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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여의도 비행장에 환국한 임정요인들과 장준하.
▲ 해방 환국 해방 직후, 여의도 비행장에 환국한 임정요인들과 장준하.
ⓒ (출처:복음동지회 20주년 앨범 스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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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의 독립운동이 가난신고의 길이었지만 일제 패망으로 환국하는 길도 쉽지 않았다. 내무부장의 역할로서 중국 전구 사령관 웨드마이어 장군과 임정요인들의 조속한 환국을 교섭하였다. 미국 정부는 이에 쉽게 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부가 아닌 개인자격으로 귀국할 것을 종용하였다. 그동안 미국은 거듭된 요청에도 끝까지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았다. 임시정부가 대일선전포고를 하고, 미군장교가 한미 두 나라 청년들의 OSS부대 책임을 맡아 국내진공작전을 준비해 왔음에도 정부 인정을 거부한 것이다.

임정 요인들이 충칭에서 귀국을 기다리던 11월 초 임시의정원과 정부각료 연석회의가 열렸다. 신익희는 내무부장의 신분으로 임정이 귀국 후 국내에서 수행해야 할 당면과제와 자신의 신념을 밝혔다. 그의 겸손함과 정치철학의 경륜이 담긴 내용이다. 
임시정부 환국 기념 촬영 사진.(1945년 11월 3일) 맨 앞줄 백범 김구 왼쪽이 김규식이다.
 임시정부 환국 기념 촬영 사진.(1945년 11월 3일) 맨 앞줄 백범 김구 왼쪽이 김규식이다.
ⓒ 백범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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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을사조약을 맺은 지 어느 새 41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 또한 경술국치를 당한지도 36년이나 되었고, 기미년 독립만세의 함성이 조국의 산하에 울려 퍼진 이후 벌써 27년이 지났습니다. 여기에 모인 우리는 그 동안 조국을 등지고 망명하여 국민과 유리된 채, 국가의 광복과 민족의 자유를 위해 일제히 항거, 투쟁하다가 많은 동지들을 잃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아무런 건수(建樹)나 업적도 없이 목숨만 남아 몽매에도 그리던 조국의 품에 안기게 되었습니다. 나 자신만 해도 노모(老母)를 남경에서, 사중(舍仲)은 중경에서, 또한 질아(姪兒) 역시 중경에서 여의고, 나 혼자만 남아서 환국하게 되니, 만감이 교차하여 가슴이 아프고 목이 메어 말문이 막힐 따름입니다. 

