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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단장한 충칭임시정부
▲ 새롭게 단장한 충칭임시정부 새롭게 단장한 충칭임시정부
ⓒ 조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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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내각에서 내무부장의 역할은 무겁고 위험이 따랐다.

충칭 상공에는 적기가 나타나 폭격이 심해지고, 패망 막바지에 이른 일제의 첩자ㆍ밀정으로부터 임시정부 요인들과 가족, 청사를 보호하는 책임이 막중하였다. 일제의 폭격으로 조카 양균(量勻)이 사망했다. 

나는 중국과 또는 우리 한교(韓僑)를 위하여 적 일본군에게 점령이 예상될 때에는 적전공작(敵前工作)을 하고, 또 적이 철퇴한 후에는 적후공작을 하느라고 거의 영일(寧日)이 없을 만큼 중국 각지를 편답(遍踏)하였고, 그 때에 있던 우리 교포에 대해서는 중국인과 똑같이 식량 배급을 받게하여 우리 내무부에서 그 말단 사무까지를 관리하는 형편이었다.(신익희, 「나의 중경시대」)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하였다. 26세에 망명하여 52세 중년의 시절에 맞은 해방이었다. 하지만 내무부장의 역할은 아직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해공은 내무부장 자격으로 장강 연안에 살고 있는 교포들을 위문했으며, 그때까지도 무장을 해제하지 않은 일본군 진전에서 선무 공작을 펴기도 했다. 그리고 분산된 동포들을 집결시키기 위해 중경을 떠나 상해로 향했다. 
 
상해에 도착한 그는 미국 대사관측과 교섭, 임정 요인의 귀국 알선을 보장받고, 중국 대사관측과는 동포의 귀국 편의를 약속받아 다시 중경으로 돌아왔다. 이같이 교포의 위문, 재외 세력의 집결, 임정 요인 귀국 알선, 동포들의 귀국 편의 제공 등 어려운 일을 맡던 해공은 눈코 뜰새없이 분망한 날을 보내고 있었다. (주석 9)

임시정부 의정원은 9월 3일 당면정책 14개항을 의결하여 환국 후의 활동 대책을 결정했다. 내용 중에는 ⑨항에서 국내의 과도정권이 수립되기 전에는 국내 일체 질서와 대외 일체 관계를 본 정부가 부담 유지할 것. ⑩항은 동포의 안전 및 귀국과 국내외 거주하는 동포의 구제를 신속히 처리할 것. ⑫항은 적산(敵産)을 몰수하고 한교(韓僑)를 처리하되 맹군(盟軍)과 협상 진행할 것 등은 모두 내무부장인 자신이 주도해야 할 과제였다.
 
해방을 맞이하여 임시정부 요인들이 환호와 기쁨에 넘쳐 있을 때 그는 향후 수행해야할 과제를 점검하고 대책을 세우느라 침식을 거를 정도였다. 
 
임시정부가 마지막으로 항일전을 전개했던 충칭은 기후가 건조하고 안개끼는 날이 많아 한국 망명인사들과 그 가족들이 견디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게다가 먹는 음식이 부실하여 많은 환자가 생겼다.
 
신익희의 가족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들을 찾아 중국으로 왔던 어머니는 난징에서 돌아가시고 재희 형님과 어린 외손녀가 충칭에서 사망하였다. 그리고 망명객의 뒷바라지와 가족을 보살피던 부인은 크게 건강이 쇄약해진 상태였다. 딸 정완이가 성장하여 23세 되던 해에 독립운동가 청년 김재호(金在浩)와 혼인하였다. 신랑은 광복군 소령급이고 딸은 대위급의 부부 독립군이다. 이들에게서 태어난 큰 딸이 사망하고 둘째 딸을 두었다.
 
1941년 1월 일본군을 탈출하여 장정 7천리를 걸어 임시정부 청사에 도착했던 장준하ㆍ윤경빈ㆍ김우전 등을 가장 먼저 맞은 사람이 신익희였다. 이들의 환영행사에서 그는 김구 주석에 앞서 환영사를 했다.

여러분의 장거는 우리 민족이 오랜 일본의 학정 아래서도 이에 굴하지 않고 독립을 쟁취할 수 있다는 굳건한 신념과 용기를 실증해준 것입니다. 머지않아 일제가 패망하고 우리가 독립을 쟁취할 수 있다는 산 증거입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이 신선한 독립전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각 분야의 훈련을 마친 뒤 조국광복의 역군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석 10)

신익희는 국내진공작전을 수행하지 못한 채 일제 패망을 듣게 된 광복군 청년들을 격려하면서 「광복군 행진곡」을 함께 불렀다. 스스로를 달래고 다지면서. 

3천만 대중 부르는 소리에 
젊은 가슴 붉은 피는 펄펄 뛰고 
반만 년 역사 씩씩한 정기에 광복군의 깃발 높이 휘날린다
칼 잡고 일어서니 원수 처들고 
피 뿌려 물들인 곳 영생탑(永生塔) 세워지네 
광복군의 정신 쇠같이 굳세고
광복군의 사명 무겁고 크도다 
굳게 뭉쳐 원수 때려 부수라 
한 맘 한 뜻 용감히 앞서 나가세
독립 독립 조국 광복 
민주 국가 세우자. (주석 11)


주석
9> 유치송, 앞의 책, 407쪽.
10> 앞의 책, 404쪽. 
11> 이중연, 『신대한국 백만 용사야』, 217쪽, 혜안, 1998.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해공 신익희 평전] 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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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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