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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진단컨대 난 분명 '하고잡이'(Workaholic)였다. 어느 날 문득 고갤 들어보니, 오십대도 중반 길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생각이 딱딱하게 굳어져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쇠고기 사먹을 벌이를, 닭고기 사먹을 벌이로 줄이자고 결심한다. 일의 굴레에서 벗어나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었던 일, 그러면서도 재미나는 일을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그러자 모든 것이 여유로워지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이러저러한 글쓰기 공모전에 응모한다. 두세 곳에 입상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글쓰기가 내게 맞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어림없는 일이었다. 맨날 계산만 하고 설계도를 보며 현장을 답사하며 살던 시간이 켜켜이 쌓여있지 않던가?

허나 이미 내디딘 걸음이다. 동네 막걸리집에서 잔을 기울이곤 하던 출판인과 글쟁이들이 자꾸 부추긴다. 그대의 엄청난 독서량이면 적당한 주제를 잡아, 짧은 글로 이어가는 작업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거란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이 막걸리에 녹아 버린 것일까?

어쭙잖은 용기로 달려든 게 화근이었다. 이 일은 숫제 현수교 놓는 작업보다 훨씬 더 어려운 영역이란 걸 실감하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오마이뉴스와의 인연

무엇보다 방법을 몰랐다. 만화 <까대기>를 그린 이종철 작가가 포털에 이러저러한 기능이 있다고 알려온다. 하지만 그 영역은 감히 '공돌이'가 낄 공간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문득 내 사고와 지향점에 맞는 최애하는 신문 〈오마이뉴스〉에 연재물이 게시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시민기자가 되는 방법부터 연재기사 싣는 절차 등을 이리저리 검색한다.

2020년 6월 초. 〈오마이뉴스〉 편집부에 메일을 보내기까지 소심한(?) '하고잡이'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음을 고백한다. 편집부에서 원고 하나를 보더니, 곧바로 글을 연재할 수 있는 지면을 내어주었다.

이때부터 자료와의 싸움이 시작된다. 공학으로 알고 경험한 '다리'를 어찌하면 잘 알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이어진다. 결국 하나의 다리가 만들어지기까지 '과정'에 천착하기로 방향을 정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크건 작건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공학에 문·사·철을 버무려 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징검다리를 시작으로 연재가 시작된다. 글의 맥락만 잡고 '소제목'도 변변하게 달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사진을 편집해 원고를 송고하는 것은 말해 무엇 하랴. <오마이뉴스> 편집기자님을 어지간히도 고생시켜드렸다.

반응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게 울려왔다. 많은 부분 〈오마이뉴스〉 편집기자님 힘이었겠으나, 기사는 포털 상위에 오르는 영예를 누리기도 한다. 많은 비아냥거림과 생각이 다름을 표현하는 댓글과 비난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오류에 대한 지적과 격려, 응원의 메시지가 훨씬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글의 어려움과 엄중함, 책임감 같은 것들 말이다.

글이 연재되자 오랜 시간 끊긴 옛 인연들이 이리저리 다시 엮이는 기쁨도 물론 빠뜨릴 수 없는 이야기 중 하나다.

어느 메일
  
ⓒ 루아크
 
2021년 3월 3일 봄기운으로 대지가 긴 잠에서 몸을 뒤틀던 때이다. <오마이뉴스>에 올린 연재물 중 '민족분단의 상흔이 남아있는 철원 승일교'가 게재돼, 포털에서는 서로 다른 생각들이 날 선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이었다.

정작 나는 다른 것으로 머리가 아팠다. 이러저러한 사실관계로 기사 내용 이해관계자의 날 선 메일로 내 편지통이 그득 채워진다. 참고문헌을 보며 사실관계를 재확인하고 현장에서 확보한 자료 등으로 대응해 보았으나, 사실관계보다는 명예의 문제로 귀결돼 간다. 결국 기사 일부를 편집기자님과 상의해 수정하기에 이른다.

맥이 풀려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럴 무렵 <오마이뉴스> '내방'으로 쪽지가 날아든다. 루아크 출판사의 천경호 대표라며, 내 글 출간을 협의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소제목도 달지 못하는 변변찮은 병아리 수준 글쓰기에 출간이라니... 이것이 가당키나 한 일일까?

이후 몇 차례 메일이 오갔고, 약속을 잡았다. 사는 도시의 도서관 옆 카페에서 천 대표와 마주한다. 큰 키에 서글서글한 눈매의 천 대표는 <오마이뉴스>에 연재하는 글 방향을 먼저 말한다.

'철원 승일교' 같은 맥락으로 몇 꼭지 더 써서 독자들 반응을 살펴보자는 것이다. 이후 현대식 교량 관련 기사는 철저히 천 대표가 제시한 방향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러자 옛 다리와 그 이전 기사와는 다른 반응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역시 글쟁이가 보는 시각은 달랐다.