우리가 환국하게 되면 우리의 동포들은 오랫동안 이역만리 타국에서 유랑걸식하며 왜적에 저항하느라 고생했다고 우리를 반갑게 환영해 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제의 학정 밑에서 우리보다 더한 굴욕과 천대를 받아가며 살아 온 우리의 이 고마운 동포들의 고충을 진심으로 위로해 주어야지, 마음 한 구석에서일망정 추호의 우월감이라도 갖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 임시정부에 관계된 사람만은 천행으로 목숨을 부지한 채 고국땅을 밟게 되나, 이국만리 황량한 땅에서 애절하게 고국을 그리워하다가 차마 눈을 감지 못하고 숨져간 순국영령이 있어 그분들에게 미안한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 이에 우리는 환국 즉시 그분들의 영령을 위로하고 추도하는 거국적이며, 거족적인 행사를 주선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일반 동포의 우리에 대한 태도와 선열에 대한 향념이 새로워질 것이며, 우리만이 살아서 환국함에 있어서 우리들의 선열에 대한 미안함과 죄송함이 만의 하나라도 해소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동포들과 같이 하루를 섧게 울어 하늘에 사무친 한(恨)을 품고 쓰러진 선열의 영령을 위로ㆍ위무해야 함은 동지로서의 도리요, 의무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랫동안 국내와 유리되어 있어서 국내 사정에 매우 소매(素昧)합니다. 우리 임시정부는 지금까지 영토도 없고, 국민도 없이 유한(有限)한 수효의 독립운동가들만이 굴러다니며 독립운동한답시고, 항일투쟁한답시고, 떠들어 제낀 것 뿐인 망명집단에 불과합니다. 우리 동료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임시정부에 대하여 무엇을 요구하는지조차 전혀 모르는 설정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환국하면, 되도록은 사람들과 접하여 그들의 의견을 경청해야 하겠습니다. 중앙에서 정치한다는 사람으로부터 하향(遐鄕)의 농부와 공장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가정에서 밥 짓고 빨래하는 가정주부에 이르기까지 의견을 골고루 청취, 종합하여, 그 터전 위에 우리 임시정부의 방침을 작성 해석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하자면, 우선 그들 속에 파고들어 조직 활동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국제적인 제약 때문에 개인자격으로 환국하게 되나 우리 동포들은 우리를 자기네들의 유일한 정부로 받아 주겠다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임시정부가 미국이나 소련의 군정 밑에서 그대로 정부 행세를 할 수도 없으려니와 설사 그대로 행세해 봐도 무근지목(無根之木)이나 사상누각 밖에 될 수 없어, 한 번의 광풍이나 한 번의 홍수에 쓰러지고, 넘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무엇보다 서둘러야 할 것이 조직입니다. 바로 기초와 기반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 이름을 무엇이라 하던지, 정치공작대(政治工作隊)라 해도 좋고, 임시정부 기구 밑에 두어 일인에게 빌붙어 부역하지 않은 덕망있고 유능한 인사들을 모두 망라하여 조직을 펴야 할 것입니다. 이 조직을 펴는 것과 동시에 국민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요구하는가를 청취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혁명운동자요, 독립운동가일 뿐이어서 행정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나 다름 없습니다. 무식합니다. 우리들은 그야말로 활 나간다, 총 나간다 하는 식으로 떠들어 제끼는 처지에 불과합니다. 나 신익희 자신도 내무 행정의 책임자라고는 하나, 시골 면장을 해라해도 능력있게 해 나갈 자신 없습니다. 

그러니 비록 일제 밑에서 일신의 부귀나 영달, 또는 가족의 부양ㆍ보호를 위하여 왜적의 행정 기구에서 관리 생활을 하고, 일인에게 좀 잘 보이려 했을지언정 왜(倭)를 제 애비나 어미처럼 여겨 국가와 민족 앞에 크게 득죄한 자가 아니면, 모두 찾아서 개과천선의 길을 열어주며, 이 사람들로 하여금 건국 후 일선의 실제 행정을 담당케 하는 법을 강구해 내야 할 줄로 압니다. 

즉, 그 명칭을 행정연구반쯤으로 하는 기구를 만들어 시정(施政)의 자료 수집과 연구를 담당케 하여 훗날을 대비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음, 우리가 공을 세워 독립을 선물을 한아름 안고 금의환향하는 것이 아닌 것은 나나 여러분이나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는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였으나, 앞으로는 국내에서 우리 동포들과 함께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과거 수십년동안 국토도 국민도 없이 떠돌아 다닐 때에는 사소한 의견 차이만 있어도 서로 갈려서 파야했습니다. 

비록 우리 임시정부 기구 안에는 여러 당이 존속하고 있지만, 국내에 들어가서는 이 당파를 공개하지 말고, 다만 임시정부 단위로 행동해야 마땅할 줄 압니다.

우리가 환국해서 이 당 보따리를 펼쳐 놓으면, 이조 5백년 당파싸움에 염오(厭惡)와 증오를 느껴왔던 동포들은 더욱 실망케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모든 기대와 촉망을 한꺼번에 잃게 될 테니 절대 이 당 보따리를 풀지 말고, 임시정부를 주축으로 한 데 뭉쳐 미ㆍ소 양 군정과 대결하여, 투쟁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단계와 새로운 방법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함으로써 비로소 우리 민족의 전도에 광명이 빛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해외 독립운동자 그룹은 자멸을 초래할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자멸은 두렵지 않으나, 우리 전체의 앞길은 암담해지고, 우리 동포들의 낙망(落望)은 감당할 도리가 없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 모신 분들은 끝까지 제가 언급한 세 가지 문제들을 기필코 실천하겠다고 맹세하시기 바랍니다. (주석 12)


주석
12> 앞의 책, 410~412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해공 신익희 평전] 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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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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