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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세계의 공장 지위를 반공국가들에게 물려줘 

공장제 생산방식이 도입된 이후 세계의 공장이 된 나라는 영국, 미국, 독일과 일본, 중국 순서다. 미국은 1차 대전과 2차 대전 과정에서 유럽과 달리 산업기반 시설이 전혀 손상받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은 전쟁 물자를 대량 생산함으로써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하였다.

또한 2차 대전 직후 전쟁 동안 억제되었던 국내외 소비가 활성화되면서 미국은 소비재를 대량 생산하면서 장기 호황을 누렸다. 또한 전쟁채권국으로서 달러의 지배력을 향유하였다. 그런데 미소 냉전이 격화되면서 미국은 유럽과 아시아에서 소련을 봉쇄하기 위한 군사적 기지가 필요해졌다.

이런 이유로 미국은 전후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을 후방 병참기지로 만들기 위해 경제적으로 부흥시켰다. 또한 미국은 중국과 소련 및 북한 등 공산권과 대치하고 있는 대만과 한국을 반공 전방기지로 육성하는 쇼 윈도우 정책을 추진하였다.

미국, 플라자합의를 강요하여 독일과 일본의 경제적 추격에 타격

미국의 부흥정책으로 인해 독일과 일본의 미국에 대한 공산품 무역량이 급증하였다. 1985년 미국의 무역적자 중 일본과 독일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37.2% 및 9.1%였다. 이에 미국은 무역적자를 줄이고, 자신의 공업을 보호하기 위해 1985년 독일과 일본, 프랑스, 영국 등에게 플라자 합의(Plaza Accord, Plaza Agreement)를 강요하였다.

플라자 합의에 따라 5개 국가는 외환시장에 개입하여 달러화를 평가절하 시켰다. 그 결과 미국의 공산품 가격이 하락하여 무역적자가 일부 개선되었다. 또한 미국은 독일과 일본에게 수출억제, 내수확대 정책을 강요하였다. 그 결과 세계 공장으로서 독일과 일본의 위상은 추락하였다.

독일의 경우 유럽연합 내의 무역이 증가하면서 플라자 합의에 따른 타격을 일부 완화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높은 일본은 큰 타격을 입었다.  일본의 경우 달러 가치가 떨어지자 미국 자산 사들이기, 자금이 싼 나라로의 공장 이전 등이 계속되었다. 일본 제조업의 해외생산 비중은 1985년 2.9%에서 1990년 6.0%로 두 배 이상 상승하였다.

일본 국내총생산 증가율은 플라자 합의 이후 1%대로 하락하였다. 일본이 플라자 합의 이후 경제 모델을 내수 주도형으로 전환하고자 통화 확대정책을 실시한 것이 경제에 부정적으로 작용하였다. 일본의 저금리 정책이 부동산이나 주식 투기를 가속화하여 거품 경제를 초래하였다. 일본은 1991년 이후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장기불황에 빠졌다. 일본의 무역이 타격을 받는 동안, 한국과 대만 등 친미 신흥개발도상국의 무역이 급증하였다.

미국, 소비재 생산의 분업국가로서 일본이 아닌 중국을 선택

중국은 1979년 미국과의 외교관계 수립 이후 점차 해외 자본의 유입을 허용하였다. 1990년을 전후로 하여 서방의 자본이 낮은 임금과 값싼 부지를 얻을 수 있는 중국에 쇄도하였다. 중국은 일본이 주춤한 사이 경공업 제품을 기반으로 무역을 증대시켰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의 가입 이후 관세가 인하되고 무역장벽이 낮아지자,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하였다.

미국이 왜 중국의 개혁개방에 힘을 실어주고, 세계무역기구 가입에 적극적이었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미국의 경우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서 저임금을 바탕으로 하는 공장산업에서의 경쟁력을 상실하였다. 따라서 미국은 금융, 서비스, 지적재산권, 첨단산업, 군수산업 등 고부가가치산업에 집중하게 되었다.

미국은 국내 소비자의 복지를 위해 값싼 공산품을 생산해 줄 공업국가가 필요하였다. 그 결과 미국의 고부가치산업과 개발도상국의 소비재 산업이라는 세계 분업 체제가 형성되었다. 미국은 정치군사적 이해관계에서 자국에 소비재를 조달하는 분업 국가를 선택하였다. 소련 봉쇄를 위해 독일과 일본의 경제를 부흥시켰고, 대만과 한국의 경제성장도 이런 배경이었다.

독일과 일본, 정치군사적 종속 때문에 미국의 플라자 요구를 수용

1970년대 이후 독일과 일본은 경공업뿐만 아니라 자동차 등 중공업 분야에서도 미국의 산업을 잠식하기 시작하였다. 미국은 독일과 일본이 미국의 경제규모를 추월하고 경제력을 바탕으로 정치군사적으로도 미국의 경쟁자가 될 것을 두려워하였다.

