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어' 에드손 바르보자(35‧브라질)와 '더 모타운 페놈' 케빈 리(28·미국)는 UFC팬들 사이에서 아쉬운 기대주로 불린다. 확실한 자신만의 색깔을 바탕으로 나쁘지 않은 퍼포먼스, 상품성 등을 두루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 못한 채 퇴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그 이유다.

바르보자는 전형적인 테크니션 타격가다. 흑인 특유의 탄력적 움직임이 인상적으로 반사신경과 스텝이 좋아 거리싸움에도 능하고 펀치, 킥, 무릎 등 다양한 옵션을 실전에서 활용한다. 무에타이 무대서 빼어난 성적을 거두고 MMA에 입성했으며 테이크다운 디펜스형 타격가로 금세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2010년부터 UFC무대서 활약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메인카드로 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주최측 입장에서 그를 얼마나 꾸준하고 매력적인 파이터로 평가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리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하빕 누르마고메도프와 토니 퍼거슨의 2강 체제로 라이트급이 돌아가던 시절 그러한 구도를 깨트릴 가장 유력한 후보 중 한 명으로 꼽혔다. 탄탄한 근육과 탄력, 운동신경으로 상대를 테이크다운 시키고 파운딩 세례를 퍼붓는 터프가이 레슬러다. 2014년부터 옥타곤에서 경기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20대일 정도로 젊은 베테랑이라는 부분 역시 강점으로 꼽힌다.

그간의 기대치, 풍부한 경험 등에 비춰봤을 때 라이트급 최고의 타격가로 불리던 바르보자와 '넘버2 레슬러' 리는 정상권에서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어야 맞을 듯 보인다. 아쉽게도 그들은 더 성장하지 못했다. 잘하기는 했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미끄러졌으며 결국 꾸준하기만 할 뿐 터지지는 못했다.

그런 점에서 29일(한국시간) 미국 네바다주 UFC 에이팩스서 있었던 'UFC ON ESPN 30' 대회는 바르보자, 리 모두에게 매우 중요했다. 라이트급에서 성장의 한계를 경험한 그들은 각각 페더급과 웰터급으로 체급을 바꿔서 제2의 경쟁을 하고 있다. 새로운 체급에서도 밀릴 경우 적지 않은 연차를 감안했을 때 생존 자체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닌자‘ 기가 치카제(사진 왼쪽)와 ’주니어‘ 에드손 바르보자

닌자‘ 기가 치카제(사진 왼쪽)와 ’주니어‘ 에드손 바르보자 ⓒ UFC

 
타격으로 무너진 타격가 바르보자
 
바르보자의 경기는 이른바 보는 재미가 있다. 스트라이커에게 필요한 무기를 고르게 갖춰 다양한 방식으로 상대를 넉 아웃시키거나 그로기 상태로 빠뜨린다. 바르보자의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터지는 돌려차기 성격의 발차기는 타이밍, 궤적 등에서 생소함까지 더해 흐름을 바꾸는 큰 무기가 되곤 한다.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혹은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높낮이까지 조절해 휘둘러 긴 동선에 비해 적중률이 높으며 상대가 받는 데미지도 크다. 몸통을 노리고 근거리에서 짧게 들어가는 뒷차기 성격의 스피닝 킥도 위력적이다. 때문에 그라운드가 부담스러울 뿐 타격싸움에서는 항상 자신감이 넘치던 바르보자였다.

안타깝게도 이번 대회에서 그에게 패배를 안긴 '닌자' 기가 치카제(33‧조지아)는 같은 스트라이커, 더욱이 킥을 주무기로 하는 계열이라는 점에서 바르보자의 입지는 급추락할 것으로 보인다. 둘은 치열한 타격전을 벌였고 3라운드 1분 44초 경 치카제의 타격 콤비네이션이 터지며 TKO로 바르보자가 무너졌다.

1라운드, 바르보자는 옥타곤 중앙을 선점한 채 성큼성큼 치카제를 압박했다. 치카제는 구태여 중앙싸움을 벌이기보다 케이지 외곽을 돌며 바르보자의 빈틈을 노리는 모습이었다.

긴 리치를 활용한 잽과 스트레이트에 미들킥, 로우킥으로 꾸준히 견제하면서 바르보자가 거리를 좁혔다 싶은 순간 먼저 니킥을 차올리는 등 흐름을 끊어먹었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서 나온 뒤돌려차기도 바르보자를 당황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라운드 막판에는 역으로 중앙을 선점해 압박에 들어갔다.

