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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멀리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이 말은 공자의 <논어> 제1권 제1장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흔히들 공자의 말이라면 케케묵은 꼰대 얘기로 치부하는데, 자세히 음미하고 읽으면 대단히 철학적이요, 시대를 초월하는 훌륭한 경세(經世)의 가르침이 담겨있다.

'친구들이 멀리에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하지만 이즈음 내 친구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새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살아있는 친구들 가운데도 멀리 있는 친구를 찾을 만한 이들은 점차 줄어들고 이즈음에는 코로나 19로 그나마 절제하기에 그런 즐거움을 누릴 수 없다.

지난 주말 40년 전에 고교를 졸업한 제자 셋(장원호, 정선영, 박흥세)이 원주 치악산 밑 내 글방으로 찾아왔다(당시 내가 사는 원주는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로, 5명부터 사적 모임이 금지됐다). 모두 코로나 백신 접종을 마쳤다고 하면서 벼르고 벼른 끝에 왔단다.

우리는 가까운 횡성의 한 밥집에서 마음의 점을 찍고 치악산 올레길을 산책하면서 치악산의 정기를 듬뿍 만끽했다. 그런 뒤 치악산 아래 한 찻집에서 이런저런 정담을 나눴다.
    
 수학여행단 학생들이 설악산 비룡폭포로 가고자 출렁다리를 건너고 있다.
 수학여행단 학생들이 설악산 비룡폭포로 가고자 출렁다리를 건너고 있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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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품이 훌륭했던 제자

세 제자 중 두 친구는 올 봄에 다녀간 바 있는데 새로 온 제자는 박흥세 군으로 마음속에 깊이 담겨 있었다. 수많은 제자 가운데 그가 이제까지도 뚜렷이 기억에 남아 있는 건 그의 인품 때문이다.

1980년 여름 끄트머리에 당시 이대부고 2학년 학생 전원은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갔다. 이튿날 오전 일정은 가까운 비룡폭포 계곡 탐방이었다. 비룡폭포로 가는 출렁다리를 건너는데 서울내기 청소년소녀들이 설악의 싱그러운 기운을 만끽하고, 해방감에 젖은 나머지 한 녀석이 앞서간 친구에게 장난삼아 돌팔매질을 했다.

하필이면 그 돌에 한 친구의 안경이 깨지고 눈가에 피가 흐르는 부상을 당했다. 그때 그 학생의 담임인 고용우 선생님이 급히 다친 학생을 데리고 속초도립병원으로 갔다. 비룡폭포 탐방을 마치고 소공원으로 내려온 뒤 백행철 학생부장은 전원을 집합시킨 뒤 돌팔매를 한 학생을 나오게 했다. 워낙 호랑이처럼 무서운 학생주임이라 돌 던진 학생이 겁에 질려 나오지 않았다.

그때 마침 속초병원에 간 학생과 선생님이 택시를 타고 그 현장에 도착했다. 학생은 응급치료 뒤 한 눈은 안대로 보호하고 있었다. 시간이 10~20분 지나도 돌 던진 학생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학생부장이 선언했다.

"정 나오지 않으면 수학여행은 여기서 멈춘다."

그러자 학생들 사이에 '자수해서 광명 찾으라'고 윽박질렀다. 마침내 돌을 던진 한 학생이 고개를 숙인 채 학생부장 앞으로 나갔다. 그때 안대를 한 박흥세 학생이 앞으로 나가 학생부장에게 돌 던진 학생을 용서해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자 백 학생부장은 그 자리에서 돌을 던진 학생을 훈방 조치했다.

아무튼 그해 수학여행은 지금 생각해도 환상적이었다. 미스 유니버스 선발대회, 설악가요제, 각 조마다 촌극과 장기자랑 등으로 밤과 낮이 즐거웠다. 사실 그해 수학여행은 참 힘들게 갔다. 그해 학기 초 부임한 정식영 교장선생님은 '공부하는 학교'를 선언한 뒤, '10월 유신' 선포처럼 교내 모든 행사를 일체 중단시켰다.

그러자 학생도, 교사도 숨통이 죈 듯 몹시 힘들어했다. 그때 내가 교장실로 가서 정규 수업일수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교장선생님을 설득하여 여름방학 중 수학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하여 간신히 승낙을 받았다.

우리 네 사람은 그때의 일화들로 차담을 나누면서 40년 전으로 돌아갔다.

"선생님, 수학여행 때 선생님들이 학생들과 함께 배식받는 장면, 그리고 수학여행에서 돌아온 뒤 여행비 가운데 남은 돈을 원 단위까지 정확히 계산하여 전액 반환한 걸 다른 학교 친구들에게 얼마나 자랑했는지 몰라요. 그때 다른 친구들은 대한민국에 그런 학교가 다 있느냐고 놀랐어요."

박흥세 제자의 말에 내가 새삼 놀라면서 반문했다.

"그걸 자네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가?"

그러자 그 제자가 대답했다.

"제 인생에 그 일을 큰 교훈으로, 졸업 후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는 그 밖에도 고교시절 내가 수업시간에 한 말들을 상기시켰다. 그날 그 자리에서 누구는 누구를 좋아했다는 둥, 40년 전 소년소녀시절로 돌아가 네 사람은 배가 아프도록 깔깔거렸다. 이제는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로 60대를 바라보는 늙은이들의 추억담으로.
 
 치악산 밑 차집에서 만난 사제들(왼쪽부터 장원호, 정선영, 박도, 박흥세)
 치악산 밑 차집에서 만난 사제들(왼쪽부터 장원호, 정선영, 박도, 박흥세)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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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내년 졸업 40주년 기념 모임에 꼭 참석해 주세요."
"코로나가 잠잠하여 그날이 정말 왔으면 좋겠네. 초대 고맙네."


그들 셋이 승용차로 내 집까지 데려다주고 훌쩍 떠나는 차를 향해 나는 돌부처처럼 서서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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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어린이 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 <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 <독립운동가, 청년 안중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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