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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한 초기에 뜬금없이 한 소설이 베스트셀러로 역주행했다. 그것은 바로 딘 쿤츠가 무려 40여 년 전에 쓴 <어둠의 눈>이다. 이 작품에는 중국 우한 외곽의 DNA 재조합연구소에서 개발한 '우한-400 바이러스'가 국가의 거대한 음모의 수단으로 등장한다. 

물론 소설의 내용과 현재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전파 양상이 정확히 일치하진 않는다. 단지 '우한'이라는 지명을 40여 년 전에 예측했다는 이유로 <어둠의 눈>은 아직도 국내 온라인 서점 액션/스릴러 분야 20위권에 머무를 정도로 꾸준히 팔리고 있다. 

스티븐 킹도 애꿎게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역시 40여 년 전에 쓴 그의 소설 <스탠드>가 지금의 팬데믹 상황을 정확히 예측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미국 네바다주의 생화학전 연구소에서 슈퍼 독감 바이러스가 유출되며 벌어지는 지구 종말 위기를 담았다. 

딘 쿤츠는 장르 문학계의 비틀즈로 불린다. 스티븐 킹도 롤링 스톤스로 추앙받고 있다. 공교롭게도 전설의 두 작가 모두 같은 시기에 비슷한 주제로 소설을 쓴 것이다. 도대체 40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두 작가는 팬데믹을 다루고 예언했을까.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는 냉전의 절정기였다. 미국과 소련은 전략 무기 제한 협상(Strategic Arms Limitation Talks, SALT)을 하며 핵무기를 줄이기로 했지만, 뒤로는 교묘하게 미사일을 늘리고 있었다. 핵무기로 인한 냉전의 상황은 <그날 이후> 같은 TV 영화로도 만들어져 대중의 공포를 자아냈다.

이런 시대상은 작가와 영화감독들이 인류의 종말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두게 했다. 이른바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가 활발해진 것이다. 딘 쿤츠와 스티븐 킹은 바이러스로 냉전을 환기했다면, 조지 밀러는 <매드 맥스> 시리즈에서 오일 쇼크와 대공황 이후의 암울한 분위기를 카메라에 담았다. 이처럼 장르물은 시대 상황과 사회상황을 반영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장르물이 약진하고 있다. 한 달에 한 권 이상 책을 펴내는 정명섭은 좀비, 추리, 역사팩션을 쓰며 종횡무진이다. 밀리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른 김초엽은 SF 장르에 관심이 없던 독자의 발길을 서점으로 향하게 했다. 
 
<카데바> 표지
 <카데바> 표지
ⓒ 토이필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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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간된 <카데바>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나 SF는 아니지만, 딘 쿤츠와 스티븐 킹의 전매특허인 공포(호러)를 다뤘다. 이 책은 삶과 죽음 그리고 꿈에 관한 열 가지 기담을 담은 단편 소설집이다. 

저자 이스안은 매우 젊은 작가인데 작가의 말을 보니 내공이 만만치 않다. "공포 장르의 묘미는 충격적인 반전이기도 하지만, 저는 이 글에서 이미 암시되고 예견되어 서서히 들춰지는 무언가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나는 간밤에 거실에서 불을 끄고 작은 스탠드에 의지한 채 <카데바>를 읽었는데, 오싹하게 소름이 돋는 경험을 했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잘 만든 한편의 공포 영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내가 느낀 공포는 <카데바>에 우리나라의 사회상이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스안은 누구나 겪었을 법한 습관, 연애, 가족관계, 악몽을 모티프로 삼아 이 책을 썼다. 부부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디테일이 부족한 게 좀 아쉽다. 

10개의 단편은 현실에 공포를 적절히 버무렸다. <버릇>은 작가가 학창 시절 습관이 된 나쁜 행동을 바탕으로 뉴스에 나올만한 결말로 연결한다. <죄악>은 TV 프로그램 <연애의 참견>에 채택될만한 사연인데, 이스안 작가의 친구 이야기란다. 

<고향>의 결말도 반전이 충격적인데 더 충격적인 건 작가가 어릴 적 마주쳤던 변태 아저씨다. 내 여동생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 광분하며 읽었다. 책의 제목인 <카데바>는 연구 목적으로 기증된 해부용 시체를 일컫는다. 작가는 집필을 위해 의과대학에 견학까지 다녀왔단다. 그래서인지 디테일이 다르다. 

<연애상담>은 전개 형식이 독특하다.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 형식을 차용했는데, 게시글과 댓글만으로 작품을 끌어간다. 이외에도 <악몽 그리고 악몽>, <별장괴담회>, <포식>, <네 명의 여자가 살고 있다>, <유서.m4a> 등은 어떤 사연인지 자세히 설명하고 싶은데, 그러면 스포일러가 되니 답답하다. (이래서 장르 소설의 서평은 어렵다.) 

장르물은 사회상을 반영한다. 요즘 뉴스를 보면 한숨만 나온다. 이스안 작가의 다음 작품의 제목은 <여의도>로 했으면 좋겠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고 충격적인 일들은 지금도 이 현실세계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다양한 매체를 접하며 느낍니다. 세상에는 참 황당하고 끔찍하고 믿을 수 없는 사건들이 매일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언제든 내가 누구에게 혹은 무엇에게,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를 내면의 기저에 안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 불안과 공포를 완전히 떨쳐버리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부디 우리 모두가 언제나 안전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mak2story/6)에 중복 게재합니다.


카데바 - 삶 죽음 그리고 꿈에 관한 열 가지 기담

이스안 (지은이), 토이필북스(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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