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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순씨는 1999년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30호 현악기 악기장으로 지정됐다. 지금도 전통 방식 그대로 현악기를 만들고 있다.
 최태순씨는 1999년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30호 현악기 악기장으로 지정됐다. 지금도 전통 방식 그대로 현악기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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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도가 웃도는 날씨에도 직접 대패질하고 풀을 끓여 나무를 붙이고 줄을 메는 작업을 하루도 빠짐없이 하고 있다. 오동나무를 화려한 악기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을 60여년 넘게 하고 있다. 바로 경기도무형문화재 제30호 최태순 악기장이다.

악기장이란 우리나라의 전통 악기를 만드는 장인을 말한다. 전통악기의 주재료인 나무와 가죽, 명주실, 대나무, 쇠, 돌, 흙 등을 이용해 악기를 설계하고 만들어 각 악기가 지닌 특유의 소리를 정확하고 아름답게 만든다.

최태순 악기장은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하루 3~4시간은 현악기 제작에 몰두하고 있다. 악기는 인간의 심성을 닮아 연주자들의 마음을 소리로 담아내는 것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는 그는 전통 악기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모든 삶을 바쳤다.

영혼을 불어넣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온다는 최 악기장은 14살 때부터 현악기와 인연을 맺었다. 2대째 전통 악기를 만들어 오던 고모부 김광주(국가무형문화제 제42호) 악기장으로부터 거문고, 가야금 등 전통 악기 제작 기술을 배우면서 시작된 악기와의 동행이 지금껏 이어져온 것이다.

1970~1980년 현악기 전성시대
 
최태순 악기장이 악기 제작을 하고 있다.
 최태순 악기장이 악기 제작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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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전주 태생인 최 악기장은 악기장이었던 고모부와 함께 살면서 거문고, 가야금 등 현악기와 친근해졌다. 18살 때 처음으로 혼자 만든 가야금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나도 이렇게 못 만든다'고 스승한테 칭찬받았던 악기예요. 그때 그 기분은 말로 표현 못해요. 여전히 애지중지하는 소중한 악기죠. 칭찬 덕에 악기 제작에 몰두하게 됐어요."

10대 때부터 본격적으로 악기 만드는 것을 도운 최 악기장은 스무 살이 채 되기 전에 스승 김광주씨와 함께 서울로 상경하게 됐다. 당시 한국전쟁으로 국립국악원 악기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고, 현악기 제작이 시급하던 시절이었다.

서울로 상경한 두 사람은 하루가 멀다 하고 악기 제작에 몰두했고 그렇게 20여 년 세월을 보냈다. 가야금, 거문고, 해금, 아쟁 등 수 십여 가지 현악기 가운데 그가 단독으로 만들어 납품한 가야금은 1969년 국방부 국악원 창설 때다.

"당시 전쟁으로 악기들 대부분이 불에 타 없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호황기였죠. 그렇게 20~30년 동안은 쉬지 않고 악기를 만들어 납품했으니까요."
 
최태순 악기장이 제작한 가야금을 연주해보고 있다.
 최태순 악기장이 제작한 가야금을 연주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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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원 안에 공방을 차린 그는 국악원이 서울 중구 장충동으로 옮길 때도 함께 움직였다. 이러던 중 그 당시 국악고등학교 한 관계자가 악기 만드는 소리가 너무 시끄럽다고 항의했고 이 사건으로 공방을 용인으로 옮기게 됐다. 때마침 한국민속촌에서 가야금, 거문고 등의 전시가 진행됐고 이 계기로 용인에 완전히 터를 잡게 됐다.

그렇게 1982년 당시 기흥읍 보라리 한국민속촌 앞 응달마을로 내려와 자신의 공장을 짓고 가야금·거문고·아쟁 등을 지금까지 제작해오고 있다. 국악원은 물론 추계예술대학, 단국대학교, 국립국악원 등에 거문고, 가야금 등을 납품했고 국악전시회나 전승공예대전에도 출품해 호평 받는 것은 물론 연주자들한테도 인정받았다.

또 1982년 한미수교 100주년을 기념해 미국에서 전통악기 제작시범을 보이는 등 당시 한국에서 제작해서 가지고 갔던 현악기들은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기증했다. 미국에도 악기가 전시될 정도이니 그의 명성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되는 대목이다.

