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큰입배스
 큰입배스
ⓒ 월간 옥이네

관련사진보기

 
언제부턴가 낯선 생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화천, 건진천과 같은 하천 주변에는 호박·오이 덩굴을 꼭 닮은 덩굴식물이 자랐다. 어디에서 밀려 들어온 건지 모를 이 식물은 순식간에 하천 일대를 뒤덮어 손쓸 수 없게 됐다. 기존에 자라던 식물은 두꺼운 솜이불 밑에 짓눌린 듯 그 아래에서 숨죽였다.

하천 일대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다. 충북 대청호 물밑도 마찬가지였다. 외국에서 왔다는 이 육식어류는 닥치는 대로 토종어류를 먹어 치웠다. 대청호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쏘가리는 이제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낯선 생물은 과수농원과 양봉원에도 찾아와 불청객 취급을 받고 있다. 이들은 누구인가. 어디에서, 어떻게, 왜 머나먼 이곳 땅까지 찾아와 자연과 사람을 괴롭게 하는 걸까.

'생태계교란 생물'. 외래생물 혹은 유전자변형을 통해 생겨나 국내 생태계 균형을 교란하거나 교란할 우려가 있는 야생 생물을 말한다. '생물다양성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제21조 2항에 따라, 1998년 2월에 황소개구리, 큰입배스(배스), 파랑볼우럭(블루길)이 처음 생태계교란 생물로 지정된 이후 확대돼 현재 동물 18종, 식물 16종이 여기에 속해 있다.

최근 옥천에서 특히 골칫거리가 되는 것은 어류 중에선 큰입배스와 파랑볼우럭(블루길), 곤충류로 미국선녀벌레와 등검은말벌, 식물 중에는 가시박이 대표적이다.

어망엔 배스, 나무엔 미국선녀벌레 유충...

손승우씨는 충북 옥천군 안내면 장계리에서 어업을 한다. 하루에 한 번, 어선을 타고 대청호로 향해 익숙한 솜씨로 어망을 걷어 올린다. 내수면어업법에 따라 하루에 어망 두 통이 허락된 포획량이다. 건져낸 어망은 가뿐하다. 그는 "비가 와야 물이 뒤섞여서 물고기가 많이 잡히는데 요즘은 통 비가 안 와서 고기가 안 잡힌다"며 한숨을 쉰다.

더운 날씨에 망 안에 있던 물고기 일부는 이미 허연 배를 드러냈다. 망 안에 담긴 것은 세 종류다. 커다란 녀석은 배스, 작고 넓적한 파란빛을 띠는 것은 블루길, 작고 얇은 것은 누치다. 그는 커다란 배스의 주둥이를 눈앞에 보이고는 "입이 이렇게 커. 배스는 육식어류라 닥치는 대로 토종어류를 잡아먹어"라고 말한다.

잠시 후 두 번째 망을 걷어 올렸다. 기다랗고 힘센 어종이 어망 속에서 꿈틀거린다. "뱀장어네!" 밝은 목소리다. 뱀장어는 손승우씨를 비롯해 어민들이 가장 반기는 어종이다. 그러나 뱀장어는 한 마리뿐, 나머지는 모두 배스와 블루길, 누치다.
 
충북 옥천군 안내면 장계리에서 어업을 하는 손승우씨
 충북 옥천군 안내면 장계리에서 어업을 하는 손승우씨
ⓒ 월간 옥이네

관련사진보기

 
손승우씨의 어망. 외래어종 중 반가운 뱀장어 한 마리가 눈에 띈다.
 손승우씨의 어망. 외래어종 중 반가운 뱀장어 한 마리가 눈에 띈다.
ⓒ 월간 옥이네

관련사진보기

 
옥천군 복숭아, 포도 등 과실 농가 나뭇가지를 자세히 살피면 곳곳에 흰 솜뭉치 같은 것이 붙어있다. 슬쩍 건드리자 투두둑, 떨어지고 몇몇은 날아간다. 솜뭉치는 다름 아닌, 미국선녀벌레 유충이다. 5월경 부화해 7월 중순부터는 서서히 성충으로 성장한다는 미국선녀벌레는 과수농가의 골칫거리다.

이원면 원동리서 복숭아 농사를 하는 곽중섭·김미정씨 부부는 선녀벌레가 부화하는 5월에서 6월 중순, 방제작업을 하며 피해가 없기를 바란다. "미국선녀벌레는 나무줄기 속에 알을 낳아서 가지가 약해지게 만들어요. 성충이 되면 수액을 빨아먹고 가지에 분비물을 내뿜어서 과일 상품성을 떨어뜨리니까 참 안 좋은 거예요."

부부는 입을 모아 말한다. "더 난감한 것은, 방제해도 녀석들이 죽지 않고 산이나 약이 없는 쪽으로 날아갔다가 후에 다시 온다는 거죠." 노린재나 나방류와 같은 기존 해충과는 다른 특징이다.

