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공중기는 조경호의 장기다.

화려한 공중기는 조경호의 장기다. ⓒ 조경호님 제공

 
프로레슬링은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가 적절하게 섞인 이벤트로 불린다. 잘 훈련된 근육질 운동선수들이 벨트와 랭킹을 걸고 치고받고, 던지고, 꺾는 등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스템만 놓고 보면 격투 스포츠라고 볼 수 있겠으나 이른바 각본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서는 현격한 차이점을 보인다.

각본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실전 격투기보다 쉽고 덜 위험할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프로레슬링은 관객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스포츠다. 때문에 대부분 기술이 크고 화려하다. 짧고 간결하게 플레이를 구사하는 경우가 많은 격투기와는 동선 자체가 다르다. 근육질 거구들이 머리 위로 상대를 들어 올려 바닥에 메다꽂거나 로프 위로 올라가 넘어진 상대의 몸 위에 그대로 떨어져 버린다.

물론 그러한 기술들은 이른바 합을 맞추는 과정을 거치지만 구사 과정은 물론 훈련 자체 등 모든 면에서 많은 위험성이 따를 수밖에 없다.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하다 보면 체력문제까지 겹치며 부상에 신음하는 선수들이 늘어나는 이유다. 훈련과 시합 강도는 일반 격투 스포츠와 비교해도 절대 밀리지 않는다.

프로레슬러에게는 운동 외에 엔터테이너의 기질까지 요구된다. 프로레슬링은 경기 전 상대를 향한 도발, 경기 후 인터뷰 스킬, 계체량 측정이나 링 입장 시의 모습 등은 물론 파이팅 스타일까지 상당 부분 각본에 의해 진행된다. 뛰어난 선수들이 스토리, 연기력, 음악 등과 한데 어우러져 관중들을 흥분시키는 '종합 격투 축제'라 할 수 있다.

캐릭터에 따라 선수 가치가 달라지는 만큼 이른바 연기도 잘해야 한다. 단순히 기술만 잘 구사하는 것이 아닌 전후 퍼포먼스는 물론 얼굴 표정까지 관리할 필요가 있다. 묵묵하게 운동만하는 성향을 가진 인물이라면 소화하기 힘든 요소가 가득하다. 그만큼 요구되는 것도 많고 여러모로 어렵고 힘들다.

해외에서의 여전히 높은 인기와 달리 아쉽게도 국내에서의 프로레슬링은 존재감이저 미비한 것이 사실이다. 한때 장영철, 천규덕, 안명길, 이석윤, 김일 등 쟁쟁한 선수들이 활약하며 국민스포츠로 인기를 누렸으나 현재는 그 명성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이들은 '프로레슬링의 미래는 어둡지 않다'고 말한다. 해당 스포츠를 좋아하고 여기에 인생을 거는 이들이 계속해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 지난 24일 2019년 PWS 챔피언 출신 올 라운더 테크니션 '언터처블' 조경호(34‧한국프로레슬링연맹)와의 인터뷰를 추진했다. 인터뷰는 이메일과 전화통화를 통해 진행되었다.

프로레슬링 매력에 푹 빠진 사나이
 
 조경호는 프로레슬링 부흥에 인생을 걸었다.

조경호는 프로레슬링 부흥에 인생을 걸었다. ⓒ 조경호님 제공

 
- 안녕하세요. 프로레슬링 슈퍼매니아 조경호 선수를 인터뷰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초대 PWS 챔피언, PWS 소속 프로레슬러 겸 현 IB스포츠 WWE 해설위원을 맡고 있는 프로레슬러 조경호입니다."
 
- 프로레슬링의 세계에 빠지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어린 시절 우연히 TV에서 프로레슬링 시합을 보게 되었어요. WCW 전설의 선수 들인 골드버그와 브렛하트의 경기였죠. 프로레슬링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던 나이에 그들의 경기는 연약했던 저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어요. 너무나 강력해 보였던 골드버그와 스타일리쉬하게 경기를 풀어나갔던 브렛하트! 우연히 봤던 경기지만 상당히 집중해서 보았죠.
 
그리고 다음 날 친구와 우연히 전날 본 경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친구가 프로레슬링 매니아더라고요. 너무 잘 알고 있는 거예요. 뭔가 어린 마음에 지기 싫다는 생각으로 그때부터 저도 챙겨봤죠. 노트에 처음 보는 선수들의 이름이나 특징을 필기하면서 매주 시청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스토리나 선수들의 매력에 빠지게 됐어요."

