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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교육청이 개교한 지 2년도 안 된 혁신학교에 대해 불공정하고 권위적인 감사를 진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더구나 감사과정에서 도 교육청 담당자가 교사에게 "사상범", "확신범"이라는 막말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사상범'을 "현존 사회 체제에 반대하는 사상을 가지고 개혁을 꾀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 또는 그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기존 사회 질서를 전복하려는 범죄자라는 말이다.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안성조 교수는 2017년 <법과 정책>에 실린 '확신범에 대한 대책 – 예비적 고찰: 확신범에게 적법행위의 기대가능성이 있는가?'라는 논문에서 '확신범'에 대한 일반적 정의를 언급했다. 형사법 전문가인 안 교수는 확신범을 "정치 종교 윤리적 확신에 의해 … 현행법을 위반하는 자"라고 규정했다. 처벌의 정당성에 대한 논란과 별개로 실정법을 명백히 위반해 형사 처벌을 받는 범죄자라는 의미다.

공무원인 교사에게 반체제 인사나 범죄자라는 낙인은 치명적이다.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고 감사 담당자가 막말을 내뱉은 것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서나 있을법한 일이다. 진보 교육감이 있는 지역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충격적인 사건이다.

발단은 교사들과 행정실 직원 사이의 업무 갈등

A초등학교 교사들은 지난 7월 3주에 걸쳐 감사관 7명이 투입된 대대적인 감사를 받았다. 발단은 교사들과 행정실 직원 사이의 업무 갈등이었다. 강원도교육청이 추진하는 '학교업무정상화'에 대한 이해 차이가 주된 원인이었다.

교사들과 행정실 직원들 사이의 업무 갈등은 매우 오래됐다. 강원도교육청의 '학교업무정상화' 정책은 이 오래된 갈등을 교육이라는 가치를 중심에 두고 풀어가려는 시도였다. '교사들이 수업과 학생 생활교육에만 집중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 정책의 핵심 목표다. 민병희 교육감도 여러 차례 이 부분을 강조했다. 도 교육청 '학교업무정상화 추진 계획'에도 분명히 드러나 있다.
 
"학교업무정상화는 학교업무를 학생중심 교육과정의 운영과 지원으로 구분하고 재구조화하여 교원은 본연의 업무인 교육활동에, 교직원은 교육활동 지원 업무에 전념하는 학교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강원도교육청, '2021 학교업무정상화 추진 계획(안)', 3쪽, 강원도교육청 홈페이지)
 
감사를 받은 B교사는 감사과정이 매우 불공정하고 편파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충분하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으며, 감사 담당자가 판단을 내린 결론을 자주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B교사는 "감사관들이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 밝혔다. 다음은 감사 담당자들이 감사과정에서 한 말을 수집한 것이라며 B교사가 이야기한 내용이다.

"'예', '아니요'로 대답하세요."
"묻는 말에만 대답하세요."
"왜 이렇게 길게 설명하세요?"
"며칠 동안 집에 못 들어가고 있어요."
"저는 법적인 근거가 없어 기획회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내부결재가 없어서 효력이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정도가 심하지 않았나."
"잠시만요. ○○ 지역에 선생님들이 ○○초에 발령 나는 게 무섭다는 얘기가 있어요."


'감사인의 자세'라는 제목이 붙은 '공공감사기준' 제10조는 감사를 진행하는 담당자의 태도와 자세를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다.
 
10조 1항
감사인은 공인으로서의 책무성을 인식하고 공정성·성실성 및 건전한 윤리의식에 기초한 감사자세를 견지하여야 한다.

10조 2항
감사인은 수감기관등의 입장과 의견을 존중하고 충분한 의견진술의 기회를 주어야 하며 편견이나 자의적 판단에 의하지 아니하고 동료 감사인, 관계기관 및 전문가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하여야 한다.

10조 3항
감사인은 수감기관 등에게 위압감이나 불쾌감을 주지 않도록 친절하고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여야 한다.

('공공감사기준' 제 10조, 국가법령정보센터 홈페이지)

전교조 "불공정하고 권위적인 감사과정 사과하고 재발방지책 마련하라"
 
지난 30일 전교조 강원지부는 강원도교육청의 A학교에 대한 감사과정이 불공정하고 권위적이라고 규탄하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지난 30일 전교조 강원지부는 강원도교육청의 A학교에 대한 감사과정이 불공정하고 권위적이라고 규탄하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 전교조 강원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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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현장에서 문제의 '사상범' 발언을 들었다는 교사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교육 경력 5년 차 교사인 C는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확인서에 서명하라고 요구했어요. '기획회의가 월권으로 회의를 했고, 그로 인해 기획회의 구성원들이 학교를 부적절하게 운영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인정할 수 없다고 하자 수정된 문구를 계속 제시하며 압박했어요. 그런데 '기획회의가 문제가 있다'는 내용은 바꾸지 않아서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결국 문구 수정을 하게 됐고, 그러면서 감사관이 '사상범, 확신범들이 보통 그렇게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습니다. 너무 어이가 없어 '우리가 사상범이냐'고 되물었습니다."

기획회의는 A학교 교육활동 기획회의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주요 교육활동을 기획하거나 긴급한 사안을 논의하는 협의 기구다. 교장과 교감, 행정실장도 참석하는 회의다. 혁신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구이기도 하다. 일반 학교의 '부장 회의'와 비슷한 성격을 띤다.

감사를 받은 복수의 교사들에게 확인한 결과, 감사 담당자들은 'A학교 기획회의가 근거 없이 만들어졌고 그에 따라 모든 회의 결과는 위법하다'는 주장을 여러 차례 폈다고 한다. '사상범', '확신범' 발언이 나온 때도 같은 상황이었다.

강원도교육청 홈페이지 강원행복더하기학교 '나눔마당'에는 강원도 혁신학교들의 교육계획서가 올라와 있다. 이곳에 탑재된 A학교 교육계획서에는 기획회의가 하는 일과 참가자 범위가 자세히 나와 있다. 강원도교육청은 불필요한 행정업무를 줄이기 위해 학교 교육계획서에 있는 내용을 별도의 내부결재를 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기획회의가 근거가 없고 위법하다는 감사 담당자들의 말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이다.

도내 교원단체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강원지부도 30일 강원도교육청의 A학교 감사과정에 문제가 있다며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전교조 강원지부는 성명에서 "이번 감사과정은 매우 실망스러우며 감사관들의 전문성과 소양까지 의심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하다"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불공정하고 권위적인 감사과정을 사과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A학교 교사들에 따르면, 강원도교육청 감사 담당자는 해당 교사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감사 필요성에 대한 논란은 접어두더라도, 감사는 공정성과 객관성이 생명이며 법령에 정해진 규정과 절차를 철저히 지켜야 한다. 절차적 하자는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다. 무엇보다 그 어떤 이유로도 감사받는 사람에게 범죄자라고 막말을 하는 일이 허용될 수는 없다.

강원도교육청 고위 감사관은 31일 오전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부적절한 예를 들기는 했다. 예를 들어 설명하다 보니까 그런 발언을 하게 됐다. 그 자리에서 취소하고 예를 안 들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담당자에게 주의를 줬다"라며 문제의 발언에 대해 당장 사과나 별도의 다른 조치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태그:#강원도교육청, #막말, #사상범, #확신범,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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