안되겠다 싶은 바르보자는 2라운드 들어서는 적극적으로 잽을 내며 타이밍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모습이었다. 영리한 치카제는 철저하게 거리를 두며 좀처럼 잽 거리를 내주지 않았다. 원거리에서 미들킥을 맞추다가 기습적으로 거리를 좁히며 들어가는 공격은 바르보자의 머릿속을 혼란하게 만들었다.

승부는 3라운드에서 갈렸다. 초반 치카제의 니킥이 복부에 적중되고 이후 라이트훅이 안면에 들어가자 충격을 받은 바르보자는 계속해서 뒷걸음질 쳤다. 치카제는 냉정했다. 급하게 밀고 들어가기 보다는 천천히 압박을 가하며 정확도 높은 펀치를 계속해서 맞춰나갔다. 결국 견디지 못한 바르보자는 그로기에 몰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고 심판은 경기를 중단시켰다.
 
 ’D-ROD‘ 다니엘 로드리게스(사진 왼쪽)와 ’더 모타운 페놈‘ 케빈 리

’D-ROD‘ 다니엘 로드리게스(사진 왼쪽)와 ’더 모타운 페놈‘ 케빈 리 ⓒ UFC

 
웰터급 2경기 모두 패배, 여전히 후반에 약한 리
 
리는 라이트급에서 잘나가던 시절 신장(175.26cm)은 큰 편이 아니지만 긴 리치(195cm)를 무기로 스탠딩, 그래플링 등 영역을 가리지 않고 위력적인 화력을 과시할 수 있었다. 레슬링을 견제하면서 스탠딩 싸움을 펼쳐야 하는 상대 입장에서는 예상 밖 거리에서 쭉 늘어나듯 들어오는 펀치에 당황하기 일쑤였다. 타격 기술이나 센스가 그다지 뛰어난 것이 아님에도 타격전에서 경쟁력을 가져갔던 이유다.

리의 긴 리치는 레슬링 싸움에서도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빼어난 레슬러답게 리는 타이밍 태클, 클린치, 슬램 등 다양한 방식으로 상대를 그라운드로 끌고 갔다. 그립 역시 깊게 잡을 수 있어 상대의 테이크다운 디펜스를 허무하게 무너뜨리기 일쑤였다.

리의 발목을 잡고 있던 가장 큰 문제는 체력이었다. 초반 화력만큼은 '누르마고메도프 부럽지 않다'는 얘기까지 있었지만 지속성에 약점이 있었다. 초반 경기를 끝내버리거나 확실한 데미지를 주지 못할 경우, 곤란한 상황에 빠지는 것은 주로 리였다. 상대가 자신의 맹공을 버티어낼 경우, 언제 그랬냐는 듯 경기력이 뚝 떨어졌다. 기세까지 함께 무너져 내리며 역전패를 허용하기 일쑤였다. 단점이 너무 뚜렷해 장점을 살리지 못한다는 혹평이 많았다.

이는 상위체급인 웰터급에서 펼쳤던 이날 'D-ROD' 다니엘 로드리게스(34‧미국)와의 경기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실 리가 웰터급으로 전향한다고 했을 때 상당수 팬과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라이트급에서도 체력 문제로 힘든데 더 큰 선수들이 즐비한 상위 체급에서는 그런 약점이 더 두드러지지 않겠냐"며 회의적인 반응이 많았다. "단순히 체중 조절이 힘들어서 그런 것 같다"는 날선 비판이 쏟아졌다.

이날 경기에 나선 로드리게스 역시 웰터급 선수치고도 매우 커보일 정도로 큰 몸집을 선보이며 리와의 체격차가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리는 1라운드에서 테이크다운을 성공시키는 등 빼어난 레슬러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다. 계속된 압박을 통해 1라운드를 유리하게 마쳤다. 문제는 2라운드부터였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던 리와 달리 로드리게스는 체력 상태가 좋아보였고 이는 고스란히 경기력으로 이어졌다.

로드리게스는 꾸준히 유효타를 적중시키며 경기를 자신의 페이스로 끌고 나갔다. 반면 리는 체력 문제를 노출하며 계속해서 밀리는 모습이었다. 테이크다운을 성공시키기는 했으나 이후 그래플링 싸움에서 점수를 가져갈 만한 움직임이 아쉬웠다. 결국 경기는 로드리게스의 3라운드 종료 3-0 판정승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기세 좋게 웰터급으로 올라온 리 입장에서는 연패를 기록하며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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