- 팬심으로, 혹은 롤모델로서 좋아하는 프로레슬러로는 누가 있을까요?
"골드버그를 상당히 좋아해요. 사람은 자신과 닮지 않은 사람을 동경하는 성향이 있는 걸까요? 체구가 작고 힘이 약했던 저에게 그의 말도 안 되는 파괴력은 그야말로 대단한 것처럼 보였어요. 하지만 우상은 우상일 뿐이고 선수가 된 제가 스스로의 신체적 한계를 파악하게 되면서 비슷하게 체격이 작은 선수들의 경기를 보고 배웠어요. 숀 마이클스나 크리스 제리코, AJ 스타일스 같은 선수들이 많은 영감을 주었죠. 각자 타고난 피지컬은 다르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기를 잘 활용해서 경기를 펼쳐가는 선수들이기에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프로레슬링은 서로간 합이 굉장히 중요하다.

프로레슬링은 서로간 합이 굉장히 중요하다. ⓒ 조경호님 제공

 
- 미국, 일본 등 다양한 무대에서 뛰었다고 들었어요. 어떤 무대 등에서 뛰셨는지 말씀해주세요.
"국내에 프로레슬링 단체가 당시에 한두 군데가 있긴 했는데 1년에 한번 쇼가 열릴까 말까 했어요. 데뷔 자체도 워낙 힘들고. 작은 체격과 운동경력 부족으로 입단조차 하지 못했죠. 그래서 아예 눈을 해외로 돌렸어요. 군대를 전역하자마자 '나가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유도와 복싱 등을 하면서 몸을 만들고 있었죠. 그리고 군 전역 후 호주의 프로레슬링 단체에 입단하고 그곳에서 데뷔했어요. 1년 정도 활동을 하고 국내로 복귀를 했고 친구 덕분에 미국에서 꽤 잘나갔던 인디단체 'Chikara Pro Wrestling'에서 경험도 쌓고 훈련도 했죠. 그 후 일본 프로레슬링 단체 'Zero1'에서 테스트겸 연락이 왔고 꽤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일본 활동만 고집하지 않고 국내로 들어왔어요. 어쩌면 그곳 생활이 더 편할 수도 있었겠지만 무언가 국내 팬들에게 프로레슬링의 재미를, 직관의 재미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거든요. 저라는 레슬러를 알리고 싶기도 했고요. 당시 국내 단체들이 조금씩 활동을 재개하고 있었는데 다양한 단체를 오가며 최대한 팬들과 자주 소통하고 모습을 드러내려고 노력했죠. 물론 주기적으로 일본도 오가면서 활동을 이어오다가 '제대로 젊은 선수들을 육성하고 해외에도 밀리지 않는 프로레슬링을 보여주자'라는 생각에 제자인 시호선수와 함께 PWS라는 단체를 결성했어요. 지금은 주로 국내에서(코로나의 영향도 있지만) 선수 생활을 하며 후배들을 가르치며 지내고 있습니다."
 
- 프로레슬링을 잘 모르는 팬분들을 위해,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꿀팁이 있다면 공유해주실 수 있나요?

"저는 예전부터 프로레슬링을 마술에 자주 비유해 왔어요. 마술이라는 것은 누구나 트릭이 있는지 알고 있지만 막상 하는 순간에는 모두가 그 세계에 빠지잖아요. 동심으로 돌아간다랄까? 하지만 그 와중에 트릭을 찾아내려고 애를 쓴다면 마술사가 하는 마술에 집중하지 못하고 재미가 반감될 수도 있어요. 프로레슬링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물론 선수들 간에 트릭이 있다는걸 다 알지만 색안경을 끼고 보기보다는 선수들의 싸우는 모습에 포커스를 맞춘다면 더욱 재밌게 즐기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파워와 테크닉의 세계
 
- 프로레슬러들에 비해 체구가 작으신 것 같아요. 현재 체격마저도 체중을 많이 불리신 결과라도 들었어요.
"사실 어린 시절부터 작은 체격 때문에 조금 콤플렉스가 있긴 했어요. 다른 친구를 소개받는 일이 생길 때 프로레슬러라고 하면 제가 아니라 다른 친구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었고, 일본에 있을 때도 프로레슬러보다는 가수 같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게다가 아무리 기술을 깔끔하게 사용해도 임팩트가 없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다가 미국의 케빈 스틴이라는 선수를 봤어요. 전형적인 슈퍼 헤비급의 머슬맨은 아니었지만 통통한 체형인데 화려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선 최선이다'라고 생각을 한 거죠.

그렇게 운동을 하면서 살을 조금 찌웠는데 기술 하나하나에 임팩트가 더해지고 무게감이라는게 생겨서 만족하는 부분이 생겼어요. 임팩트는 더해졌는데 움직임은 예전과 큰 차이 없으니 그게 저의 장점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경량급에서 중량급까지 경험을 했기에 나오는 기술의 다양성이랄까요. 물론 건강을 생각하면 조금 빼야 할 것 같긴 하지만요(웃음)."
 
