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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내 첫 번째 독자다.
 남편은 내 첫 번째 독자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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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그럼 샤워 안 하고 가야겠다. 하하하."

농원을 가득 메울 것 같은 호탕한 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들려왔다. 나무 방제하느라 고생했겠다 싶어 전화했더니 땀으로 목욕했단다. 시원한 콩국수를 먹어도 땀을 흘리는 남편인데 오죽하랴. 머리끝에서 양말까지 흠뻑 젖어 있을 모습이 떠올랐다.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오늘은 글쓰기 과제물을 검토해 주는 날'이라고 덧붙였더니 다짜고짜 온다는 거였다. 샤워는 즉시 공중분해 되었다. '아이쿠! 못 말려.' 예고편으로 살짝 기대감을 주려했던 내 의도는 빗나가고 말았다.

앞 뒤 가리지 않고 앞장서는 남편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십여 년 전, 공부한답시고 수도권을 수시로 다닐 일이 생기자 차표 예약을 서두르고 새벽에 일어나 데려다 주었다.

자격시험 보는 날은 마땅히 승용차로 가야한다며 대구까지 운전했다.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한마디쯤 하고도 남을 터인데,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남편의 외조는 간혹 이해 안 될 때가 있었다.

"여보, 이번 2박3일 연수가 서울에서 있다는데 갈까 말까 고민이네."
"며칠인데? 데려다줄까?"
"서울을? 데려다 달라는 말이 아니고."
"말만 해. 뭔들 못 해주겠어."


아이들 셋을 놓고 집을 비워야 할 상황이 편치 않아 건네는 말이었지만, 남편은 내 속을 알 리 없었다.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해결사로 돌진하는 바람에 도리어 내가 말리는 입장이 되곤 했다. 결국 고민하고 결정하는 일은 내 몫으로 남았다.

글쓰기를 시작했다는 말도 조심했다. 이미 배움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가지를 하고, 수많은 시간을 흘려보낸 나로서는 스스로도 자신이 없었다. '일기 쓰나 보다' 정도로 알게 하고 싶었다.

"그냥. 한 달에 두 번, 글쓰기 배우는 거야."

그것도 잠시, 아니나 다를까.

<오마이뉴스>에 채택된 글이 올라온 날부터 나는 '남편의 작가님'으로 등단했고, 남편은 '1호 독자님'으로 탄생했다.

"작가님, 잘 잤나요? 작가님, 오늘은 무엇을 쓰셨나요? 어~ 이 작가, 글이 많이 좋아졌네요." 그 때마다 어이없어 웃었더니 그것도 재미있는지 '작가님'을 시도 때도 없이 불러댔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간임을 강조해도 남편에게 작가는 단 한명 '아내'뿐이었다.

나만큼 내 글을 사랑해주는 사람 

자신의 '음악사랑 이야기'가 글이 되고 뉴스가 되자 남편은 아이처럼 신기해했다. 글 속의 주인공이 되고 부터는 지나간 이야기도 상세히 들려주었다. 노트북을 두드리는 내게 남편이 말을 걸었다.

"여보, 요즘 정말 행복해보여."
"내가? 어디가 그렇게 보여?"
"자기가 여행갈 때 표정. 해외여행 갈 때 티켓팅하고 나서 짓는 표정하고 같아."
"아! 그런데, 자기도 좋아하네?"
"우리 각시가 좋아하니까."
"아니, 그런거 말고. 당신이 다른 때보다 더 신나 하잖아."
"음... 대리만족이랄까."


남편은 책이나 글과는 거리가 멀었다. 책 읽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책은 성경책 한권, 글은 스케줄 관리가 전부였다. 그렇게 살아온 남편이 아내가 쓴 글만큼은 심혈을 기울여 몇 번씩 읽었다.

남편에게 초고를 맨 먼저 보여주는 일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맞춤법이라든가 글의 흐름을 독자 입장에서 읽어 달라고 했다. 처음엔 비중 없이 검토 정도로 생각하던 남편은 점점 자신의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독자로서의 사명감과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듯 했다.

글쓰기 도전 7개월 째. 남편은 내 글의 내포독자로 자리를 잡았다. 민낯을 내보여야 하는 민망함도 있지만 허물도 덮어줄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일까. 어설픈 글을 놓고 함께 논쟁하는 일이 요즘 우리 부부가 누리는 작은 행복이고 변화이다.

덧붙이는 글 | 블로그 및 브런치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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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육십부터.. 올해 한살이 된 주부입니다. 글쓰기를 통해 일상이 특별해지는 경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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