.

노동현장에서 권리를 침해당하면 청소년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대부분은 그냥 참고 계속 일을 하거나(35.3%), 그냥 일을 그만둔다(26.4%). 노동부나 경찰에 신고를 하거나(5.1%), 지인의 도움을 받는 경우(10.5%)는 많지 않다.

청소년들은 노동 현장에서 자신들이 어떤 권리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들어본 적도 없고, 또한 권리를 침해당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들어본 바가 없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청소년 시절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성인으로까지 연장되고 확장된다.

지난 5월 평택항에서 이선호군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다. 이군의 아버지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는데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그 회사'에서 8년간 일용직 노동자로 일했습니다. 전 이런 일용직이어서 당연히 이 일(일용직)을 해야만 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노동법에는 이렇게 일용직을 8년간 시키면 안 된다고 써있었습니다."

노동의 권리와 노동자의 목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

근로기준법은 전태일 시대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전태일 시대의 근로기준법은 한문 투성이라 읽기가 어려웠을 수도 있지만, 지금의 근로기준법은 스마트폰에서 언제든 확인해 볼 수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무리 훌륭한 근로기준법이라 하더라도 '교육이 없는 근로기준법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권리의 침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목숨으로까지 이어진다. 특성화고 학생들이 3학년에 실시하는 현장실습은 그동안 학생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죽음의 현장실습이었다. 제주의 음료공장에서, 통신사의 콜센터에서, 구의역에서, 외식업체에서, 자동차 공장 등에서 기계에, 과로에, 직장에서의 괴롭힘 등으로 목숨을 잃어야 했다. 현장실습에서의 사고와 사망은 통계치 조차 없다. 언론에 기사화된 것만 알 수 있을 뿐이고, 각종 사고는 알려지지도 않는다.

노동현장에서 가장 약한 계층 중에 하나인 청소년들의 목숨이 이럴진대 성인들의 목숨은 오죽할까?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2020년 산업재해 사망자는 2062명이다. 하루 5.6명이 출근을 했다가 퇴근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재해자는 1년에 10만 명이 넘는다. 하루에 300명 가까이가 직장에서 다치거나 일로 인해 병을 얻고 있다. 이런 수치는 그나마도 산업재해로 처리하거나 인정받은 경우이다. 산업재해로 처리하지 않은 경우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일을 하다 위험하다고 인지하면 요구해야 한다. 인력을 보강해 달라거나 작업을 중지해야 한다고. 하지만 현장에서 잘 안 지켜진다. 청소년들이 노동현장에서 권리를 침해당하면 그냥 참고 계속 일을 하거나, 그냥 일을 그만둔다고 했는데, 성인들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2014년 출간된 <노동자 쓰러지다>는 산업재해를 막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시설과 장비가 아니라, 인간이 일하다 죽는 것을 아파하는 감수성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고 했다. 노동현장에서 일어나는 각종 권리의 침해와 산업재해는 노동에 대한 감수성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신분과 상관없이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가지는 것처럼, 무슨 일을 하든 노동하는 사람들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인권을 가지고 태어나듯 노동에 대한 권리 역시 가지고 태어난다.

그리고 이 권리와 감수성은 소중히 다루는 것임을 어려서부터 배워야 한다. 노동의 권리와 노동자의 목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임을 학교에서부터 배워야 한다.

태그:#노동교육, #노동인권교육, #2022 개정 교육과정, #교육과정, #노동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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