 초대 PWS 챔피언, PWS 소속 프로레슬러 조경호

초대 PWS 챔피언, PWS 소속 프로레슬러 조경호 ⓒ 조경호님 제공

 
- 프로레슬러들 프로필을 보면 '시그니쳐'와 '피니쉬 무브'라는 것도 있더라고요. 어떤 것인지 설명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프로레슬링은 살아있는 캐릭터들의 액션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마블에 나오는 캐릭터처럼요. 이전에도 얘기했지만 프로레슬링을 즐겁게 보기 위해서 경기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러한 선의 연장인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해당 선수를 알아야 한다는 거죠. 토르하면 묠니르, 캡틴 아메리카 하면 방패가 생각나는 것처럼 주무기, 필살기 개념으로 받아들이시면 될 것 같아요."
 
- 그럼 조경호 선수의 시크니쳐와 피니쉬 무브는 어떤 것인가요?
"저는 데뷔 초부터 '스완턴 밤'이라는 공중기를 사용해 왔어요. 공중에서 몸을 앞으로 회전해서 등으로 상대를 강타하는 기술이죠. 하지만 국내에서 경기할 당시 링 상태가 좋지도 못했고, 제 체중도 불어가기 시작하면서 허리와 발목에 무리가 많이 왔어요. 지금은 '샤이닝 위쟈드'라는 스텝업 니킥과 '문설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 현재는 '언터처블'이라는 닉네임으로 통하는데, 예전에는 피카츄, 피카츄 돈까스 등으로도 불리셨다고 들었어요. 프로레슬링은 기량 뿐아니라 캐릭터, 퍼포먼스 등도 중요하잖아요. 조경호 선수가 그동안 소화했던 컨셉트가 궁금합니다.
"언터처블은, 사실 너무 창피한 닉네임이기는 한데요. 원래 일본에서 활동했을 때는 날씬하기도 했고 어리기도 했기 때문에 '한류 레슬러' 캐릭터였어요. 당시 한류가 인기이기도 했고, 등장할 때 카라의 미스터라던지 빅뱅의 판타스틱 베이비에 맞춰 춤을 추면서 등장하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국내에 들어와서 활동을 이어나가는데 한류레슬러라는 타이틀이 너무 창피한 거예요.  
 
그러던 어느날 '원맨크루'라는 미국인 레슬러와 경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저의 반년 만의 복귀전이었거든요. 체중이 많이 올라온 후 첫 경기이기도 했어요. 그 날 경기 후 백스테이지에서 그 친구가 저에게 못하는 게 없다고 언터쳐블이라고 칭찬을 했어요(웃음). 그래서 그 이후에 장난식으로 언터쳐블을 언급하다가 자연스럽게 닉네임이 된거죠. 하지만 지금도 쑥스럽기는 해요. 피카츄는 예전에 <무한도전>에 출연했을 때 생긴 별명이었어요. 그때가 '무도리go 특집'이었는데 당시 파트너였던 양세형님께서 피카츄라고 불러주셨어요. CG와 함께! 그래서 한동안 피카츄로 불렸죠."
 
 조경호는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테크니션 프로레슬러다.

조경호는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테크니션 프로레슬러다. ⓒ 조경호님 제공

 
- 마지막으로 프로레슬링 팬들, 그리고 프로레슬링을 낯설어 하는 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려요. 
"국내에서 프로레슬링은 '짜고 한다, 쇼다'라고 생각합니다. '짜고 하니까 안 봐'라고 하시는 분들을 많이 뵈었는데 실제로 직관을 하시면 생각이 달라지실 거예요. 선수들은 기술 하나를 펼치기 위해 정말 수많은 고통과 훈련을 하거든요. 실제로 사망률이 가장 높은 스포츠 중 하나가 프로레슬링인 만큼 찰나의 실수로도 크게 다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선수들은 매 경기마다 최대의 집중력을 뽑아내며 '리얼'하게 경기를 펼쳐내고 있죠.
 
어떻게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일단 봐주세요. 어느 순간 선수에게 몰입해 가며 응원하고 있는 자신을 볼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편하게 드라마라고 생각하고 봐주세요. 더욱더 리얼한 액션 드라마가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제가 국내 활동을 하면서 생각했던 것이 있습니다. 당시에 프로레슬링의 국내 인기는 최악이었죠.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은 대부분 프로레슬링을 좋아했다. 아니면 좋아할 거다'라고 생각해요. 여러분들이 프로레슬링의 재미를 느끼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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