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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글쓰기 그룹 '대체왜하니?'는 초4에서 중3까지 10대 사춘기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엄마 시민기자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편집자말]
엄마가 되고 나서 좋아하게 된 단어가 있다. 바로 '창의'라는 단어다. 어떤 아이로 키우고 싶냐는 질문에 나는 늘 '창의적인 아이'라고 답했다. 이런 내 마음을 어떻게 눈치챘는지 학원은 죄다 창의라는 이름을 붙이고 팔랑귀인 나를 꼬드겼다. 미술도 그냥 미술이 아닌 창의 미술, 수학도 창의 수학, 독서도 창의 독서.

나는 창의라는 말이 붙은 학원에 보내는 것만으로도 나의 아이가 대단한 창의적 사고를 할 것 같은 기대감에 사로잡혔다. 결과론적으로 그 학원을 보낸 뒤 내 아이가 창의적으로 공부를 열심히 한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반대로 우리 아이도 평범한 아이들처럼 공부와 멀어지는 모습을 발견할 뿐이었다(눈물이 앞을 가린다).

아이의 창의성은 의외인 곳에서 발견됐다. 바로 음식 분야에서다. 음식을 만들 때도 먹을 때도 아이들은 전혀 상상치 못한 창의력을 발휘해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 하곤 했다. 창의 요리라는 과목은 수강한 적도 없는데 말이다.
 
쌈장과 계란말이의 맛고리를 찾아낸 아이들... 설마 나만 이 맛을 모르는건가요?
▲ 계란말이엔 쌈장이지~ 신박한 음식조합  쌈장과 계란말이의 맛고리를 찾아낸 아이들... 설마 나만 이 맛을 모르는건가요?
ⓒ 조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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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말이엔 케찹이 아니라고?

내 아이의 창의적인 음식조합을 예로 들어보겠다. 먼저, 달걀말이를 쌈장에 찍어 먹는다. 나로선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조합이다. 한 번은 쌈장이 없어서 케첩을 주었더니 싫다며 고스란히 남긴 적도 있다.

또 짜파게티엔 초장을 섞어 먹는다. 처음엔 이 괴상한 조합에 식겁했는데 웬걸? 나도 한 입 먹어보니 느끼한 맛을 매콤한 초장이 잡아줘서 제법 괜찮은 맛이 났다(그래도 난 짜파게티에 김치 파다). 딸 아이는 비빔면을 먹을 때 삶은 달걀의 노른자는 빼고 오목한 그 곳에 면을 잘라 담아먹는 기발함을 선보이기도 했다.  

과자를 먹을 때도 일반적이지 않은 조합과 변형을 일삼는다. 마이쭈를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그 위에 치즈가루를 뿌려서 먹는다든지, 꼬깔콘의 움푹 파인 곳에 생크림을 넣고 M&M 초콜릿을 넣어 먹는다는 식으로 말이다.

나는 음식에 고정관념이 강한 사람이다. 웬만해선 기존 요리법을 잘 변형시키지 않는다. 된장찌개에 토마토를 넣으면 맛있다는 말을 들어도 시도해 볼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다. 감자튀김엔 케첩이라는 공식을 깨고 싶지도 않고 애써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다양한 음식들을 이리저리 조합해 보고, 맛을 상상하고, 신기한 조리법을 따라해 보며 그것을 온전히 즐긴다.

음식을 대하는 자세는 세상을 대하는 자세와 닮아 있다. 음식 모험심이 강한 아이들은 편견이 없고, 처음 만난 이들과도 금세 친해지며 끊임없이 호기심을 품는다. 매사에 낯을 가리고 선뜻 용기 내지 못하는 나의 모습은 음식을 대할 때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이들은 더욱더 새로운 맛을 갈구하며 음식에 대해 찾아보고 연구를 한다. 요즘은 꿀젤리와 불어먹는 사탕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중이다. 유튜브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모양인데 처음 들었을 때 무슨 말인지 몰라 아이에게 재차 확인하기도 했다. "꿀 뭐? 사탕인데 어떻게 불어 먹는다는 거야? 그걸 집에서 만든다고?" 내가 한참을 이해하지 못하자 아이가 유튜브 영상을 보여주며 확인시켜주었다.

직접 보니 놀라우리만큼 신박한 음식이었다. 꿀젤리는 꿀을 페트병에 얼려서 젤리처럼 쭉 짜서 먹는 것이었고 불어먹는 사탕은 설탕과 물엿, 물을 일정 비율로 녹인 뒤 빨대로 찍어 후우~ 하고 불어서 풍선처럼 만들어 먹는 것이었다. 이것을 개발한 사람과 그걸 따라해 보겠다고 하는 내 아이 모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백종원의 초간단 레시피도 따라해 보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생기지 않는데 말이다. 
 
꿀젤리 먹방 유튜브 컨텐츠.
 꿀젤리 먹방 유튜브 컨텐츠.
ⓒ 홍윤화 김민기 꽁냥꽁냥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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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나만의 레시피'를 만들어 나가길 

아이는 안 해 보곤 못 배긴다. 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함께 따라해 보았다. 꿀젤리는 꿀을 페트병에 넣어 얼리기만 하면 되니 어려울 게 없었지만 불어먹는 사탕은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끈적한 농도와 '후우' 부는 입김의 강도가 중요한 것 같은데 그 지점을 찾기가 어려웠다. 나는 포기하려 했지만 아이는 쉽게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러다 갑자기 번뜩 뭔가 떠올랐다는 듯, 마이쭈를 녹이자고 했다. 나는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하자는 대로 했다. 아이의 예상이 맞았다. 녹인 마이쭈를 빨대로 찍어 후우 하고 불자 부풀 듯 말 듯 하더니 몇 번의 실패 끝에 성공했다 나중엔 내가 더 꼬맹이 같은 마음으로 "나도 한 번만!"을 외치며 다가올 순서를 기다렸다.

만드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아이는 완성된 꿀젤리를 얌전히 먹는 것이 아니라 ASMR처럼 '오도독오도독' 과장되게 소리를 내면서 먹었다. 불어먹는 사탕, 아니 불어먹는 마이쭈는 부풀어 오른 얇은 막을 손으로 톡톡 건드려 보며 질감을 느껴보기도 했다. 맛은 어떻냐고? 다들 짐작하는 대로 많이 달다. 혹시 따라한다면 아이가 너무 많이 먹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먹는 재미를 넘어 직접 만들어 보고 응용해 보고 느껴 보는 아이들의 신박한 음식 세계... 어쩜 저렇게 거리낌이 없을까 싶을 만큼 아이는 과감하고 저돌적으로 맛을 음미하고 창조해 나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음식 가지고 장난하는 거 아니다' 하며 근엄한 표정을 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재미로 시작할지언정 다양한 재료의 변주를 통해 맛의 세계를 넓혀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 시도가 없다면 눈물 찔끔 나게 맛있는 로제떡볶이, 톳김밥, 치즈돈가스 같은 메뉴도 만날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나는 내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남들이 정해놓은 레시피가 아니라 자신만의 레시피를 열심히 만들어 나가라고. 편견 없이 세상을 바라보고 고정관념 없이 재료를 섞으라고, 좋아 보이는 것들을 주저 없이 경험해 보라고. 누군가 어쭙잖은 참견을 해도 흔들리지 말고 "난 달걀말이에 쌈장 찍어먹는 삶이 좋아"라고 당당히 말하라고. 그렇게 창의적인 인생 레시피를 만들어가라고 말이다.

초4에서 중3까지 10대 사춘기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엄마 시민기자들의 콘텐츠
태그:#음식레시피 , #창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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