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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매년 '이번 여름은 잘 났는지, 아쉬웠는지' 결정하는 기준은 물놀이다. 날이 선선해지면 "올해는 한 번도 수영을 못 했어. 지금 물놀이 가면 추울까?" "올해는 물놀이를 세 번은 했다. 좋았어~" 하는 식으로 자체평가를 한다.

나는 '이랬든 저랬든 잘 보냈으면 된 거지. 그런 것을 꼭 따져야 하나' 하고 생각했다. 글을 쓰면서 지난 일상이나 계절, 한 해를 내 마음의 기준으로 돌아보는 일이 의미 있음을 알았다. 먹는 걸 좋아하는 나는 여름 음식을 얼마나 잘 먹었는지 따져보며 마무리하는 것도 좋겠다.

며칠 전이었다. 퇴근 후 마트에 들리니 입구에 복숭아 박스들이 쌓여있었다. 장을 거의 볼 때까지 살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은 옆에 있는 포도상자를 하나 사서 집으로 왔다. 포도는 김치냉장고에 넣어두고 저녁밥을 차렸다.

평소 같으면 설거짓거리를 쌓아놓고 이것저것 다른 일부터 하겠지만 후다닥 해치워버리고 시원해진 포도 한 송이를 꺼냈다. 식초물에 담갔다가 뽀드득 문질렀다. 흐르는 물에 살랑살랑 흔들어 깨끗이 씻었다. 쟁반을 들고 뒤돌아서니 날 보며 웃고 있는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왜 웃어?"
"행복한 게 눈에 보여서."
'뒷모습에도 티가 났나? 알면 자주 사주던가.'


다음 날 저녁 냉장고를 여니 복숭아 한 봉지가 들어있었다. 남편 아니고 시어머니다.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시어머니 덕분에 올여름에도 좋아하는 과일을 마음껏 먹었다. 어머님은 손자가 좋아하는 물렁한 복숭아와 며느리가 좋아하는 딱딱한 복숭아를 번갈아 가져다주셨고, 하우스 귤도 채워놓고 가셨다. 어머님은 과일은 가끔, 반찬은 그보다 자주 채워놓고 가시는데 여름이면 고구마줄기 김치가 들어 있을 때 가장 신난다.

어릴 때 할머니집 마당에서 쌓여있는 고구마 줄기 껍질을 벗기는 게 하나의 놀이였다. 줄기 하나를 일정한 마디로 부러뜨리며 양쪽으로 가르고 잎을 펜던트 삼아 목걸이를 만들기도 하고, 끝부분을 잘 문질러 한 번에 처음부터 끝까지 통째로 벗기면 쾌감이 있었다. 할머니는 그걸 가져다 주로 조갯살을 넣은 볶음반찬을 만드셨다. 지금은 짭짤한 그 맛이 그립지만 그때는 흐물, 미끌거리는 식감이 싫어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고구마줄기로 담그는 김치는 군산에 와서 처음 알았다. 아삭한 식감에 간간한 젓갈향이 입맛에 딱 맞았다. 여름 하면 떠오르는 반찬이다. 따뜻한 밥에 고구마줄기 김치 듬뿍 올리고 달걀 후라이와 고추장 한 숟갈, 참기름을 쓱 두르면 말 그대로 꿀맛이다.

또 여름 하면 시원한 면 요리를 빼놓을 수 없다. 삼겹살과 환상궁합 냉면, 임신 때 처음 먹고 인생 소바가 된 군산 서울소바의 자루소바, 국수는 빼고 우뭇가사리와 오이를 썰어 넣어 마찬가지로 군산의 장미칼국수집 콩물로 만드는 우무콩국.

올여름 이것들을 모두 챙겨 먹을 수는 없었지만 대신 집에서 자주 요리하며 실력이 늘게 된 음식이 하나 있다. 바로 남편이 좋아하는 비빔국수다. 엄마가 해준 비빔국수가 제일 맛있다는 남편 입맛에 맞추려고 시도하길 몇 년째, 드디어 최상의 레시피를 알아냈다.

먼저 김치는 쫑쫑 다진다. 추가로 야채 따위는 필요 없다. 가장 중요한 양념은 다진 김치와 고추장, 간장, 설탕, 소금, 고춧가루, 다진마늘 조금, 깨소금, 참기름을 적당히 넣고 섞어 만든다. 여기서 '적당히'에 바로 몇 년 동안 노력해서 익히게 된 그것이 포함되는데 이건 말로 설명할 수는 없다. 다들 알 것이다. 그게 바로 '손맛'이니까. 마지막으로 쫄깃하게 삶은 국수를 양념에 비벼서 담아낸다. 또 중요한 건 반드시 소면으로 삶아야 한다. 왜냐면 그건 내가 좋아하니까.

너무나 주관적 레시피와 평가 기준이라는 걸 인정한다. 그래도 쓰고 보니 알겠다. 올여름은 이만하면 맛있었다. 그럼 이제 내가 좋아하는 가을 음식은 뭐가 있더라.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도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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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시골 출신. 조상신의 도움을 받아 소소한 행운을 누리며 군산에서 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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