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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원 성립 당시의 도산. 앞열 왼쪽에 신익희 선생이 보인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원 성립 당시의 도산. 앞열 왼쪽에 신익희 선생이 보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원 성립 당시의 도산. 앞열 왼쪽에 신익희 선생이 보인다.
ⓒ 이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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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南京)의 국민정부 심계원에서 일하는 동안 장개석 총통을 비롯하여 원로혁명동지 백숭희(白崇禧) 등 요인들을 만나 한ㆍ중 합작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지원 약속을 받았다. 장개석과의 관계는 중칭 임시정부를 거쳐 해방 후 국회의장이 되어서 그가 정부 초청으로 국빈방한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대중외교에 치중하던 신익희는 1929년 무엇보다 동지들의 결속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난징에서 윤기섭ㆍ성주식ㆍ민병길ㆍ연병호ㆍ최용덕ㆍ안재환ㆍ김홍일ㆍ염온동 등과 한국혁명당을 조직하였다.

재중한인과 독립진영의 대동단결을 내세웠다. 이 해에 국내에서 신간회가 발족되고(1월 19일), 여성운동 통일체로 근우회가 창립(5월 27일) 되는 등 민족운동 진영의 대동단결이 나타나고 있던 시점이다. 

한국혁명당은 중국국민당의 지지를 받으면서 산하에 안재환을 단장으로 하는 비밀결사 철혈단(鐵血団)을 조직하여 의열투쟁을 전개토록 하였다. 기관지로 『우리의 길』을 발간, 독립사상의 고취와 항일무장투쟁의 의지를 밝혔다.

한국혁명당은 1932년 11월 한국광복동지회, 조선혁명당, 의열단, 한국독립당 등이 협의하여 조직한 민족독립운동의 통일전선체인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에 참여, 독립운동단체의 대동단결에 노력하였다.

그후 1933년 2월에 만주의 한국독립당과 합당하여 신한독립당으로 발전적인 해체를 하였다.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에 참여한 이후 한국혁명당은 동 통일동맹의 핵심간부를 겸하면서 항일투쟁을 계속하였다. 

위원장 윤기섭은 중국 동삼성(東三省) 지역의 정객인 주경란과 제휴하여 한중연합의용군의 조직을 계획한 바 있었고, 신익희는 중국 국민당정부와 제휴하여 국민당정부로부터 독립운동자금의 원조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한국혁명당이 해체되던 1933년 현재의 간부 명단을 일제측의 정보기록을 토대로 하여 살펴보면, 집행위원장에 윤기섭, 외교위원에 신익희가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이밖에도 간부로서 최용덕ㆍ김홍일ㆍ신영심ㆍ민병길ㆍ김사집ㆍ염온동ㆍ이동주 등이 활동하고 있었다. (주석 1)
해공 신익희(1894~1954)
 해공 신익희(1894~1954)
ⓒ (사)해공신익회선생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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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익희는 날로 강폭해져가는 일제와 싸워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민족운동진영의 통합으로 혁명역량을 강화하는 방법뿐이라는 신념에 변함이 없었다. 1920년대 해외의 민족진영은 이념ㆍ지역ㆍ인맥ㆍ항일전의 방법론 등으로 산산히 조각나고 흩어져 있었다. 이념적으로 동색(同色) 끼리도 갈라지고 대립하였다.

각 조직과 단체들의 결성시기와 지역, 인적구성과 긴박하게 돌아가는 대륙의 정세 등 여러 가지 상황의 복합적인 산물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적(大敵)을 상대로 하는 전선에서 분산된 조직으로는 성과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임시정부도 일부 보수우파 세력의 집단일 뿐 좌파나 중도계 인사들을 불러모으지 못한 상태였다. 윤봉길 의거 후에는 그나마 많이 달라졌지만 임시정부에는 여전히 우파 진영의 일부만이 참여하고 있었다. 

신익희 뿐만 아니라 다수의 독립운동 지도자들이 1920년대 후반기부터 중국 관내와 만주지역에서 민족유일당운동을 꾸준히 전개하였다. 1929년 12월 남만주에서 조선혁명당, 1930년 1월 상하이에서 한국독립당, 동년 7월 북만주에서 독립당이 각각 결성되었다.

이러한 지역별 당조직을 하나로 묶기 위하여 상하이에서 독립전선통일동맹이 결성되고, 일제의 중국침략이 급속도로 진전되면서는 1932년 10월 상하이에서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이 결성되기에 이르렀다. '통일동맹'은 1934년 3월 동당 제2차 대표대회에서 '단일대당(單一大黨)' 결성안이 의결되면서 통합운동이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1934년 3월 1일 열린 통일동맹 제2차 대표대회는 각기 조직을 해체하고 신당을 결성하기로 결정하면서, 4월 12일 통일동맹 중앙상무위원인 김규식, 한국독립당대표 김두봉ㆍ이광제, 조선의열단 대표 김원봉ㆍ윤세주ㆍ이춘암, 조선혁명당 대표 최동오, 김학규, 만주 한국독립당과 한국혁명당이 통합한 신한독립당 대표 신익희ㆍ윤기섭ㆍ이청천 등 11명이 통일동맹 3차 대회를 열고 민족혁명당 창당을 의결했다. 신익희는 이 과정에서 혼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주석
1> 조범래, 『한국독립운동사사전 7』, 390~391쪽, 독립기념관, 2004.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해공 신익희 평전] 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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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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