그때는 두어군데 출판사에서 책 출간에 대한 말들이 오가는 상황이었다. 병아리 수준의 글쓰기로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는 게 사실이다. 천 대표와의 만남으로 나도 모르게 솜털을 벗어나 중병아리가 되어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고마웠다.

그리고 루아크 출판사에서 만든 책들을 살펴보았다. 그 중 <오마이뉴스>를 통해 책을 출간한 김소연 작가의 <경성의 건축가들>을 비롯한 몇몇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 정성을 다해 출간하는 출판사라는 인상이 훅 끼쳐왔다. 이제는 오히려 내 쪽에서 출판사를 좇을 지경이었다.

아! 어머니

천 대표는 다음 순서로 계약서(안)를 가져온다. 앞서 말한 책을 포함한 자신이 출간한 책 몇 권과 함께였다. 그동안 읽어 온 책들과는 많은 차별을 보이는 책이었다. 책의 장장마다 정성이 묻어난다. 정갈한 표지와 상업적 이익을 생각지 않고 펴낸 책들마저 있다.

경외감과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든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하면서 틈틈이 원고 작업에 들어간다. 20꼭지를 골라 분량을 늘여 조절하고, 참고문헌과 세세한 자료를 지속 보완해 나간다.

그때 어머니께서 병원에 입원하신다. 코로나19로 추석에도 설날에도 뵙지 못한 어머니다. 연세에 비해 건강하셨으므로, 그리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감기로 입원한다는 전화기 속 음성을 들었다.

병원에서는 급성폐렴이란다. 가슴이 철렁한다. 연세를 감안하면, 결코 안심할 병환이 아니다. 급하게 코로나19 검사를 마친다. 병원 중환자실에 계셔, 면회도 여의치 않다. 음성 판정을 받아, 날이 밝으면 시골에 가 뵈려던 시간이 새벽 2시로 당겨진다. 결국 고속도로에서 임종도 하지 못하고 허망하게 어머니를 보내드려야만 했다. 원고가 중간을 지나가던 즈음이다. 자식이 글을 써 낸다는 자랑으로 얼굴이 늘 환하시던 분이었다.

아픔은 아픔이고, 원고는 원고였다. 난 본디 '하고잡이'(Workaholic) 아니던가? 큰 슬픔을 이겨내는 데 일만한 것이 어디 있던가? 그렇게 힘들게 봄과 함께 원고도 천 대표께 가까스로 보낼 수 있게 됐다.

엉덩이 힘을 믿으며
  
책 실물 모습
▲ 다시, 오래된 다리를 거닐다. 책 실물 모습
ⓒ 루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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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보내준 증정본을 받았다. 첫 책이다. 초장대교량 하나 짓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새 책의 풋풋한 표지를 만지며 여러 생각이 스쳐간다.

무엇보다 '하고잡이'로 살아 온 시간이 가장 먼저였다. 영면에 드신 어머니와 묵묵히 헛발질(?)을 지켜봐 준 가족이 떠오른다. 그리고 글로 세상과 소통해 보고 싶다던 작은 길을 마련한 기쁨이다.

<오마이뉴스>라는 열린 공간에서 독자들과 어울릴 기회를 갖게 된 계기가 시작이었다. 그것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더 감사하다. 내게 글쓰기는 재미나고 즐거운 일이지 않은가?

루아크 천 대표는 자신의 시각에서 재미난 글이면 독자들도 그러할 것이라면 용기를 북돋는다. 그 말이 사실일지는 지켜 볼 일이지만 말이다.

이제 겨우 책 한 권 달랑 세상에 내 놓았다. 과정에서 겪고 배운 것들이 산처럼 높다.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 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으나, 다 알다시피 결코 그렇지 않은 게 그녀석이지 않은가? 좋은 책을 볼 줄 아는 안목 있는 출판사를 만난 건 아무래도 큰 행운이었다. 앞으로도 엉덩이 힘으로 묵묵히 이 길을 갈 것이다.

들어가는 글에 쓴 한 단락으로 모든 변을 대신한다.
 
"수많은 길이 내 앞에도 놓여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는 오직 나만이 알고 있다. 개개인 앞에 놓인 '삶의 길'이다. 선택한 길로 가야할지 여부는 스스로의 몫이고 판단이다. (...) 누구나 길을 가다보면 난관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맞닥뜨린 난관을 극복하고 계속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어낼 때 길은 비로소 나를 인간답게 만들어 줄 것이다."

다시, 오래된 다리를 거닐다 - 역사를 아로새긴 한국의 옛 다리를 찾아서

이영천 (지은이), 루아크(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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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레 타인과 소통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소통하는 그런 일들을 찾아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보다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서로 교감하면서,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풍성해지는 삶을 같이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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