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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임 학교장의 결단으로 교장실이 공용 공간으로 바뀌면서 '만남의 방'이 되었다.
 전임 학교장의 결단으로 교장실이 공용 공간으로 바뀌면서 "만남의 방"이 되었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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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나 학생, 심지어 학부모에게 학교 자랑을 해보라면 십중팔구는 맨 먼저 명문대 진학 실적을 들이대곤 한다. 그다음은 운동장이 넓다거나 도서관이 현대식이라는 등 학교 시설 자랑이 나올 테다. 요즘 같은 때엔 점심 급식이 맛있다는 걸 손꼽기도 한다.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생뚱맞게 여길진 모르지만, 주저 없이 교장실은 좁고 교실이 넓다는 걸 뽐낼 것이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교실은 여느 학교에 견줘 조금 넓은데, 천정이 높아선지 더욱 넓게 느껴진다. 교실에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너끈히 가능할 정도다.

강의 도중 마스크를 벗을 수 없는 요즘엔 교사가 목소리를 더 크게 내야 한다는 애로점이 있지만 답답한 느낌이 없어 좋다. 다른 학교에 참관 수업을 갈 때면 '콩나물 교실'이란 이런 거구나 싶다. 30여 년 전 학급당 학생 수가 60명도 넘었을 당시에 세워진 건물인 덕분이다. 

지금은 한 학급당 25명 안팎이다. 두 배도 넘게 학생 수가 줄었으니, 교실이 갑절 넘게 넓어진 셈이다. 책상의 간격을 1m 이상 띄어 놓아도 충분할 만큼 넓다. 학교를 방문한 학부모들과 다른 학교 교사들이 가장 놀라워하는 것도, 바로 널찍한 교실 환경이다. 

그런데 우리 학교의 진짜 매력은 넓은 교실보다 좁고 구석진 교장실에 있다. 여느 학교의 경우, 교장실은 학교의 한가운데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한다. 건물의 현관을 들어서면, 바로 눈에 띄는 곳에 자리해 있기 마련이다. 위치와 공간으로만 보면, 교장실은 학교의 주인이다. 

몇 해 전까지 우리 학교도 그랬다. 손님이 방문할 때를 빼곤 학교장 혼자 사용하는 공간인데도 교실 하나 크기였다. 침대만 한 크기의 책상에다 거의 사용하지 않는 고급 소파가 도열하듯 놓여 있었다. 각종 상패와 사진 등이 걸려 있는 벽면은 권위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그걸 당연하게 여긴 까닭에 교사와 학생 모두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었다. 지금껏 '다른 교장실'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누구든 건물의 중심엔 교장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대놓고 말하지 않을 뿐, 학교장이 실질적인 학교의 주인이라는 인식을 공유해온 결과다. 

지금 우리 학교의 교장실은 교무실 옆 6.6㎡(두 평) 남짓한 외진 공간에 자리하고 있다. 원래 컴퓨터 서버 장비가 있던 곳으로, 그때까진 창고처럼 사용했다. 옮겨오기 전의 넓은 교장실은 '만남의 방'으로 이름을 바꾸고 사랑방처럼 쓰인다. 특별한 주인이 없어, 모두가 주인인 공간이다. 

교장실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만남의 방' 내부 모습. 사진 오른쪽 싱크대 자리에 과거에는 교장 전용 책상이 있었다. 지금은 교사들의 모임이나 회의, 학부모 상담 장소로 애용되면서 교장실의 자취가 시나브로 사라졌다.
 "만남의 방" 내부 모습. 사진 오른쪽 싱크대 자리에 과거에는 교장 전용 책상이 있었다. 지금은 교사들의 모임이나 회의, 학부모 상담 장소로 애용되면서 교장실의 자취가 시나브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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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학교장이 내린 결단이다. 처음 그가 교장실을 공용 공간으로 사용하겠다고 밝혔을 때, 교사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어차피 '제2의 교장실'이나 학교장의 '별실'처럼 쓰일 것이라 여겨서다. 하지만 교사들의 모임이나 회의, 학부모 상담 장소로 애용되면서 교장실의 자취는 시나브로 사라졌다. 몇 해가 지난 지금 그곳은 이름 그대로 '만남의 방'이 됐다.

교장실은 좁고 추레해졌지만, 학교장의 권위는 되레 높아졌다. 교장실 하나가 바뀌었을 뿐인데 학교장과 교사 사이의 거리낌도 확연히 줄었다. 작년에 새로 부임한 학교장은 한술 더 떴다. 그는 아이들의 자치 공간인 학생회실이 교장실보다 접근성이 좋고 넓어야 한다는 신념까지 피력했다. 학생 자치 실현의 첫 단추라는 거다.

그의 확고한 교육철학은 이렇다. 교육 개혁의 시작도 끝도 학교 개혁이라고 명토박았다. 대학입시 제도의 개선은 학교 개혁을 위한 여러 수단 중 하나일 뿐 목표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학입시에 매몰된 교육 개혁은 필패일 뿐더러 뒤틀린 현실을 더욱 퇴보시킬 것이라 단언했다. 

