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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좋제라. 하하하. 넷째 사위가 사진사여서 4년 전에 영정사진을 찍어줬었는디, 그때는 너무 젊을 때라 이번에 마을에서 찍어준다기에 다시 찍었제."  

지난 22일 오후 1시 무렵 찾아간 전북 순창군 복흥면 덕흥마을 모정 부근에서는 어르신들의 영정사진을 찍느라 작은 소동이 일었다.

마을 최고령인 조서운(88) 어르신은 영정사진을 찍은 소감을 묻자 "4년 전에는 너무 젊었다"고 활짝 웃으면서 "내가 7남매를 뒀는디, 넷째만 아들(63)이고, 딸이 여섯이야. 큰딸이 올해 칠순인디, 여그(고향 복흥)서 열아홉에 낳았제"라고 말했다.

어르신들은 하얀 머리칼을 빗으로 단정하게 넘기고 옷매무새를 다듬고 미소를 짓느라 어색한 표정이었다. 어르신들의 미소를 이끌어내기 위해 청년들은 손짓 발짓에 온갖 몸짓을 총동원했다.

장백원(78) 노인회장은 "영정사진을 찍었는데 그냥 덤덤하네요, 헛헛헛"라고 알 듯 모를 듯 묘한 표정으로 웃었다.

모처럼 웃음보 터진 덕흥마을

어제 온종일 세차게 비를 뿌리던 하늘은 환한 미소가 필요한 어르신들의 절실한 사정을 알았던지 이날은 흰 구름 사이로 푸른 얼굴을 군데군데 내비췄다.

덕흥마을은 오전 9시부터 백중행사를 열면서 마을 전체가 들썩였다. '장수(영정)사진 찍어드리기'를 포함해 직불금 수령, 마을주민 소통시간, 음악 공연, 영화상영 등 다채롭게 진행됐다.

행사장 곳곳을 바삐 다니며 주민들의 웃음보를 자유자재로 쥐락펴락하던 정용원 청년회 총무는 "모처럼 어르신들과 함께 대화하며 웃고 떠드니까 이제야 사람 사는 것 같다"며 큰 눈망울에 장난기 가득한 눈웃음을 지었다. 
 
 덕흥마을 부녀회원들. 음식 장만을 하며 즐겁게 일했다.
 덕흥마을 부녀회원들. 음식 장만을 하며 즐겁게 일했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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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미스코리~ 아니, 덕흥마을 청년회랍니다.
 우리는 미스코리~ 아니, 덕흥마을 청년회랍니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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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인 부녀회장은 "행사 준비하려면 일손이 많이 들지만 여러 부녀회원님들이 도와주셔서 즐겁게 일하고 있다"며 "마을주민 분들이 거의 2년 만에 모이시니까 보기만 해도 기분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부녀회원들은 음식 차림을 하느라 바쁘게 움직이면서 서로 눈빛이 마주칠라치면 웃음꽃을 피우며 즐거워했다.

영화 보며 눈물 흘리기도

행사장 한 편에서 아빠와 장난을 치고 있던 장예진(동산초등학교 4학년) 학생은 "여기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한 집에 살아서 정말 좋다"면서 수줍어했다.

아빠 장홍필씨는 "우리 마을에 초등학생은 예진이 밖에 없어서 학교 다녀온 후에는 조금 심심해한다"면서 "다행히 윗마을에 또래 친구가 있어서 자전거 타고 놀러갔다 오곤 한다"고 말했다.

복흥 동산초등학교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두 1학급으로 각 학년 별로 5~7명의 학생들이 다니고 있단다. 농촌 시골마을에서 초등학교 친구를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

영화는 모정 안쪽에 화면을 설치하고 <장수상회>(주연 박근형ㆍ윤여정)를 상영했다. 박근형과 윤여정은 주민들에게 익숙한 배우고, 노년의 가슴 뭉클한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어서인지 주민들은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마치 화면 속으로 들어갈 듯이 진지했다.

안광일(50) 이장은 "오늘 백중행사는 '직불금 수령자 공동체활동'이라고 코로나 사적모임 금지 사항에 저촉 받지 않는 내용이어서 다행히 주민들과 방역수칙을 지키면서 한 자리에 모일 수 있게 됐다"면서 "우리 마을에서 영정사진을 찍는 것도 처음이고 주민들이 함께 영화 관람을 하는 것도 처음"이라고 말했다.

영정사진과 마실 극장 등 '찾아가는 문화배달'은 농식품부 시군역량강화사업으로 과소화마을이나 고령화로 외출 등이 어려운 마을을 찾아가 문화 공연 등을 하면서 주민 간 소통의 장을 넓히고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순창군농촌종합지원센터는 지속적으로 각 읍ㆍ면 마을을 찾아 문화배달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은지 순창군농촌종합지원센터 팀장은 "마실 극장은 이번이 7번째 마을로 그동안 <장수상회>,<수상한 그녀>, <국제시장> 등을 상영했다"면서 "어르신들이 영화를 보시면서 옛 생각이 나시는지 눈물을 흘리시기도 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마을 모정에 모여 영화 '장수상회'를 관람했다.
 주민들이 마을 모정에 모여 영화 "장수상회"를 관람했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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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마다 '찾아가는 문화배달'

덕흥마을은 널따란 논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뚝방길처럼 좁은 포장도로를 수백 미터 지나야 나온다. 사십여 명 남짓 사는 덕흥마을은 집집 담장마다 형형색색의 꽃과 나비, 두루미, 호랑이, 소나무 등을 그려 넣었다.

발걸음은 자연스레 시선이 닿는 담장을 따라서 나아갔다. 어느 집 담장, 푸르른 소나무가 그림인지, 발그스레한 얼굴을 감추려 담장 밖으로 고개를 길게 늘어뜨린 능소화가 그림인지 헷갈렸다.

그림만이 아니라 하트모양과 함께 빨간색으로 그려진(!) "그래 너는 웃는 게 예뻐"라는 멋진 글귀도 눈에 쏙 담겼다.

덕흥마을을 떠나오는 길, 영정사진을 찍은 조서운(88) 어르신이 들려준 소박한(!) 소망이 귓가에 맴돌았다.

"코로나가 빨리 끝나야제. 7남매도 보고 싶고. 오늘처럼 마을주민이 모이면 을매나 좋아. 이게 사람 사는 거잖여."

 
 벽화마을인 덕흥마을 집집 담장마다 멋진 그림과 글귀가 그려져 있다.
 벽화마을인 덕흥마을 집집 담장마다 멋진 그림과 글귀가 그려져 있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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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전북 순창군 주간신문 <열린순창> 8월 26일에 보도된 내용을 수정, 보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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