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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권위가 여론조사 기관에 의뢰해 조사·발표한 '온라인 혐오표현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절반 이상이 '코로나19 이후 혐오와 차별이 증가했다'고 답했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시작된 지 1년 8개월여, 오마이뉴스는 '일상의 혐오'를 통해 불과 몇 년 사이 우리 삶에 깊숙이 파고든 '혐오'의 맨얼굴을 시민기자들의 경험담을 통해 마주하고자 합니다. 다른 시민기자들의 글도 적극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안산이 페미네 뭐네 하면서 공격을 당하는 것도 그가 광주 사람이어서 그런지도 몰라."

얼마 전 안산 선수가 느닷없는 페미 논란에 휩싸였을 때, 주위로부터 심심찮게 들었던 이야기다. 처음엔 올림픽 양궁 3관왕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그를 시샘하는 것쯤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디서나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몽니 부리는 지질한 인간들은 있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황색 언론의 좋은 먹잇감이 되면서 최근까지도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페미니까 금메달을 박탈해야 한다는 얼토당토않은 주장까지 버젓이 다루면서 사회적 갈등을 부추겼다. 그저 '미친놈의 헛소리'로 무시할 법한 것도 그들에겐 쏠쏠한 기삿거리가 된다.

언론은 그가 페미니스트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논란으로 그가 겪게 될 고통에도 아무런 관심이 없다. 심지어 공인이자 '셀럽'으로서 감내해야 할 당연한 의무라고 훈계한다. 그의 인지도를 활용해 클릭 수를 늘릴 궁리만 할 뿐, 옳고 그름은 애초 고려 대상이 아니다.

나치의 선전 장관 요제프 괴벨스가 그랬던가. '대중은 거짓말을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다음엔 의심하지만 되풀이하면 결국에는 믿게 된다'고. 이미 인터넷 포털엔 그의 이름과 페미가 연관 검색어의 맨 윗자리를 차지한다. 뒤집어 페미를 쳐도 안산이 연관 검색어에 뜰 정도다.

지역 차별 정서마저 끄집어낸 페미 논란
 
도쿄올림픽 양궁 여자 국가대표 안산 선수
 도쿄올림픽 양궁 여자 국가대표 안산 선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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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넘도록 언론과 인터넷, SNS 등에 도배되다시피 한 터라 이젠 당사자의 뜻은 중요하지 않게 돼 버렸다. 개인의 신념을 엉뚱한 타인이 규정하고 제멋대로 조리돌리는 형국이다. 하루아침에 양궁 선수 안산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페미니스트로 낙인찍히게 됐다. 

이후 페미 논란은 야당 대변인의 황당한 발언이 이어지면서 전선이 확대됐다. 평소 SNS에 '남혐' 용어를 사용한 것이 잘못이라며 되레 안산 선수에 책임을 돌린 것이다. 다시 언론이 끼어들면서 꺼져가던 불씨를 타오르게 했고, 페미는 모든 이에게 부담스러운 단어가 돼 버렸다.

이 와중에 페미는 종교처럼 대화 중에 꺼내서는 안 될 '금기어'가 됐다. 자칫 감정 섞인 말다툼으로 번질 수 있어서다. 언젠가 대학생이 된 제자들이 소개팅을 나가기 전 페미인지 아닌지 '사상 검증'을 마친 뒤 만나는 게 안전하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얄궂게도 페미 논란은 가슴속 깊숙이 감춰져 있던 이곳 광주 사람들의 뿌리 깊은 지역 차별 정서마저 끄집어냈다. 만약 안산 선수가 광주가 아닌 타지 사람이었다면 이토록 거센 백래시가 나타나진 않았을 거라고들 했다.

근래 들어 SNS에 '광주는 레알 페미의 도시'라는 글이 나돌고 있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광주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죄다 꼴페미'라는 조롱 글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그렇게 느닷없이 광주는 페미니스트의 고장으로 명명됐다. 단어 뜻대로라면 딱히 문제 될 게 없는 수식어지만, 페미가 악의적으로 활용되는 우리 사회에서는 또 다른 차별의 근거가 되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 선 '이대남'은 물론, 페미에 무관심한 지역의 중장년층조차 민감해 하는 이유다. 

일부에선 광주를 폄훼하고 조롱하기 위해 페미에 대한 반감을 부러 끌어들인 거라는 억측까지 내놓고 있다. 페미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다시 SNS를 통해 지역 차별로 이어지는 현상을 달리 해석하기 힘들다는 거다.

상처는 오롯이 광주와 전라도 사람들의 몫

광주를 비롯한 전라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별 의식은 무척이나 뿌리가 깊다. 이번 페미 논란과 같은 막무가내 주장이 여러 매체를 통해 이슈처럼 퍼지면서 사람들이 마침내 사실인 양 받아들이게 되는 구조를 오랫동안 봐왔다. '기, 승, 전, 전라도 혐오'는 당연한 귀결이었다.

상처는 오롯이 피해자, 곧 광주와 전라도 사람들의 몫이었다. 특히 5.18 민주화운동처럼 이미 역사적 평가가 끝난 사건마저도 왜곡하는 혐오 발언을 일삼는 이들이 준 고통은 컸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는 강자들의 전유물이 되어 약자들을 공격하는 데 쓰였다.