"사람 손으로 만든 악기소리, 절대 못 따라와요" 

최태순 악기장의 제작은 전통적인 수작업 그대로를 고집하고 있다. 10여년 전부터 용인 기흥구 중동에 소릿고을이라는 작업장을 만들어 그곳에서 작업하고 있다. 작업장 한 쪽에는 오동나무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대패부터 톱, 칼 등 악기 제작에 사용되는 도구들이 벽에 빼곡하게 걸려 있다. 치수에 맞게 재단돼 있는 나무를 보고, '이렇게 작업해서 파냐'는 기자의 질문에 최 악기장은 "직접 손수 재단한다"고 답했다.

그는 오동나무를 고를 때부터 신중을 기한다. 나이테를 유심히 보고 통오동나무를 골라온 그는 나무를 치수에 맞게 재단한 후 대패질을 하는데, 이때 오동나무를 통째로 파내듯이 깎는다.

무척이나 수고스러운 과정이지만 이때 현악기 특유의 공명음이 좌우되기 때문에 가장 신중을 기해야 하는 순간이다. 이어 오동나무를 크기에 맞춰 재단하는데 오로지 그의 감과 경험으로부터 나온다.

"같은 오동나무라도 재질이나 수명에 따라 깎는 기술이 악기 소리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손으로 제작해야 합니다. 기계로 만드는 악기 소리는 사람 손으로 만든 악기 소리를 절대 못 따라와요."

이게 끝이 아니다. 밤나무로 만드는 악기 뒷판에는 소리가 나오는 길목인 초승달과 타원형 등의 구멍을 뚫고 앞판과 뒷판을 아교풀로 붙인 후 하루 동안 그늘에서 말리면 된다. 다음 작업은 표면이 매끄럽지 않으면 소리가 튀기 때문에 대패로 다듬어 소리를 잡아야 하고, 이후에는 나무에 색을 입히기 위해 인두질을 해야 한다.

이때 전통 방식 그대로 숯으로 달군 인두를 사용해 표면을 그을린다. 이렇게 하면 나무 결도 아름답고 나무가 단단해져 소리도 더 좋아진다. 이 과정이 끝나면 명주실을 꼬아 줄을 만든다. 앞면엔 현(줄)을 지탱하기 위해 기러기발을 닮은 안족이라 불리는 나무 괴를 세우고 악기의 겉에는 깎은 소뼈로 만든 조각을 서로 잇대어 붙이면 악기가 완성된다.
 
최태순 악기장이 만든 가야금과 거문고
 최태순 악기장이 만든 가야금과 거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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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손질부터 대패질, 인두, 줄 작업까지 현악기 하나를 완성하는 걸리는 기간은 20여 일 가까이 된다. 그의 아들 최정욱씨는 20여 년 전부터 최 악기장으로부터 현악기 제작을 배우고 있다. 최정욱씨가 전수자가 되면서 악기 제작이 가업이 된 셈이다.

2대 째 악기를 드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최 악기장은 최근 대량생산 되면서 개량된 현악기를 보면 안타깝단다. 서양악기와의 협업 등으로 가야금이 25줄로 제작돼 나오고 있으며 이미 25줄 가야금이 표준화된 요즘이다.

"12줄 가야금 찾는 곳은 거의 없다시피해요. 전통 가야금 소리가 오묘하면서 듣기 좋았는데 그 소리를 들을 곳이 없어요. 나중에는 12줄 가야금 제작하는 사람도 없을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을 하면 괜시리 슬퍼집니다."

전통 악기 그대로의 계승이 시급하다는 최 악기장은 소리의 맥을 잇기 위해 끝까지 전통 방식을 고수하겠다는 일념이다.

"나무를 다듬고 대패질 하는 그 과정이 제 건강 비결인 것 같아요.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전통 방식으로 악기를 제작하는 게 제 소원이에요."

오래된 나무에 그의 영혼이 더해지니 비로소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로 재탄생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그는 오늘도 전통소리의 맥을 잇기 위해 악기 제작에 열정을 더하고 있다.

1999년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30호 나 현악기로 지정된 최태순 악기장은 하와이 동서문화센터 감사패, 국립국악원장 감사패, 국악협회 감사패 등을 받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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