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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성수역에 전시되어 있음
▲ 구두 테마 공간 현재 성수역에 전시되어 있음
ⓒ 박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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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성동구청에서 마련한 성수역 구두 테마 공간 환경개선을 위한 간담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현재 성수역에 전시된 구두 테마 공간이 점점 시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시설물도 낡은 상태라 기존의 구두 테마 공간을 개선해서 성수동 수제화 거리를 알리고 지역 활성화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성동구청의 환경개선 계획을 들을 수 있는 자리였다.

현재 성수역 구두 테마 공간에는 구두의 역사와 제작과정을 모여주는 모형 등이 전시되어 있다. 사실 구두의 역사에 대한 콘텐츠들은 구두 테마 공간에 필요한 것이긴 하다. 테마 공간을 살펴보면 여러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신는 구두가 보편화하기까지 '1880년대 서재필 등 개화파 인물들과 민영익 등 미국, 일본에서 귀국한 외교관들'이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구두를 소개했다는 역사 이야기도 알 수 있고, 구두와 함께 그 시대 신여성들의 모습도 그림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사진 중에는 흥선대원군의 장남이며 고종의 형인 흥친왕이 구두를 신고 찍은 1910년대의 사진도 있다. 구두 제작과정 모형도 있어서 나름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부분도 있으나 그런 전시 공간에 시민들이 머물지 않으니 필자로서는 구두 테마 공간에 투자한 세금과 노력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수역에 전시된 구두를 신은 흥친왕의 사진
▲ 구두의 역사  성수역에 전시된 구두를 신은 흥친왕의 사진
ⓒ 박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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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에 성동구청에서 해당 전시공간을 다시 탈바꿈하는 데 꽤 많은 예산을 들인다고 한다. 소중한 혈세가 다시 투입되는 것이기도 하고 성수역 근처에서 수제화 공방을 운영하는 필자로서는 구두 테마 공간의 환경개선에 제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해당 전시공간이 성공적으로 탈바꿈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각 지자체에서 많은 예산을 투입하여 지역의 환경개선을 하지만, 사람이 머물지 않으면 투입된 예산에 비해 활용도가 낮으니 그 가치를 쓸모 있게 증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환경으로 개선되길 바라며 필자 나름 그 공간을 어떻게 바꾸면 좋을까를 고민하다가 성수역의 전시공간에서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이유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구두 제작 체험공간도 있으면 좋겠으나, 생업에 바쁜 수제화 장인들이 매번 체험공간에 상주해 있기란 쉽지 않은 부분이다.

또, 상설로 운영되지 않고 가끔 일회성으로 운영된다면 구두 테마 공간은 또다시 시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늘 상설로 할 수 있고, 구두 테마 공간에서 좀 더 체류할 수 있으며, 구두와 어울리는 콘텐츠로 조선의 커피, '양탕국'을 생각해보았다.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무료공간을 구두 테마 공간 곳곳에 마련하는 것도 함께해서 말이다.

커피라면 성수동에도 카페가 많아서 흔한데 굳이 양탕국을 생각하게 된 것은 그것이 양화의 역사와 함께 말할 수 있는 커피이기 때문이다. 조선과 대한제국 사이 변화의 시기, 양탕국와 함께 양화, 양복, 양장 등 서양 문화 양식이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양탕국하면 다소 낯선 이름이겠지만, 우리나라에 커피가 들어왔을 때 우리말로 명명한 이름이었다.

현재 대한민국 곳곳에 있는 커피는 해외 브랜드 커피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양탕국은 우리나라의 문화가 진하게 배어있고 역사적인 추억도 함께 엿볼 수 있는 커피다. 고종황제가 명성 황후를 잃고 약 1년간 지냈던 러시아 공사관에서 커피를 접하게 되었고 덕수궁으로 돌아와서도 커피 맛을 못 잊어 자주 마셨다고 한다. 커피를 우리나라 말로 명명하여 '양탕국'이라 하였는데, 한국에서는 경상남도 하동에 양탕국 체험 마을에서 그 시대의 양탕국을 맛볼 수 있다.
  
양탕국을 만드는 방식은 우림식, 절임식, 달임식, 감응식 등으로 할 수 있는데 방식도 우리 고유의 방식이고 양탕국을 사발 그릇에 담아 식혜나 숭늉처럼 마실 수 있게 담아내는 방식도 지금의 커피와는 사뭇 다르다. 바로 이 양탕국을 성수역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맛볼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양탕국을 만들고 전하는 고유의 방식은 하동의 양탕국 체험 마을과 제휴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로열티를 지급해야 한다면, 해외 커피 브랜드에 지급하여 자금이 국외로 빠져나가는 것보다 우리나라 그 시절의 문화를 전하는 양탕국 체험 마을에 지급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하동의 양탕국 체험 마을도 함께 알리며 구두의 역사와 함께 그 시대의 역사를 양탕국의 향과 더불어 소환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성수역 2번 출구에서 1번 출구의 수제화 거리
▲ 성수 수제화 거리 성수역 2번 출구에서 1번 출구의 수제화 거리
ⓒ 박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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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역 2번 출구에 위치
▲ 성수 수제화 거리 성수역 2번 출구에 위치
ⓒ 박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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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사업을 성수문화재단과 같은 비영리단체가 공익적으로 하면 성수역 상가 임대료도 개인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장보다 훨씬 적게 책정되니 비영리 문화사업의 하나로 해볼 만하지 않을까. 구두 테마 공간 곳곳에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하면 양탕국을 마시며 양탕국을 비롯해 양화, 양복, 양장 등이 우리 역사에 함께 했던 시절을 시민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성수역 구두 테마 공간을 양탕국, 양화점, 양복점, 양장점 등 그 시대의 이야기들로 채우고, 곳곳에 사람들이 머물며 양탕국 한 잔을 마시고 쉬게 하면 그 자체만으로 시설물이 지니는 활용도가 있다. 시민들이 그렇게 휴식을 취하면서 구두 테마 공간의 전시물을 감상한 후에 성수역 밖으로 나와 1번 출구에서 2번 출구, 그리고 연무장길과 뚝섬길로 이어진 수제화 거리에서 양화점과 같은 맞춤 구두도 경험해 보고, 오늘날의 구두도 경험하는 등 다양한 수제화를 만끽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성수동이 지닌 문화적 가치가 임대료 인상 등의 젠트리피케이션에도 흔들리지 않고 지켜질 수 있도록, 성수역의 변화를 시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훗날 양화점과 양탄국에 더해 양복점과 양장점도 함께 한다면 더욱 빛이 나지 않을까. 그것이 나의 작은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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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동안 수제화장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왔다. 이 손때 묻은 직업이 사라지기 전에 더 아름답게 만들어가고 싶다. 현재 '아빠는구두장이' 대표 수제화장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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