숱한 차별과 혐오로 인한 고통은 지역민이 숙명처럼 안고 사는 집단적 피해 의식과 자학으로 이어졌다. 안산 선수에게 페미라는 낙인을 찍듯 광주와 전라도 사람들에게는 '차별을 당해도 싸다'는 편견이 덧씌워졌다. '홍어'와 '일곱 시', '절라디언'이니 하는 말도 그렇게 지어졌다.

전라도 사람들이 뒤통수를 잘 친다거나 전라도 사람들은 성직자들도 자기들끼리만 모인다는 근거 없는 이야기도 사실처럼 받아들여진다. '까보전'이라는 조롱은 어린아이들조차 알고 있을 정도다. '까고 보니 전라도'라는 뜻의 줄임말로, 대표적인 지역 혐오 표현이다. 

심지어 고향을 속이고 사투리를 감추려 한다며 배신자와 사기꾼 기질이 농후하다는 조롱도 서슴지 않는다. 이는 공공연한 차별과 혐오를 피하려는 몸부림인데도, 그걸 다시 문제 삼아 차별과 혐오를 일삼는 악순환이다. 이쯤 되면,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굴레라 해야 할 성싶다. 

오랜 차별·혐오 겪은 지역민들... 대체 왜?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이 8월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일대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이 8월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일대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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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포자기의 마음에서일까. 가해자들은 여전히 기세등등한데, 되레 피해자가 잔뜩 주눅이 들어 움츠리는 모양새다. 놀랍게도 오랫동안 차별과 혐오에 시달려온 지역민의 입에서조차 그런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이유 없이 폭력을 당해놓고 때린 사람을 두둔하는 꼴이다.

"전라도에 대한 차별이 어디 어제오늘의 일인가. 천여 년 전 후삼국 시대부터 고려와 조선 시대 내내 이어진 폐습인데, 쉽게 해결될 리 만무하지 않나."

얼마 전 지역 차별을 주제로 지인들과 나눈 대화에서 나왔던 이야기다. 그는 군대에 간 것 말고는 광주를 벗어난 적이 없는 토박이다. 역사까지 끌어들인 그의 자학적인 주장은 분명 왜곡과 과장 일색이었지만, 당시 함께 있던 이들은 설득력이 있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의 논리는 단순했다. 견훤의 후백제가 왕건의 손에 멸망하고 고려에 복속됐다는 점, 호남 사람들을 등용하지 말라는 고려 초 훈요 10조의 내용, 조선 중기 기축옥사 때 반역향으로 낙인찍힌 점 등을 거론했다. 동학농민운동과 구한말 의병운동, 나아가 해방 후 여순사건이 전라도에서 불붙은 것도 지역 차별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거다. 

알다시피, 후백제의 멸망은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없으며 훈요 10조는 후대에 조작되었다는 게 통설이다. 100년이 지나 발견된 데다 왕건을 대신해 죽은 충신 신숭겸은 전라도 출신이었다. 또 기축옥사 때 전라도 사림세력의 몰락은 동인과 서인 간 당쟁의 결과일 뿐, 특정 지역 탓으로 돌릴 순 없다. 반역향이라는 서슬 퍼런 단어 역시 훗날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더욱 황당한 건, 부패한 봉건왕조와 일제의 침탈, 불의한 공권력에 맞선 항거를 한낱 지역 차별이 원인인 양 스스로 낮잡아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전라도 사람들의 의로움을 기리고 칭찬할 일이지 폄훼해서는 곤란하다. 잘못된 지식을 자기 확신의 근거로 삼는 건 위험하다. 

그에게 지역 차별은 상수였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현대사만 놓고 봐도 전라도 사람들의 공은 작지 않다. 그들의 선택과 행동은 그때마다 역사의 큰 물줄기를 바꿨다. 일제강점기 광주학생항일운동과 해방 후 4.19가 그랬고, 5.18과 6월 민주항쟁이 그랬다. 지역 갈등이 첨예하던 시절, 기꺼이 경상도 출신 노무현을 대통령 후보로 선택한 곳도 다름 아닌 전라도 광주다.

자랑스러워해야 할 역사를 되레 지역 차별의 근거로 삼는 이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표현의 자유를 방패 삼아 지역 차별과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현실에 굴복한 걸까. '거짓말도 되풀이하면 결국엔 믿게 된다'는 괴벨스의 선전술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선 여전히 유효하다. 

전라도에 대한 차별의 역사가 유구하다는 그에게 사실 왜곡으로 인한 오류라고 지적했더니, 대뜸 그럼 납득할 만한 지역 차별의 근거를 대보라고 했다. 그에게 지역 차별은 '상수'였다. 해방 후 파렴치한 정치인들이 사익을 위해 부추긴 적폐라는 설명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계속되는 페미 논란에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안산 선수의 모습을 지켜봤다. 당찬 그는 지역 차별과 혐오 발언 따위로 주눅이 들진 않을 것이다. 그보다 '미친놈의 헛소리'를 여론이랍시고 전하는 언론과 SNS를 통해 공유하는 자들로 인해 전라도 사람들의 집단적 피해 의식과 자학이 더 심해지지나 않을지 걱정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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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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