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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티셔츠' 뒷면. 도안은 물론 배치까지도 아이들이 정했다. 한자에 젬병인 아이들도 '불원복'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
 "통일 티셔츠" 뒷면. 도안은 물론 배치까지도 아이들이 정했다. 한자에 젬병인 아이들도 "불원복"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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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던 '통일 티셔츠'가 제작되어 나왔다. 지난 방학 때 도안 공모를 시작할 때만 해도 시큰둥해하던 아이들도 받은 티셔츠를 입어보더니 연신 신나 한다. 예쁘다고, 세련됐다고 입소문이 나면서 인근 중학교 교사들까지 구할 수 없느냐고 전화를 걸어온다. 

이게 뭐라고 참 행복하다. 방학 때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며 애쓴 보람이 있다. 도안 공모전 포스터를 게시판에 붙였을 때,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아 내심 걱정이 태산이었다. 학급별로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할애해 공모전 분위기를 띄워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애꿎은 각 반 실장에게 학급별로 최소 한 점 이상 작품을 제출하라며 을러대는 내 모습이 한심하기도 했다. '울며 겨자 먹기'라는 자괴감도 들었고, 한편으론 행사를 위한 행사 아니냐는 반성이 들기도 했다. 통일교육이라기보다 차라리 억지 춘향식의 과제라는 생각에서다. 

공모전 마감 사흘을 앞둔 날까지 단 한 점의 응모작도 없었다. 솔직히 그땐 통일교육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학급 담임교사들을 원망하기도 했다. 물론 그릇된 몽니인 줄 안다. 애초 통일교육을 시작하겠다고 나서기 전 동료 교사와의 공감대 형성에 소홀했던 내 책임이 크다. 

다른 프로젝트를 구상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바로 그때, 여러 작품이 한꺼번에 접수됐다. 이거다 싶은 건 눈에 띄지 않았지만, 아이들의 갑작스러운 관심에 약간의 흥분이 일었다. 마감날 응모한 아이들이 삼삼오오 찾아와 서로의 작품을 비교하고 칭찬하는 모습이 대견했다. 

20400815 불원복

심사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요즘 아이들의 컴퓨터 활용 능력은, 말 그대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포토샵과 동영상 편집기 등 웬만한 프로그램을 아예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수준이다. 하여 컴퓨터를 활용한 디자인 실력보다 도안에 담으려는 의미에 주안점을 뒀다. 

무궁화꽃을 한반도 모양으로 꾸미고, 남북 정상이 악수하는 장면을 형상화한 것은 어디서 많이 본 듯 익숙했다. 하늘색 한반도기 위에 나는 흰 비둘기도 식상하긴 마찬가지였다. '하나 되는 대한민국'이라는 글자로 한반도 지도를 그린 건 세련됐지만 의미가 너무 단순했다.

그런가 하면, 한반도기를 가운데 두고 태극기와 북한의 인공기를 반쯤 섞어놓은 도안도 있었다. 태극기와 인공기가 만나 한반도기가 된다는 게 요지였다. 컴퓨터 작업을 거친 완성된 도안이 아니라 스케치인 데다, 인공기가 그려진 옷은 자칫 현행법에 저촉될 수도 있는 문제라 무척 조심스러웠다. 

통일 티셔츠는 '20400815'와 '불원복(不遠復)'을 함께 새긴 도안으로 최종 낙착됐다. 처음엔 무슨 의미인가 싶어 좀 의아했다. 2040년 8월 15일이 대체 무엇을 상징하는지, 그리고 불원복과 통일은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했다. 출품한 아이의 설명은 이랬다. 

통일을 언제쯤 이룰 수 있을 것 같으냐는 질문에 아이들의 대답은 양극단으로 갈린다고 한다. 영원히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경우와 머지않아 갑자기 닥친다는 두 가지. 다른 답변은 거의 들을 수 없다며, 100년 뒤쯤 가능하다는 답변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뜻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이것을 이른 시일 내에 통일을 이루지 못한다면 영원히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통일의 가능성은 시간과 정확히 반비례한다는 것이다. 남과 북 사이의 이질감이 커지다 보면, 북한은 통일이 아닌 '외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통일에 대한 그의 생각은 '낭만적'이었다. 6.25 전쟁의 참화를 직간접적으로 겪은 분들이 모두 돌아가시고 안 계실 2040년쯤에는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전쟁이 일어난 1950년에 태어났다면 90세가 되는 때이니, 적어도 '빨갱이'라는 막말은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거다.
 
한 학급 아이들이 '통일 티셔츠'를 입고 통일을 향한 염원을 표현하고 있다.
 한 학급 아이들이 "통일 티셔츠"를 입고 통일을 향한 염원을 표현하고 있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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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마지노선' 

그것은 스무 살을 코앞에 둔 고등학생의 바람이기도 했다. 스무 살 청년이 마흔 살의 중년이 된 그때까지도 남과 북이 지금처럼 서로 험한 말이 오간다면 통일에 대한 희망을 미련 없이 버리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에게 2040년은 희망의 '마지노선'인 셈이다. 

