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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의 명물인 당산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있는 황의성 전 옥천1리 이장.
 마을의 명물인 당산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있는 황의성 전 옥천1리 이장.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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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오실 만 한 분을 만났습니다. 캔 꼭지(손잡이)를 모으시는 분인데요. 혹시! 그 분이 누군지 궁금해 하지는 마세요. 비밀입니다(외부로 알려지는 걸 싫어하십니다)."

이종현 전북 순창군 순창읍장은 지난 18일 오전 페이스북에 캔 꼭지 사진과 함께 이런 글을 올렸다. 이 읍장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순창군민끼리 비밀이 어디 있으랴. 지난 20일 오전 9시 30분 주인공을 찾아갔다.

하루 평균 캔 꼭지 294개 수집

'캔 꼭지' 이야기를 꺼내며 취재를 왔다고 밝히자 황의성(74) 전 순창읍 옥천1리 이장은 기겁했다. 한사코 대화를 거부하는 황 전 이장을 어렵사리 설득했다.

그의 일터인 '당산상회' 옆쪽으로 난 대문 안쪽 공간, 철제 선반에는 열과 행을 맞춘 페트병이 가득했다. 캔 꼭지가 빼곡한 페트병은 2리터짜리가 269번까지, 0.5리터짜리는 218번까지 번호가 붙어 있었다.

황 전 이장은 "2리터 페트병 1개에 캔 꼭지가 2000개 들어있다"고 설명했다. 2리터짜리 269개에 담긴 캔 꼭지는 53만 8000개가량, 0.5리터짜리 218개에는 10만 9000개가량이 각각 들어 있다. 모두 64만 7000개가량의 캔 꼭지를 모았다.
 
 지난 6년 간 황의성 전 옥천1리 이장이 모은 캔 꼭지는 모두 65만가량 된다.
 지난 6년 간 황의성 전 옥천1리 이장이 모은 캔 꼭지는 모두 65만가량 된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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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이 일을 시작했을까. 황 전 이장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제가 몸이 좋았는데, 7년 전에 '식도' 수술하고 몸이 안 좋아져 일을 못했어요. 어느 날 산림조합 일을 나갔는데 간식으로 빵하고 음료수 캔을 주더라고요. 근데 한 아주머니가 캔 꼭지를 따기에 '뭐 하려고 그러느냐'고 물으니까 '그냥 모은다'고 해요. 자려고 누워서 '내가 취미를 가져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다가, '아, 이걸 한 번 모아봐야겠다'고 생각하곤 그 때부터 시작했죠."

캔 꼭지를 수집한 지 어느덧 6년이 넘었다. 1년 365일, 6년으로만 계산해도 황 전 이장은 2200여 일 이상 캔 꼭지를 찾아 장례식장과 아파트단지 분리수거장, 도로변 분리수거함 등을 매일같이 돌아다녔다. 6년 간 하루 평균 294개 정도 캔 꼭지를 모은 셈이다.

"몸이 안 좋다더니, 이런 일까지"

황 전 이장은 "캔 꼭지를 모으면서 작은 오해 아닌 오해도 받았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어느 날 도로변 분리수거함을 뒤지면서 캔 꼭지를 따는 걸 지나가시는 분이 알아보셨어요. '쯧쯧, 몸이 안 좋다더니 이장님이 이런 일까지 하시느냐'고 혀를 차더라고요. 또, 나이 드신 분들은 제 어깨를 툭 치면서 '직업에 귀천이 없으니까 열심히 살라'고 말씀하세요. 그래서 그냥 '아이고, 고맙습니다'라고 답했죠. 하하하."

황 전 이장은 "지금은 오히려 아파트단지를 가면 환영받는다"며 말을 이었다.

"또 한 번은 아파트 소장님이 '분리수거까지 해 주시니까 너무 좋다'고 그러시더라고요. 제 성격이 그래요. 지저분한 걸 못 보니까 캔 꼭지 따면서 쓰레기 분리수거 다 해 놓고, 깨끗하게 정리하고 오거든요."

황 전 이장 집 안에 들어서니 각종 표창장과 공로패가 진열돼 있었다. 황 전 이장은 지난해까지 30년 동안 옥천1리 이장으로 일했다. 그는 "참, 보람되고 재미있었다"고 지난 시간을 돌이켰다.

"'구곡순담(구례ㆍ곡성ㆍ순창ㆍ담양) 백세인 축제'를 4개 군이 돌아가면서 하는데, 이 표창장을 (2016년에) 제가 받았어요. 100세 넘으신 분도 계시고, 또 순창에 어르신들이 얼마나 많아요. 그런데 한참 젊은 저한테 이 상을 주시니까 보람되고 흐뭇하더라고요."
 
 황의성 전 옥천1리 이장은 지난해까지 30년간 이장을 맡았다. 집 안에 여러 표창장과 공로패가 진열돼 있다.
 황의성 전 옥천1리 이장은 지난해까지 30년간 이장을 맡았다. 집 안에 여러 표창장과 공로패가 진열돼 있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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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청)에서 상금이라도 줘야 혀"

황 전 이장과 마을의 명물인 당산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갓난아기를 가슴에 안은 젊은 새댁이 그의 아내 문옥남(70)씨에게 귤 한 상자를 안겼다. 호기심이 일어 새댁에게 다가가 평소에 먹을거리를 자주 가져다 드리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수줍게 답했다.

"이웃끼리 정을 나누는 거죠. 이장님께서 마을을 위해서 정말 많은 일을 하세요.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주민 분들 일이라면 항상 발 벗고 나서시거든요. 주민들한텐 안 계시면 안 될 정말 고마우신 분이죠."

한 주민(84)은 '어떤 이장이냐'는 질문에 딱 두 마디로 답했다. "좋제." 이 주민은 황 전 이장을 바라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장님을 30년 넘게 봤는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안 빠지고 매일 새벽 4시, 4시 반에 일어나셔서 동네 구석구석 싹~ 청소하고 마을을 위해서 일을 정말 많이 하세요. 30년 이장을 아무나 하는 게 아녀. 군(청)에서 상금이라도 줘야 혀. 그래야 회관에서 고기라도 구워먹제. 하하하."

현재 옥천1리 마을에는 270여 명의 주민이 산단다. 인구 3만이 안 되는 순창군에서는 큰 마을이다. 황 전 이장은 나이가 무색하게 해맑은 웃음으로 마을 자랑을 했다.

"순창 하면 옥천골이제. 그중에서도 옥천1리, 우리 마을이 참 좋아요. 기력이 다하는 날까지 마을 일 하면서 캔 꼭지 수집하고 살랍니다. 하하하."
 
 황의성 전 옥천1리 이장은 지난 6년 간 매일 294개가량의 캔 꼭지를 수집했다.
 황의성 전 옥천1리 이장은 지난 6년 간 매일 294개가량의 캔 꼭지를 수집했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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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전북 순창군 주간신문 <열린순창> 8월 26일에 보도된 내용을 수정, 보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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