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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글쓰기 그룹 '대체왜하니?'는 초4에서 중3까지 10대 사춘기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엄마 시민기자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편집자말]
입시 결과보다 더 의아한 건 아이의 태도라고 했다.
 입시 결과보다 더 의아한 건 아이의 태도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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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 얘는 도대체가 승부욕이 없어. 이 앙다물고 해봐야겠다는 생각 자체가 없다니까."

얼마 전 영재고 시험에서 아깝게 떨어진 딸내미의 흉을 보며 친구가 전화를 해왔다. 초등학생 때부터 워낙 두각을 나타냈던 아이라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었을 친구는 사실, 입시 결과보다 더 의아한 건 아이의 태도라고 했다.

'이것 아니면 안 돼, 난 꼭 해내고 말 거야!' 이런 승부욕이나 간절함이 없는 것은 물론, 이왕 준비해오던 것이니 악착같이 합격을 위해 달렸으면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떨어지고 나서도 별로 속상해하지 않더란다. 이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에 친구와 공감대를 형성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별반 다르지 않은 우리 딸이 생각났다.

일주일을 '도장 깨기'식으로 살아가는 중학생 딸 

나의 딸은 일주일 단위의 목표를 가지고 산다. 아니 목표라기보다는 일주일 단위로 반복되는 일명 '도장 깨기'식의 반복되는 패턴으로 산다. 일주일 내내 이어지는 학원들과 거기에 따라오는 숙제들로 주말 저녁이 되면 아이는 그야말로 녹초가 되는데, 성취감은 잠시,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무한 반복된다는 것이 이 생활의 특징이다.

매일매일 학원에 가는 건 아니지만 학원이 없는 날에도 부족한 공부를 하는 일 따윈 아이의 계획엔 없다. 마치 숙제 이외의 공부는 하지 않기가 법칙인 듯 쉬는 시간에는 무조건 유튜브를 본다.

'시간이 있을 때 부족한 공부를 해야지'라고 다그쳐도 봤고, 지금 해두면 나중에 편하다는 하나마나 한 이야기도 해봤다. 그뿐인가,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든지 <영어 1등급 만들기> <수학 잘하는 아이> 이런 책들을 살포시 책상 위에 올려놓기도 했었는데 아이는 나의 잔소리에 진심으로 상처를 받았다.

간절함이 뚝뚝 묻어날 뿐만 아니라 공부하는 방법까지 친절하게 나와 있는 이런 책들은 읽기만 해도 저절로 공부가 될 것 같은데, 아이의 눈에는 그 책의 메시지가 그렇게도 듣기 싫은 소리였나 보았다. 학원과 학교에서 질리도록 들었다는 아이 앞에서 막연함이 몰려왔다.

하루치 숙제를 도장 깨듯 해나가기도 바쁜 아이들에게 장기 목표라니 언감생심일 테지만, 그래도 뭔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장밋빛 미래 정도는 있어야 차디찬 학원 강의실에서 버틸 맛이 나지 않을까 싶어 나는 실없는 소리를 아이에게 건네 보았다.

"○○아, 대학 가면 연애도 많이 하고, 친구들이랑도 많이 놀아. ○○이는 좋겠다. 몇 년만 참으면 캠퍼스 낭만이 기다리고 있잖아! 옛날에 말이야, 엄마 대학 때는~"

안 그러려고 했는데 이어지는 '라떼는~'에 듣고 있던 아이가 슬쩍 웃으며 한마디를 건넨다.

"엄마, 나 대학생활에 아무 환상도 없어."

아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누가 창창한 우리 열여섯 살 소녀의 찬란한 미래에 이다지도 찬물을 끼얹었단 말인가? 이어지는 아이의 대답에 나는 할 말을 잊었다.

"엄마, 선생님들이 이미 다 이야기해 줬어. 우리 때는 대학에 가서도 어차피 공부해야 된다고. 취업 준비해야 돼서 놀 시간도 없대."

대답할 말이 없어 얼버무리고 말았지만 얼굴도 모르는 그 선생님이 좀 야속했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지만 아직 입시 공부를 시작도 안한 아이들에게 그렇게 진실을 콕 짚어 이야기할 필요가 있었나. 착한 거짓말쯤 해줄 수도 있었을 텐데.

먼 미래가 아니라, 현실을 즐겁게 살 수 있는 힘
 
인스타그램에 '갓생살기'를 검색하면 나오는 여러 인증 게시물들.
 인스타그램에 "갓생살기"를 검색하면 나오는 여러 인증 게시물들.
ⓒ 인스타그램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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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요즘 아이들은 무슨 이유로 공부를 할까. 대학에 가야 한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 치열함의 이유를 모르는 것이 요즘 아이들이다. 우스운 말로 나의 윗 세대의 어른들은 '나라와 집안을 일으켜야지' 하는 국가적인 목표가 있었고, 내 세대에는 좋은 대학 가는 것이 돈을 많이 버는 길이었으니 공부를 했지만, 요즘 아이들에게는 세대를 아우르는 목표가 없는 것이 사실이긴 하다.

그래서일까. 요즘 유행이라는 '갓생살기 프로젝트'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세대에서 유행이긴 하지만 주로 2030이 많이 참여하는 트렌드인 '갓생살기'는 아주 소소한 하루의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지키고 인증샷을 찍어 올리는 일종의 챌린지다. 코로나의 여파로 사람들의 시선이 타인이 아닌 나 자신으로 옮겨진 탓에 삶의 루틴을 재정비하고 삶의 소소한 의미를 찾는 듯한 시도인 것 같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제는 먼 미래의 거창한 목표보다 현실을 즐겁게 살 수 있는 힘, 오늘을 만족스럽게 보내는 것의 가치에 대해서 알려주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말을 할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문득 도전정신 가득했던 지난 올림픽이 생각났다. 결과와 상관없는 값진 승부, 진정한 올림픽 정신으로 무장한 우리 선수들이 써낸 휴먼 감동 드라마, 메달에 연연하지 않았던 우리 선수들이 보여준 건강한 자신감 말이다.

'갓생살기'나 '올림픽 정신'이나 매일매일의 최선에 의미를 둔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이참에 엄마와 함께 올림픽 정신으로 '갓생살기 프로젝트' 한번 하자고 해볼까 하는 참신한 잔소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런. 아이의 대답이 기상천외했다.

"갓생살기? 아, 나 그거 뭔지 알아. 나 그거 해봤어."
"진짜? 해보니까 어때, 뭔가 좀 뿌듯하고 좋아?"
"어!!"


그럼 그렇지, 역시 트렌드의 힘은 무섭구나를 느끼며 회심의 미소를 지으려는 찰나, 아이의 이어지는 말에 뒷목을 잡고 말았다.

"시험 끝나는 날, 메모지에 할 일을 잔뜩 써놓고 하나도 안 지켜 봤거든. 진짜 세세하게 엄청 많이 써놓고 말이야. 근데 엄마, 와~ 진짜 할 일을 하나도 하지 않은 그 쾌감은 말로 할 수 없더라고!!"

황당해하는 내 얼굴 위로 '까르르' 아이의 웃음이 지나갔다. 잔소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가 보다.
 

group대체왜하니 http://omn.kr/group/teen_why
초4에서 중3까지 10대 사춘기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엄마 시민기자들의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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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고 글쓰는 일을 좋아합니다. 따뜻한 사회가 되는 일에 관심이 많고 따뜻한 소통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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