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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로 유명한 대구에서는 '남녀 모두 양산 쓰기' 운동이 시민의 호응을 받으며 확산하고 있다.
 무더위로 유명한 대구에서는 "남녀 모두 양산 쓰기" 운동이 시민의 호응을 받으며 확산하고 있다.
ⓒ 대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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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말께 '2021년 2분기 <표준국어대사전> 정보 수정 주요 내용'이 발표된 걸 뒤늦게 알았다. '양산'의 뜻풀이에서 '주로 여자들이 볕을 가리기 위하여 쓰는 우산 모양의 큰 물건'에서 '주로 여자들이'가 빠졌고, 미용실과 스카프도 같은 형식으로 바뀌었다는 신문 기사를 통해서다.

<표준국어대사전> 2021년 2분기 정보 수정 

정보가 수정된 낱말은 모두 30개다. ①표제어로 추가된 낱말이 5개, ②표제어 수정이 10개, ③ 원어 수정(한자어의 원문, 그리니까 한자를 수정한 것)이 4개다. 거기다 ④뜻풀이와 용례가 추가된 게 2개, 마지막으로 ⑤뜻풀이 수정이 9개다. (국립국어원 자료 참조)   '미용실'과 '스카프', '양산'은 ⑤뜻풀이가 수정된 경우다. <표1>에서 보는 것처럼 이들 낱말의 기존 뜻풀이에서 각각 '주로 여성의'(미용실), '주로 여성이'(스카프), '주로 여자들이'(양산)가 빠졌다. 또 '기름종이'에서는 뜻풀이에서 "주로 여자들이 화장을 고칠 때 쓴다"라는 문장이 통째로 빠졌다.

사전 올림말을 수정한다는 것은 사회적 변화에 따라 기존 낱말의 뜻이 분화되거나, 새로운 의미가 생성되는 등의 변화를 추인하여 새로 이를 규범으로 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변화를 추인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언중(言衆,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 공동생활을 하는 사회 안의 대중)의 승인이다. 

개인은 마음대로 언어를 바꿀 수 없지만, 언중들이 어떤 말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하여 그것이 일반화될 때는 그 말은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즉 언중으로부터 추인을 받음으로써 마침내 언어의 지위에 오르는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 표제어 정보 수정은 그러한 언어의 역사적 변화를 반영하는 셈이다. 

표제어 수정과 원어 수정, 그리고 뜻풀이와 용례 추가
 
<표1> 표제어로 추가된 낱말은 처음 사전에 오르게 된 낱말 5개다. 도둑고양이를 대산한 '길고양이'와 양심적 이유로 복무하는 '대체역' 등이다.
 <표1> 표제어로 추가된 낱말은 처음 사전에 오르게 된 낱말 5개다. 도둑고양이를 대산한 "길고양이"와 양심적 이유로 복무하는 "대체역" 등이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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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수정 내용 중 ②표제어 수정이나 ③원어 수정은 문법적인 부분을 수정한 것이다. 표제어 수정은 한자의 훈과 음이 붙어 이루어진 낱말(개견, 등글월문…)과 반의어를 중첩하여 이루어진 표제어(능불능, 당부당, 복불복…)의 사이에 '복합어의 최종 분석 단위 경계 표시'인 '-'를 넣거나(개-견, 능-불능 등) 그 위치를 바꾼 것(등글월-문→등-글월문)이다. 

원어 수정은 한자어의 '일부 한자'를 수정했다. "잠실(蠶室)에 가두었다가 거세하던 형벌"을 가리키는 '잠실^음형(蠶室陰刑)'에서 '음' 자를 '陰'에서 '淫' 자로 바꾸었다. 글쎄, 이런 고사성어가 어떤 연유로 사전에 다르게 올라갔는지는 의문이다. *^ :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나 붙여 쓸 수 있는 전문 용어나 고유 명사 표시

또, "말하는 때 이전의 지나간 차례나 때, 지난번"과 뜻이 같은 '저번(這番)'의 한자 '저'를 한글인 '저'로 바꾸었다. 이 '저번'은 '이번'과 마찬가지로 지시 대명사 '저'에서 온 말로 판단한 듯하다. "바로 얼마 전부터 이제까지의 무렵.=요즈음"을 뜻하는 '저간(這間)'의 저는 아직도 바뀌지 않았다. 

