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 디플롯

관련사진보기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이 책의 제목이다. 원제 Survival of the Friendliest의 의미를 그대로 가져왔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적자생존 같은 단어에서 느껴지는 질기고 강한 느낌을 주는데 그 살아남은 것의 주체가 온화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다정한 것이다. 그리고 그 다정함의 주체가 다름 아닌 우리 인간, 특별히 인간의 여러 종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호모 사피엔스다. 그렇다면 사피엔스는 다정한 존재라서 살아남았다는 뜻인데, 제목만 보자면 그게 맞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다정한 사피엔스 : 자기가축화

사실 호모 사피엔스를 생각하면 똑똑하다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언어와 문자로 생각을 표현하고 소통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라고 우리는 배웠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는 이를 인지혁명으로 설명했다.

사피엔스는 언어를 발명했고, 이 언어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집단적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 이 상상력 덕분에 신화, 종교, 법, 화폐, 기업, 국가와 같은 가상의 존재가 탄생했고 이들에 대한 믿음이 자신과 소집단을 넘어서는 대규모의 유대와 협력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 인지혁명의 요지다.

왜 하필 사피엔스가 살아남았는지에 대해, 하라리가 언어와 상상력, 가상의 존재를 통해 설명했다면, 이 책의 저자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는 '친화력'을 핵심 키워드로 삼았다. 친화적으로 진화한 인간이 협력적 의사소통을 함으로써 다른 영장류나 인간의 다른 종과는 달리 문화와 역사를 창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친화적인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 등장하는 두 번째 키워드가 있다. 바로 자기 가축화self-domestication다. Domestication은 직역하면 길들이기 혹은 교화 정도로 해석되는데, 이 책에서 말하는 자기 가축화 역시 이 의미에 기반해 타 존재에 대한 공격성을 줄이고 자제력을 갖춘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요한 건 누가 우리 사피엔스를 길들였다는 것이 아니라 사피엔스 특유의 친화력이 우리 스스로를 길들였고 그럼으로써 우리가 서로 신뢰하고 협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매듭지어진 하나의 결론으로 보인다. 그런데 사피엔스인 나는 또 궁금하다. 그 특유의 친화력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다행히 저자는 옥시토신이란 호르몬을 등장시킨다. 옥시토신은 흔히 사랑의 호르몬이라 불린다. 대표적으로 엄마가 아기에게 젖을 먹일 때 이 호르몬의 분비량이 증가한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두려움을 느끼는 대신 친절을 베풀 수 있는 것도 옥시토신의 효과다. 바로 여기에서 인간이 다른 영장류와 차별화되기 시작한다. 침팬지나 보노보가 지리적 근접성이나 익숙함을 기준으로 우리와 남을 구분한다면, 인간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도 우리 안에 포함시킨다. 즉 '집단 내 타인'의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심지어 생후 4개월의 아기도 그 개념을 이해한다. 왠지 우리가 사피엔스라는 사실에 뿌듯해도 되는 지점인 듯하다. 

친절한 사피엔스는 왜 잔인해지는가?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우리가 협력만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협력은커녕 우리는 너무 많이 공격하고 싸우고 죽이기까지 한다. 유발 하라리는 역사적으로 볼 때 지금이 전쟁으로 죽은 사람들이 가장 적은 평화로운 시기라고도 말했지만 100년 밖에 못 사는 인간으로서는 지금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나쁜 본성이 드러나는 일들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지금도 미얀마와 아프간에서는 알지 못하는 '우리'가 죽어가고 있다. 

친화력의 존재인 사피엔스는 왜 공격적으로 변하게 되는 걸까? 우리 몸의 옥시토신 시스템은 나와 우리를 감싸고 사랑하게 만들지만 내가 속한 집단이 외부 집단에 의해 위협을 당한다고 느낄 때 분노와 공격성 또한 유발한다. 여기까지는 새끼를 낳은 개나 고양이가 엄청나게 사나워지는 것과 비슷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저자는 여기에서 사피엔스가 가진 친화력의 부산물로서 '비인간화' 능력을 지적한다. 중요한 건 비인간화가 '도덕적 배제'를 발생시킨다는 점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주변에서 일어나는 잔인한 일들에 눈감을 수 있는 것 혹은 비도덕적인 일에 참여를 하고도 스스로를 면책시킬 수 있는 것에는 몇 가지 가능한 이유들이 있지만, 그 중 면책 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나는 것이 바로 비인간화다.

저자는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도, 소수자에 대한 혐오도 그들이 우리와 다르다는 차원을 넘어 그들을 '비인간'(심지어 영장류)으로 바라보는 데 기인한다는 것을 여러 실험과 연구 결과를 근거로 제시한다. 

비인간화를 막을 백신?

사피엔스를 살아남게 했던 그 특유의 친화력은 양날의 검인 셈이다. 우리는 그 친화력으로 세상을 도울 수도 있고 많은 이들을 고통에 몰아넣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 안의 잔인한 본성이 작동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대안으로 비인간화 백신을 제안한다. 백신이 개발된 후 우리가 코로나에 대해 조금은 담대하게 대응하게 된 것처럼 비인간화 백신이 있다면 거기에도 희망을 걸어보고 싶다. 그런데 그 백신은 과연 무엇일까?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어려운 결론은 아니다.

서로 잡아먹을 듯 다퉜다가도 억지로라도 눈을 마주치고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정이 누그러지는 게 사람이다. 다정한 말 한마디에 마음이 녹는 것 또한 사람이다. 다만, 사피엔스인 우리에게 친화력이란 유전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믿고 순간적으로 등을 돌려 상대를 마주할 용기는 분명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기자 본인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blog.naver.com/fullcount99


태그:#호모사피엔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서평, #친화력, #사피엔스가살아남은이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책을 읽고 떠오르는 것들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글로 씁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