유인근씨는 20년 넘게 동이면에서 양봉업을 해왔다. 그런 그의 눈에 10여 년 전부터 한두 마리씩 보이던 등검은말벌이, 요즘 들어 부쩍 눈에 띈다. 양봉하는 입장에서 말벌은 종류에 상관없이 무서운 존재다.

"말벌은 육식 곤충이라 꿀벌을 다 잡아먹거든. 제일 무서운 건 장수말벌이야. 벌통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꿀벌 수십 마리씩 물어 죽이지. 근데 미련하게도 꿀벌은 장수말벌 앞에 버티고 서서 대항을 하는 거야. 장수말벌이 떴다 하면, 10분도 안 돼서 벌집 하나가 통째로 없어져."

장수말벌에 비하면 등검은말벌은 꿀벌을 한두 마리씩만 물어가기에 덜 무섭지만, 개체 수가 많아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는 등검은말벌이 늘어나기 시작한 이후로 그와 비슷한 크기의 꼬마장수말벌, 좀말벌 등 토종 말벌이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특히 땅벌은 거의 못 봤어. 어릴 적엔 논밭이나 들에 흔했었는데." 그는 갑작스러운 변화가 걱정스러운 듯 보였다. "살아 있는 것은 다 역할이 있는 법인데 어느 하나가 갑자기 사라지고, 생기고 하면 뭔가 문제가 있는 거야." 기후변화에 민감한 양봉업인 만큼 그는 생태계 변화에 주목했다.
 
과실수에 붙어 있는 하얀 미국 선녀벌레 유충.
 과실수에 붙어 있는 하얀 미국 선녀벌레 유충.
ⓒ 월간 옥이네

관련사진보기

 
등검은말벌
 등검은말벌
ⓒ 월간 옥이네

관련사진보기

 
어디서, 어떻게, 왜 나타났나

군북면 부녀회‧새마을회 여섯 사람(조남옥, 김의숙, 이선자, 손동철, 이영배, 육종호)은 군북면에서 가시박 제거 활동을 한다. 이들 중 대부분이 5~7년 동안 꾸준히 가시박을 제거해왔다. 챙이 긴 모자를 쓰고, 형광색 조끼를 입고 손잡이가 긴 낫을 든 손으로 서화천 일대의 억센 가시박 줄기를 끊어낸다. 올해 5월 말, 작업을 시작한 이후로 같은 장소만 3번째다.

"생명력이 어찌나 강한지, 한번 제거한 곳도 2주 후면 가시박이 무성하다니까. 하루에 30cm씩 큰다는데 뭐." 조남옥 군북면부녀회장은 새로 자라난 가시박을 끊어내 손으로 들어 보였다. 강가의 뽕나무는 속절없이 가시박에 뒤덮였다.

"식물을 가리지 않고 칡덩굴처럼 이렇게 타고 올라가서 나무를 고사시키는 거예요." (손동철 군북면새마을회부회장)

이들의 도움으로 뽕나무는 잠시나마 가시박으로부터 숨통을 틀 수 있었다. 군북면새마을회 육종호씨는 얼마 전 제거 작업 중 독사에 손가락을 물리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가시박 뿌리를 뽑겠다고 손을 넣었는데, 거기 독사가 있었던 거예요. 우거져 있어서 몰랐죠. 독이 올라서 팔이 퉁퉁 붓더라고요." (육종호씨)

바로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은 덕분에 다행히 큰 문제 없이 회복했지만, 가시박 제거는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휴식 시간, 최근 퍼져나가는 코로나19에 대해 이야기하던 이들은 "가시박이 꼭 코로나 같다"며 웃는다.
 
무성하게 자란 가시박
 무성하게 자란 가시박
ⓒ 월간 옥이네

관련사진보기

 
생태계교란 생물은 일부 해충을 제외하곤 대부분 인간이 의도적으로 외국에서 들여온 생물이다. 그중에는 배스, 블루길, 가시박과 같이 실용적인 목적으로 들여온 것도 있지만 애완용으로 유입된 파충류가 야생에 방생되면서 지금의 결과에 이른 것도 있다. 처음 생물을 외국에서 들여올 때는 이들이 생태계를 교란하고 골칫거리가 될 줄은 몰랐을 테다.

생태계교란 생물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유입돼 국내 기후에 완벽하게 적응했다. 기존 생태계의 질서를 깨뜨리고 새로운 상위 포식자가 됐다.

배스‧블루길이 작은 토종어종을 잡아먹고, 등검은말벌이 등장하면서 토종말벌 개체 수가 줄어들고, 가시박이 다른 식물 종을 고사시킨 것처럼 생태계교란 생물은 생물다양성을 해친다.