그는 학교 개혁은 교육 주체인 교사와 학생, 학부모의 평등한 관계 형성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했다. 그 첫걸음이 바로 학교생활에 있어 아이들의 자율권을 보장해주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아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려면, 학교장부터 권위주의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는 민주주의를 학습하는 곳이 아닌,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곳임을 줄곧 강조한다. 교과서 속 내용을 교사가 몸소 보여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가슴'이 없고 '머리'만 큰 괴물이 된다는 거다. 어차피 미래는 아이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라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는 뜻이다. 

아직 '도미노 현상'이 눈에 띄진 않는다. '탈권위'를 선언한 학교장의 선한 영향력이 교감과 보직교사, 평교사까지 전해져 모두의 자발적 실천으로 옮겨질 때라야 학교 개혁이 시작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교단 위의 교사에게 '탈권위'의 다짐이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직업상 교사는 함께하는 것보다 지시하는 데에 익숙하고, 미성숙한 아이들을 지도하는 역할이라는 고정관념이 강하다. 실수를 했다 해도 웬만해선 아이들 앞에서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다. 무슨 일로든 그들에게 책잡히게 되면 교사의 권위가 실추된다고 여기는 것이다. 

'사제지간'이라는 말이 교사와 학생 간의 '인간적인' 만남을 방해하는 꼴이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서로 가르침과 배움을 주고받는 관계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라야 비로소 교육이 이뤄지게 된다. 교사가 신이 아닌 다음에야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란 있을 수 없다.

교장으로부터 시작된 교무실의 민주주의
 
 사진 오른쪽이 교장실이고 중앙에 열려 있는 문이 과거 교장실이었던 만남의 방이다. 교장실을 만남의 방에 내주고 귀퉁이 창고로 옮겨온 것이다.
 사진 오른쪽이 교장실이고 중앙에 열려 있는 문이 과거 교장실이었던 만남의 방이다. 교장실을 만남의 방에 내주고 귀퉁이 창고로 옮겨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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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조짐이 아예 없진 않다. 동료 교사들을 만나면, 다들 마음은 있지만 어색함에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이들을 학교 개혁을 함께 논의할 교육 주체로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거다. 교육자인 교사는 주체고, 피교육자인 학생은 객체라는 인식이 강고해서다.

당장 고3 아이들에게 선거권까지 주어졌지만, 학교 울타리 안에서는 여전히 '미성년자'일 뿐이다. 지금껏 그들 스스로 교육 주체로 인정받아 본 적이 없어 교사의 주장에 쉽사리 토를 달지 못한다. 교사의 손으로 작성되는 생활기록부에 대한 걱정 때문만은 아니다. 

아이들도 자기 방보다 좁은 교장실에 놀라워하는 눈치다. 또 학교장이 학생회실 리모델링에 적잖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는 것에 고마워한다. 학생회 임원들과 학교장이 정기적으로 만나 학교생활 전반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것도 연간 학사일정의 중요한 행사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도 그들의 행동거지는 무척 조심스럽다. 학교장과는 이물감 없이 편하게 만날 수 있다 해도, 막상 학급과 교과 담임 교사와는 그럴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거친 비유일 테지만, 군대에서 이등병에겐 사단장이나 연대장보다 한 공간에 사는 바로 위 선임병이 더 두려운 존재다.

관건은 교사마다 어깨에 짊어진 '권위'라는 부담을 덜어내는 일이다. 아이들을 제자이기 전에 한 명의 시민으로 대우하면 된다. 바야흐로 교사가 아이들 앞에서 어깨의 힘을 빼야 하는 시대다. 학교장으로부터 시작된 교무실의 민주주의는 자연스럽게 교실의 민주주의를 추동하게 될 것이다.

부디 학교장의 탈권위 행보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면 좋겠다. 예컨대 학교마다 학생회를 법제화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일부에서는 교권 침해를 우려하지만, 장담하건대 기우다. 교사가 지금과 같은 '권위'로 교단에 서기가 무척 데면데면한 세상이 오고 있다.

초임 시절 학교장이야말로 단위 학교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여겼다. 오로지 승진 점수를 따기 위해 아이들과의 교감을 일찌감치 포기한 이들이라고 치부해 일말의 존경심도 없었다. 물론 지금도 관료주의적 사고에 찌들어 교사 위에 군림하려는 학교장이 적지 않다.

어쨌든 이젠 학교장 핑계만 댈 수 없다. 아무리 도덕적이고 개혁적일지라도 학교장의 솔선수범만으로 학교를 변화시키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선한 영향력이 도미노처럼 전파되어야 한다. 교사가 '낡은 권위'를 내려놓으면, 아이들은 사랑으로 보답해줄 것이다. 교사에 대한 아이들의 사랑이야말로 진짜 권위다.

사족. 자칫 학교 자랑을 넘어 학교장에 대한 낯뜨거운 아부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과거 얼굴 붉히며 다툰 적도 있고 평교사로서 그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지만, 인정할 건 인정한다. 그의 일관된 탈권위 행보에 대해선 아이들과 함께 공감과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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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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