미국은 자국의 중공업을 보호하고 과거의 적국이었던 독일과 일본의 성장세를 꺾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플라자합의를 독일과 일본에게 강요하였다. 플라자합의가 가능했던 이유는 미국이 승전국으로서 독일과 일본의 정책에 개입할 수 있는 정치군사적 지배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냉전구도에서 미국에 의해 군사적 주권을 박탈당하고 있는 독일과 일본은 미국의 요구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어차피 공업국가와 분업체제를 유지해야 하는 미국의 입장에선 분업의 상대방을 독일과 일본에서 중국으로 전환한 셈이었다.

 
중국의 수출은 주로 소비재이며, 초기 경공업 완성재에서 선진국과의 분업에 따라 조립 부품의 증가로 확산되고 있다.
▲ 중국의 주요 품목별 수출량 변화 중국의 수출은 주로 소비재이며, 초기 경공업 완성재에서 선진국과의 분업에 따라 조립 부품의 증가로 확산되고 있다.
ⓒ 세계은행자료(BBC 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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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지도층, 경제적으로 친미하면 정치군사적으로도 친미한다고 확신

그렇다면 미국은 왜 공산국가인 중국의 무역성장에 힘을 실어주었을까? 미국의 안보전략은 소련, 중국, 이슬람세력을 약화시키고 이들이 서로 동맹을 맺지 못하도록 분열시키는 것이다. 또한 미국식 모델을 전 세계에 확산시켜 주요 국가들이 미국을 적대국가가 아닌 롤모델로 삼도록 하는 것이다.

즉 군사적 지배보다 미국 체제로의 동화가 훨씬 중요한 안보수단이다. 최근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미국이 미국식 국가를 만드는 네이션빌딩에 천문학적 비용을 조달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소련, 중국, 이슬람을 미국화하는 수단은 미국의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를 이들 나라에 자연스럽게 이식하는 것이다. 미국의 지도자들은 경제의 자유화는 결국 정치의 자유화를 불러들인다고 확신하고 있다.

독일과 일본, 소련에서 성공했던 체제전환전략을 중국에도 적용

먼저 경제를 자유화시키면 자발적으로 정치체제도 미국식 자유주의 체제를 수용한다는 안보전략은 체제전환정책이다. 이는 미국의 군사력이 아닌 대량 소비, 할리우드 문화, 기독교 등 소프트 파워에 근거한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은 군국주의국가인 독일과 일본에 경제자유화를 기반으로 정치의 자유화 즉 자본주의 정치경제 체제를 구축하였다. 소련 역시 개혁과 개방을 통해 결국 해체되었고 구소련의 국가들은 자본주의를 받아 들였다.

특히 러시아의 경우 소련 붕괴 이후 자유화되었다. 엘친 대통령은 퇴임할 때까지 미국의 정치경제적 지원에 의존하는 등 사실상 미국의 후견을 받아왔다. 2000년 1월 1일 푸틴이 엘친의 지명을 받아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지만 러시아는 그 이후에도 상당기간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자본주의 경제와 문화는 중국공산당을 몰락시키는 정치자유화를 촉진시켜

미국은 독일과 일본, 소련에 대한 이러한 체제전환전략이 성공하였다고 확신하였고 이러한 전략은 중국에도 실현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따라서 미국의 정치지도자들은 중국이 원하는 경제성장을 자유시장, 무역의 자유화를 통해 이루도록 한다면 정치적 자유화도 확산될 것이라고 보았다.

미국의 지배층들은 즉 자유무역과 같은 경제자유화는 헐리우드 문화와 히피 문화와 같은 자본주의 문화와 정치자유화를 확산시킬 것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문화자유화와 정치자유화에 따라 중국인들이 언론의 자유와 선거의 자유를 요구할 것이라고 보았다. 미국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소련의 경우처럼 중국의 공산당 일당체제도 스스로 붕괴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나아가 중국이 자유무역 중심의 경제성장으로 세계자본주의 분업체제로 종속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렇게 되면 세계자본주의를 지배하고 있는 서방에 대한 중국의 의존도가 높아져 중국 공산당이 서방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정치적 자유화를 탄압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았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미국은 살아남을까>, <코리아를 뒤흔든 100년의 국제정세> 등을 저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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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에서 12년간 기관지위원회와 정책연구소에서 일했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 『연방제 통일과 새로운 공화국』, 『미국은 살아남을까』, 『코리아를 흔든 100년의 국제정세』, 『 마르크스의 실천과 이론』 등의 저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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