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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벽화거리에 걸린 조선의용대 기념사진 : 사진 중 노란색으로 표시된 이가 밀양 출신 윤세주와 김원봉이다.
 밀양 벽화거리에 걸린 조선의용대 기념사진 : 사진 중 노란색으로 표시된 이가 밀양 출신 윤세주와 김원봉이다.
ⓒ 여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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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익희가 중국 국민당정부의 지원을 받아가면서 김원봉 등과 결성한 조선의용대의 일차적 임무는 대적선전공작이었다.

일본군 병사들에게 반전ㆍ염전의 정서를 부식시키고 사기를 저하시켜서 투항을 유도하는 심리전이었다. 또 강제로 일본군에 끌려온 조선청년들을 끌어오는 초모역할도 하였다. 

조선의용대 대원 대부분이 일본어에 능숙하고 일본의 정치ㆍ군사는 물론 문화사정에 밝았기 때문에 선전공작 임무에 가장 적합하였다. 의용대원들은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일본병사들을 선무하는 각종 선전활동을 하고, 혹은 일본군 주둔지역 시가지 도처에 일어로 된 반전 표어와 벽보를 써붙히는 등 적군을 혼란시키는 심리작전을 수행하였다.

의용대의 선전 방식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었다. 일본군 주둔지역 주민들에게 국제정세와 일본군의 만행에 대한 강연ㆍ토론ㆍ창가 등을 통해 항일분위기를 고취시키는 일이다. 또 일본어와 중국어로 된 소책자와 전단ㆍ삐라 등을 수십만 장씩 만들어 살포하고, 일본군이 투항할 때 쓸 신변보호용 통행증도 살포하였다. 

만화ㆍ연ㆍ인형 등의 재료를 수시로 임기응변적으로 활용하기도 했고, 계림과 중경에서 재화일본인민반전동맹의 가지 와다루와 손을 잡고서 일본군 상대의 일어방송을 하기도 했다. (주석 8) 
 
조선의용대에 새로 편입된 여군(1939년)
▲ 조선의용대에 새로 편입된 여군(1939년) 조선의용대에 새로 편입된 여군(1939년)
ⓒ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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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의용대가 대적선전활동만 한 것이 아니었다. 상황에 따라서 중국군과 합동작전을 통해 기습공격이나 매복공격으로 적을 섬멸ㆍ교란하였다. 적의 통신과 교통시설, 전쟁장비를 파괴함으로써 적의 전력을 마비시키는 활동을 하였다.

조선의용대 대원들은 1940년 3월 23일의 매복전에서는 적 탱크 2량과 자동차 8량을 불태우고 적군 약 30~40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하였다. (주석 9) 조선의용대 대원들은 여러 차례의 유격전으로 일본군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이밖에도 조선의용대의 활동은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중국군 내에 파견되어 홍보 유인물을 발간하고, 정훈요원으로 선발되어 음악회ㆍ토론회ㆍ강연회 등을 열고 정신교육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수시로 중국 인민들과 접촉하면서 군민대회(軍民大會)를 개최하고, 간이 소학교를 세워 난민 아동들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의용대의 역할 중에는 중국군에 포로로 잡힌 일본군 소속 한족(韓族) 동포 청년들을 인계받아 재교육을 시키고 이들을 의용대원으로 편입시키는 일을 빼 놓을 수 없다. 이렇게 하여 의용대원으로 편입시킨 대원이 2년 동안 50여 명에 이르렀다.

일본군에 강제징집된 조선청년을 포함한 중국내 조선 민중에 대해 선전 교육을 진행하여 그들이 항일독립투쟁의 대열에 조속히 가입하도록 동원시키는 것이었다.

1939년 3월, 의용대 대원들은 귀주 진원진(鎭元鎭)의 중국 국민정부 군정부 제2포로수용소(즉 평화촌)에 들어가 이곳에 수용된 31명의 한국적 일본군 사병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여 전부 깨우치도록 하였으며, 2명이 수용소에 남아 일한 외에 기타 29명은 조선의용대에 가입하였다. (주석 10)
조선의용대 대장 시절 군복 입은 약산 김원봉.
▲ 조선의용대 대장 시절 군복 입은 약산 김원봉. 조선의용대 대장 시절 군복 입은 약산 김원봉.
ⓒ 실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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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용대의 대외활동도 기록할 만한 업적이 있었다. 반제연합전선을 형성하고 이를 주도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일제에 침탈당한 민족의 인사들의 반제국주의, 반파시즘 공동전선을 형성하기 위해 대만의용대ㆍ재화일본인반전동맹ㆍ인도의료대와 연계하여 반일전선을 맺고 활동하였다. 조선의용대의 창설과 활동은 여러 나라 반제국주의 인사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반제기구를 결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조선의용대를 중심으로 여러 나라의 반제 기관들과 연계투쟁을 하게되면서 국제적인 관심을 모으고, 각국의 언론이 이를 크게 보도하였다. "미국ㆍ인도ㆍ월남ㆍ소련 등의 반전 인사들이 조선의용대의 창설 및 그 활동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서, 그들의 특파 기자를 통하여 각국의 신문ㆍ잡지 상에 의용대의 활동을 크게 보도하기도 하였다. (주석 11)
  
일제침략에 공동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지면서 1938년 7월 7일 신익희가 제안한 재중 반일운동세력은 조선의용대를 중심으로 국제반침략 역량을 집중하는 「일본ㆍ조선ㆍ대만 반파시스트동맹창립준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이를 토대로 1938년 12월에는 조선ㆍ일본ㆍ대만 반파시스트동맹이 결성되고 3국의 대표들은 동방 약소민족이 모두 중국의 항전 기치 아래 단결하여 싸울 것을 다짐하였다.


주석
8> 김정명 편, 『조선독립운동』2, 652쪽, 동경, 원서방 1967.
9> 「조선의용대적공작, 대진선전유격살적」, 『대공보(大公報)』, 1939. 4. 13.
10> 목도(沐濤, 중국 화동사범대학 역사학과 교수) 외, 「중국항일전쟁 중 조선의용대의 역사적 위상 및 공헌」, 『중국항일전쟁과 한국독립운동』, 117쪽, 시대의 창, 2005.
11> 한지성,「조선의용대 3년래(來) 공작적 총결」, 『조선의용대』제40기, 78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해공 신익희 평전] 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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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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