④뜻풀이와 용례가 추가된 예는 어미인 '-더라'와 동사 '빌빌거리다' 2개다. '-더라'는 직접 경험한 사실을 그대로 옮겨 전달하는 종결어미인데, "우리 언제 만났더라?"와 같이 공유한 과거 경험을 상대에게 물어보는 뜻과 그 용례를 추가했다. 

'빌빌거리다'도 단순히 행동이 느릿느릿하다는 뜻에 더해 "일정한 직업 없거나 하는 일 없이 계속 지내다"라는 뜻과 용례가 추가됐다. 

①표제어로 추가된 낱말은 처음 사전에 오르게 된 낱말 5개다. 기존 낱말인 '도둑고양이'가 반려동물 시대를 맞으며 그 부정적 의미를 지우고 새롭게 등장한 낱말이 '길고양이'다. 여러 해 전 '도둑고양이처럼 찾아온 봄'이라는 표현을 썼다가 '길냥이'로 쓰면 안 되냐는 독자의 항의성 댓글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이는 그러한 시대적 추세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이 밖에도 '남쪽과 북쪽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남북'에 더해 '남북쪽'이 있다. 남북 교류에서 공식 국호 대신 남쪽, 북쪽, 또는 남측, 북측이라고 쓰는 말에서 비롯한 이 말도 마침내 사전에 올랐다.

양심적 자유를 이유로 현역, 보충역, 예비역에의 복무를 대신하여 병역을 이행하는 것을 이르는 '대체역'도 새롭게 추가됐다. '처녀막'과 같은 뜻의 의학 용어로 '질입구주름'도 추가되었는데, 이는 다분히 가부장적 의미로 쓰이던 '처녀막'을 훌륭히 대체할 수 있을 듯하다. 

'헛디디다'의 준말인 '헛딛다'가 이제야 사전에 오른 점도 아쉽다. 왜 그 준말을 따로 사전에 올리지 않았는지. 
 
<표2> 뜻풀이 수정에 해당하는 낱말 9개는 시대적·사회적 변화를 일정하게 반영하는 말이다.
 <표2> 뜻풀이 수정에 해당하는 낱말 9개는 시대적·사회적 변화를 일정하게 반영하는 말이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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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뜻풀이가 수정된 9개 낱말도 시대적·사회적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앞서 말한 '기름종이·미용실·스카프·양산5' 등은 해당 낱말이 여성에게만 해당하지 않는 시대적 변화를 받아들인 것이다. 남성들이 이용하기 시작한 지 수십 년이 흘렀는데 '미용실' 뜻풀이가 이제야 바뀌는 건 아쉽다. (표2 참조)

남성들이 스카프는 물론이거니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폭염 대책으로 양산을 쓰기 시작한 점이 반영되었다. '대프리카'라고 불리는 대구에서 시작된 '남녀 모두 양산 쓰기' 운동은 부산, 대전, 충남 등으로 확산하고 있다.

'장애아'도 부정적 의미를 줄이는 쪽으로 뜻풀이가 바뀌었고 '처녀막'도 '질입구주름'이 새로 등재되면서 간단히 "'질입구주름'의 전 용어"로 바뀌었다. 수정 전의,  "파열되면 재생이 되지 않는다"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은연중에 순결 이데올로기를 떠올리던 뜻풀이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제는 나이 많은 사람이나 쓰는 '학부형'도 "예전에" 쓰던 말로 뜻풀이가 수정되었다. 남성 중심의 '학부형'이 퇴조하고 '학부모'가 널리 쓰이는 현실을 받아들인 것이다. 

변화무쌍한 언어의 현실을 언어 규범 안에 갈무리하는 일이 쉽지는 않겠다. 그러나 <표준국어대사전>이 언중의 추인을 받은 새말이나, 변화한 뜻을 더 적극적으로 담아내어 그 이름에 걸맞은 사전으로 자리매김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 풍진 세상에’(https://qq9447.tistory.com/)에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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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 기사 포함, 모두 1천여 편의 글을 썼다. 2019년 5월, 블로그 '이 풍진 세상에'에 연재한 '친일문학 이야기'를 단행본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인문서원)으로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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