지금껏 전 세계에서 관찰된 생물 종만 4천3백여 종. 이들에게는 저마다 생태계에서 주어진 역할이 있다. 풀이 없으면 초식동물이 살 수 없고, 초식동물이 없으면 육식동물이 있을 수 없듯, 어느 한 개체가 위태로우면 생태계 전체가 위험하다.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생태계의 일부인 인간 역시 수많은 생물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 일상에서 입고 먹는 것이 다 생태계에서 얻어낸 것이고, 지금껏 산업 발전의 원동력이던 석탄과 석유는 오랜 시간 땅 아래 축적된 생물이 있었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또 우리에게 익숙한 '아스피린'의 원료 살리아산은 버드나무 껍질에서 추출된 물질일 만큼, 생물다양성은 현대의학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이처럼 생물다양성은 식량, 섬유, 물, 에너지, 의약품 생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만, 세계자연기금(WWF)이 짝수 년도마다 발간하는 지구생명보고서(2020)에 따르면, 지구생명지수(LPI)는 급격히 낮아지는 추세다. 1970년부터 2016년까지 관찰된 개체군 수가 3분의 2(68%) 감소한 것이다.

기후 위기와 생물다양성

최근 생물다양성이 급격히 줄어든 주원인은 기후 위기다. 생태계교란 생물의 출현도 기후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위기는 이제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이미 가까이 왔다. 특히 작년 여름은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중부지방에서 54일 지속, 강수량 역시 856mm로 기상청 관측 이래 가장 오랜 시간 많은 비를 쏟아부은 장마였다.

그런가 하면, 같은 해 겨울에는 영하 20도까지 기온이 내려가 여러 농가에서 냉해 피해가 빗발치기도 했다. 그 전년도인 2019년, 따뜻한 겨울 날씨에 대청호가 얼지 않아 안터마을 겨울문화 축제를 열지 못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야말로 '종잡을 수 없는 날씨'다.
 
블루길
 블루길
ⓒ 월간 옥이네

관련사진보기

 
기후변화정부간패널(IPCC) 제5차 평가 보고서(2014)에 따르면 과거 100년간 세계 평균기온이 0.74℃ 상승했고 최근 50년간 평균기온의 상승 추세는 100년간 상승속도의 약 2배에 달한다. 이러한 기후 변화 속에서 생물은 환경에 적응하려 애쓰며 생존할 수 있는 장소로 이동하고 그렇지 못한 생물은 멸종하는 것이다.

보고서는 전 지구의 평균기온이 1.5~2.5℃ 상승하면 동‧식물 종의 약 20~30%가, 4℃ 이상 상승하면 40%가 멸종될 것으로 예측했다. 생존을 위해 생물이 서식지를 옮기는 과정에서 생태계의 균형을 깨뜨리는 '생태계교란 생물' 역시 생겨났다.

생태계교란 생물은 결국, 인간이 만들었다. 본래 생물이 살던 땅에 공장과 아파트가 들어섰고 화석연료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했다. 산업화가 내뿜은 탄소는 공기 중에 퍼져 거대한 열돔이 됐다. 변해버린 환경에 당황한 지구상 여러 생명체는 갈 곳을 잃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최근 2년간, 전 세계 인류를 괴롭게 하는 코로나19 역시 이 과정에서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의 감염원인으로 세 가지 시나리오를 고려하는데, 첫째는 '박쥐가 직접 인간을 감염시킨 것', 둘째는 '천산갑 혹은 밍크 같은 중간 숙주를 거쳐 인간에게 전달된 것', 셋째는 '동물성 음식 재료에 바이러스가 묻어 전파됐을 가능성'이다. 

지난해 2월, 중국 화난농업대학 연구진이 "야생동물로부터 추출한 1000개 샘플을 검사한 결과, 천산갑에서 나온 균주 샘플과 확진 환자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게놈 서열이 99%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밝힌 바 있고 최근 지구온난화에 따라 박쥐들이 열대에서 온대로 서식처를 넓히면서 온대에 모여 사는 인간과 물리적으로 가까워져 있는 것을 보면, 기후 변화와 코로나19 발생의 상관관계는 신빙성 있다.

생태계교란 생물 그리고 코로나19가 생기기까지, 중간에 인간이 있었다. 지난날을 돌아보고 책임감을 지녀야 할 때다.

[관련기사]골칫거리 생태계 ㄹ교란종? 새로운 방법 찾는 지역들 http://omn.kr/1v2n6

월간옥이네 통권 50호(2021년 8월호)
글·사진 한수진


이 기사가 실린 월간 옥이네 구입하기 (https://smartstore.naver.com/monthlyoki)

태그:#옥천
댓글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월간 옥이네는 자치와 자급, 생태를 기본 가치로 삼아 지역 공동체의 역사와 문화, 사람을 담습니다. 구독문의: 043.731.8114 / 구독링크: https://goo.gl/WXgTFK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