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계 여성 교수가 미국 어느 명문대 영문학과 학과장이 된다. 집에서 한국인 아버지와 한국어를 주고받는 그녀는 독신주의자다. 이름은 김지윤, 나이는 40대 중반. 멕시코계 여자 아이를 입양해서 살고 있다. 요리부터 공감 능력까지 꽝인 그녀는 엄마 역할에 최선을 다해보려 하지만 초등학생 딸은 공공연히 엄마가 싫다는 티를 낸다. 그런 지윤이 자신의 커리어 하이의 순간을 맞이하며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된다.

 
 김지윤은(산드라 오 역)는 학교 역사상 최초 유색인종이자 여성 학과장이 된다.

김지윤은(산드라 오 역)는 학교 역사상 최초 유색인종이자 여성 학과장이 된다. ⓒ 넷플릭스

 
산드라 오가 주인공 김지윤 역과 총괄 제작을 맡았다. 각 30분 내외의 6개 에피소드로 시즌 1이 구성되어 있다. 장르는 코미다. 농담 같은 사건들이 아주 빠른 전개로 진행되지만, 그 안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는 인종차별, 교육제도, 입양, 나치즘, 세대 갈등 등 아주 민감한 영역이다. 자칫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다루어 눈살을 찡그리게 할 수도 있는 시도였지만 재미와 메시지 둘 다 훌륭하게 잡았다.

다양한 주제가 각각의 영역에서 특정 개념으로 갈라져 대립면에서 갈등이 발생한다. 지윤은 그 중심에 서서 학과장 본연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여 갈등을 해소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지윤은 결국 갈등을 훌륭하게 매듭짓는데 실패하고 학과장 직에서 해임된다. 자칫 겉으로 보았을 때, 한 여인의 실패담을 그린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지윤은 그 과정에서 학과장이란 수단에 매몰되어 있던 문학과 교육이라는 자신의 꿈을 되찾게 된다. 이 실패 같은 성공담을 바라보며 느끼는 바는 관객 각자의 몫이지만 여기서 나는 김지윤의 절친이자 부인과 사별한 지 1년이 된 교수 빌의 이야기를 쫓아가 보도록 한다.

스타 교수 빌의 대실수

빌은 스타 교수다. 책이 잘 팔렸고, 그의 명성은 드높았다. '빌의 수업만 들어도 학비는 번다'라는 소문이 돌 정도로 그의 강의 또한 인기가 좋았다. 하지만 아내와의 사별 후 그는 약과 술에 빠져들면서 일상이 흐트러지게 된다.

전날 술에 쩔어 수업에 늦게 도착한 빌은 자신의 강의 명도 잘 알지 못했다. 마련된 교재 속에 자신이 가르쳐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낌새였다. 그러자 마치 영감이 떠오른 작가처럼 부조리에 대해서 강의를 시작한다. 카뮈와 베케트가 등장한다. 삶에 어떠한 의미도 없다는 허무, 그 늪에 빠져 지내던 빌은 마치 날개 잃은 새처럼 바닥에 뒹구는 자신의 모습을 토로하는 것처럼 강의를 이어간다.

문제는 강의 도중에 나치식 인사 '하일 히틀러'를 흉내 낸 것이었다. 물론 그는 나치주의자가 아닐뿐더러 전체주의와 파시즘을 경멸한다. 하지만 학생들은 그 모습만 편집해 SNS로 공유한다. 이후 빌은 학생들에게 파시즘을 가르치며 옹호하는 교수로 낙인이 찍힌다.

믿고자 하는 대로 보는 사람들
 
 빌은 학생들과 대화와 토론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오만과 자기기만이라는 평가만 되돌왔을 뿐이었다.

빌은 학생들과 대화와 토론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오만과 자기기만이라는 평가만 되돌왔을 뿐이었다. ⓒ 넷플릭스

 
빌은 이 상황을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진실과 다르기 때문이다. 학과장 지윤은 그런 빌을 일단 사태 수습을 최우선으로 하자고 달랜다. 진실이 아닌 사실이 대중의 눈과 귀와 입을 통해 새로운 진실로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맥락이 결여된 약 2초짜리 영상은 그 자체로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빌은 중요한 것은 '나는 나치가 아니다'라는 진실이 이라고 말했지만, 지윤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사실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하기에 그 사실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라도 그들이 원하는 방식의 현실적인 사과를 해야 된다고 말한다.

빌은 지윤의 제안에 수긍하지 않고, 토론회를 개최한다. 하지만, 빌과 학생들 간의 토론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분명한 행위를 믿고자 하는 대로 평가하는 대중이었다. 그 이면에 숨겨진 의미를 설명하려 하는 빌에게 바라는 것은 사실을 인정하고 그에 걸맞은 사과를 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마치 문화 혁명 당시 악으로 처우받던 지식인이 제자에게 어떤 설명을 하더라도 그 낙인이 지워지지 않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민주주의와 다양성을 추구하는 집단의 모순이었다. 흔히 악의적인 미디어의 오용에 대해서 비판할 때 쓰이는 비유는 그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부분만 선택해서 보여주는 그림이다. 보는 것을 통제할 때 생각과 판단 또한 통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수많은 정보 속에서 믿고자 하는 것만 본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이미지를 두고 누군가 그렇다고 정의한 사실에 동조한다. 리트윗이 수만 번 된 '사실'에는 검증의 단계는 생략되고, 오로지 동의와 추종으로 완성된 새로운 '진실'만이 있을 뿐이다.

'하일 히틀러' 흉내가 왜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그 행위에 대한 단죄 여부만이 관심사였을 뿐이다. 수단이 목적을 전도한 것이다.

지윤은 이 과정을 겪으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질문을 던진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 나는 왜 학과장이 되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빌을 해임한다고 바뀌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왜 근본적인 문제로부터 동떨어져 허둥대고 있는가.

빌은 교수직을 잃게 되었지만, 문제는 해결된 것이 아니었다. 언젠가는 다시 반복될 것이다. 지윤은 그 해답을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교실에서 시작해야 된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녀가 학과장에서 해임된 후 강단에 서서 수업에 임하는 모습은 여유롭고 아름다워 보였다. 시즌 2가 나온다면, 그 웃음의 비밀이 풀리기를 바란다.
넷플릭스 더 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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