8월 15일은 대한민국의 '생일'이라고 말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날이며,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날이니 그렇게 불러도 어색하지 않다는 거다. 굳이 '생일'을 따진다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일인 4월 11일이 더 적확할 테지만, 아이들에겐 아직 낯선 날짜다. 수업 때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명토 박은 헌법 전문을 강조하는데도 그렇다. 

바람대로 2040년 8월 15일에 통일이 된다면, 해방과 정부 수립, 통일이 겹치는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기념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튼 구체적인 날짜로 통일에 대한 염원을 표현한 발상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비록 허황할지언정 도안을 고민하며 한껏 통일의 꿈을 가슴에 품었을 그가 대견했다.

정작 놀라운 건, '불원복'이라는 한자를 통일에 대입시켰다는 점이다. '불원복'은 구한말 이곳 남도 출신의 의병장이었던 고광순 선생의 불굴의 저항 정신을 상징하는 글귀다. 그가 지리산 등지에서 일제와 싸우며 가슴속에 품고 다녔던 태극기 위에 굵은 필체로 적혀있다.

머지않아 국권을 회복한다는 뜻이다. 전쟁 중에 그를 따르던 의병들의 의기를 북돋우기 위해 '불원복'이 새겨진 태극기를 앞장세웠다고 한다. 그가 전사한 지리산 피아골 연곡사 경내엔 '불원복' 태극기가 선명한 그의 순절비가 세워져 있다. 

그가 이를 모티프 삼은 이유는 뭘까. 수업 시간 구한말 호남 의병과 일제의 남한대토벌작전에 대해서 다루긴 했다. 직역하면 곧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뜻이라 통일의 문제와도 연관시킬 수 있는 단어라고 여겼단다. 분단되기 전 남과 북도 애초 하나였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머지않아 원래 한민족이었던 상태로 돌아간다, 곧 통일이 된다는 의미로도 충분히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광순 선생이 '불원복'을 되뇌며 국권 회복을 다짐했듯이, 우리도 '불원복'의 의미를 곱씹으며 통일을 염원하자는 뜻이란다. 두 도안을 합하니, 머지않은 2040년 원래 한민족이었던 남과 북이 하나가 된다는 이야기가 완성됐다. 

통일에 관한 관심
 
최종 선정된 도안을 출품한 학급의 아이들에게 시상한 필기구. 통일교육의 의미를 담기 위해 별도로 'Doing Peace'의 글귀를 새겨넣었다.
 최종 선정된 도안을 출품한 학급의 아이들에게 시상한 필기구. 통일교육의 의미를 담기 위해 별도로 "Doing Peace"의 글귀를 새겨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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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태극기를 빼는 대신 '20400815'에 태극 문양을 넣고 아래에 '불원복'을 새기는 것으로 마무리가 됐다. 도안 공모가 끝나니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아이들에게 도안의 의미를 설명하고, 개별적으로 치수를 재고, 학급별 플래시몹 계획을 공유하면서 방학을 보냈다. 

아이들은 지금 '통일 티셔츠'를 교복이나 체육복처럼 입고 다닌다. 한 번 입고 마는 옷이라면, 아무런 효과가 없다. 오랫동안 즐겨 입을 수 있도록 약간 비싸도 좋은 품질을 고집한 이유다. 눈에 자주 띄다 보니 '20400815'와 '불원복'의 의미를 모르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통일에 관한 아이들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고 자부하긴 아직 이르다. 익숙하고 식상해지는 순간 '도로아미타불'이 될 공산이 크다. 아이들에겐 파격적인 경험이 아닌 다음에야 소소하나마 끊임없는 자극이 필요하다. 통일이라는 두 글자가 어색하게 느껴지면 지는 거다.

파격적인 경험이란 이런 거다. 그들에게 통일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졌던 적이 있다. 그땐 모두가 평양이나 백두산으로 수학여행을 가게 될지 모른다며 설레발치기도 했다. 지난 2018년 남과 북의 두 정상이 판문점에서, 백두산에서 두 손 맞잡았을 때의 이야기다. 

그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통일교육이 됐다. 과거 해방이 도둑처럼 찾아왔듯, 남과 북의 통일도 그렇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대화가 오가기도 했다. 지금 그때의 감동은 신기루처럼 사라졌고, 희대의 남북 정상의 만남도 결국 이벤트성 행사였다는 자괴감만 남았다. 

고백하건대, 2018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흡사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했던 남북 관계는 내게 통일교육의 소명 의식을 심어준 계기였다. 통일교육도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한판 싸움이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 정부의 외교 역량만 다그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통일 티셔츠'가 마무리된 지금, 아이들의 통일에 관한 관심을 지속시킬 수 있는 또 다른 방안을 고민하느라 밤잠을 설치고 있다. 물론, 내가 행복해지자고 벌이는 일이라 몸은 좀 피곤해도 마음만은 가볍다. 다음은 아마도 '통일 책'과 친해지도록 하는 프로젝트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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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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